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가 10일간 진행되고 막을 내렸다. 나는 21년 동안 부산 근처에 거주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전공수업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소개할 필요가 생겨 직접 예매해서 관람했다. 내가 선택한 영화는 중국영화 <무영자>였는데, 이미 중국에서 개봉되어 박스오피스 2위를 차지한 영화였다. 중국영화는 처음이라 긴장됐고 외국에서 반응이 좋더라도 우리나라 정서와는 안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꼈다. 하지만 착각은 자유라더니, 영화가 시작되고 그런 건 모두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무영자>의 스토리는 이렇다. 삼국시대 패국(沛國)에는 왕위를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왕이 있었고, 그 아래에는 사람들이 존경하고 검술능력이 뛰어난 장군 도독이 있었다. 양창에게 공격을 받고 경주라고 불리는 지역까지 빼앗긴 도독은 쇠약해진다. 하지만 도독의 뒤에는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도독의 그림자가 있다. 도독의 그림자는 8세에 어머니를 잃고 굶주릴 때 도독을 만나 똑같이 20년 동안 훈련받게 된다. 쇠약해진 도독 대신에 도독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1년이 됐지만 아무도 대행 도독을 눈치 채지 못 한다. 도독의 그림자는 3합 안에 적을 이겨낸다는 양 씨 집안의 검술에 꼼짝도 못 했지만, 진짜 도독의 아내 덕분에 우산권법으로 맞설 수 있게 된다. 결투 전날 밤, 알고 보니 도독의 그림자는 진짜 도독 아내를 좋아했고, 아내도 그림자에게 마음이 끌리고 있었다. 그리고 진짜 도독이 그 장면을 보게 된다. 다음날, 그림자는 경주탈환에 성공하고, 도독은 왕을 죽이고 그림자를 배신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림자의 손에 죽게 된다.
줄거리를 가만히 보면, 우리나라의 <광해>, <나는 왕이로소이다>랑 비슷한 내용인 듯하다. 1인 2역 역할에다가, 훈련하면서 동일인물인 척 노력하는 것, 대역의 욕심까지 이런 류의 영화와 차이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영자>는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다. 영상의 색감은 다채롭지 않고 흑백도 아닌 수묵화를 보는 듯 편안하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획을 하나하나 그어 나가는 붓처럼 단조롭다. 분위기에 맞게 계속 비가 내리는 연출은 미장센 역할을 확실하게 했다. 빗방울의 굵기 차이에 따라 촬영을 계속 시도했다고 장이머우 감독이 말했다고 한다. 세세한 부분도 신경 쓰는 디테일은 정말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장이머우 감독이 왜 유명한지, 왜 그가 거장인지, 이 영화는 그 이유를 확실히 했다.
내가 뽑은 최고의 명장면은 도독과 도독의 그림자가 검술 훈련하는 모습, 도독의 그림자와 양창이 대결하는 장면이다. 이들 장면은 배우들의 완벽한 연기력과 감정이 고조되는 선을 적절하게 담아내고 있다. 또 카메라 앵글은 음과 양의 대립을 정확하게 보여주어 영상미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처음으로 본 중국영화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영상미의 완벽성을 표현할 문장력이 안타까울 정도로 이 영화는 주옥처럼 아름다운 화면의 연속이었다. 얼마 전에 이 영화가 정식으로 영화관에서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상영하는 영화관은 손에 꼽을 만큼 몇 군데 없었다. 영화는 영상 예술아닌가. 영상이 아름다운 영화가 이렇게 상영관에서 외면 받고 있다니, 영확롼인지 상업관인지 모를 일이다. 큰 스크린으로 보지 못하지만 동시상영으로 인터넷, IPTV 등으로 영화구매나 스트리밍으로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영상미에 관심이 많은 정통 영화팬이라면 이게 그 영상미의 진수 영화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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