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으로 한 번, 건강 악화로 한 번
“‘사회에서의 나’가 가장 가치 있었다”...지금은 세 번째 취업 도전 중
남편과 아이들의 격려가 가장 든든한 버팀목
영화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뜨겁다. <82년생 김지영>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1982년에 태어나 2019년을 살아가는 여자 ‘김지영’의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남아선호사상, 성희롱, 여성의 취업과 승진, 워킹맘, 경력단절 등 <82년생 김지영>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살면서 한 번쯤 겪어본 일들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현재 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중 워킹맘과 경력단절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출산과 동시에 맞닥뜨리는 고민 중 하나다. 그래서인지 <82년생 김지영>을 본 많은 기혼 여성들이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워킹맘과 경력단절에 대한 서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71년생 가정주부 황성희(49) 씨도 <82년생 김지영>을 보고 난 후 씁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황 씨는 “특히 경력단절에 관한 부분은 공감이 많이 갔어요. 보면서 그동안의 저의 삶이 많이 떠오르기도 했고요”라고 말했다.
황성희 씨는 두 번의 직장 생활과 두 번의 경력단절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현재 재취업 준비에 열심이다. 아침마다 새로운 ‘교차로’ 신문을 가져와 구인구직 코너를 읽어보는가 하면, 취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자격증 시험도 준비하고 있다.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녀가 다시 취업에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녀는 “직장 생활을 통해 느꼈던 나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더 느껴보고 싶거든요”라고 답했다.
황성희 씨의 첫 직장 생활은 그녀가 고등학교를 다녔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야간 상업 고등학교를 재학했던 황성희 씨는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여러 회사를 다녔다. 낮에는 직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 학교를 다니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던 황 씨는 그때를 생각하면 가끔 서러움이 몰려오기도 한다. 그녀는 “솔직히 저는 취업보다는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가정 형편이 좋지 않기도 했고, 남자 형제들도 많았던 터라 자연스레 공부는 남자 형제들 몫이 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1990년, 황성희 씨는 한 개인 사업체 직원으로 입사했다. 황 씨는 회사 내 유일한 여직원으로 경리 역할을 도맡아 했다. 협력 업체와의 전화 연락, 어음 발행, 회사 재정 관리 등 그녀는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으로 맡은 일을 완벽히 해냈으며, 직장 상사들로부터 업무 능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황 씨는 “‘황성희 씨, 일 꼼꼼하게 잘 하네요’라고 칭찬 들었을 때 정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어요.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그 이후로 일의 능률이 오를 때마다 스스로가 뿌듯해지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25세가 되던 해, 황성희 씨는 직장 생활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결혼이 그녀의 발목을 잡은 것이었다. 결혼하더라도 직장 생활만큼은 계속 이어가고 싶었던 황 씨였지만, 현실은 그녀에게 가혹했다. 결혼과 동시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게 된 것도 퇴직의 이유였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시부모의 극심한 반대였다. 그녀는 “시부모님은 여자가 결혼하면 당연히 직장은 그만두고 살림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었어요. 바깥일은 남자의 몫이니 여자는 빨리 직장을 그만두고 살림에 전념하라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첫 직장을 그만둔 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황성희 씨는 삶이 공허해진 느낌을 받았다. 황 씨는 남편이 출근하고 홀로 남은 집에서 집안일을 할 때마다 이따금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 감정을 잊기 위해 일부러 더 집안에서 일을 만들어 하기도 하고, 뜨개질이나 베이킹 등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도 했지만, 마음 한쪽이 허전한 것은 그녀 스스로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아이를 낳고 난 후, 마음이 허전한 증상은 더 심해졌다. 아이를 씻기다 갑자기 멍을 때리거나 남편과 아이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한 적도 많았다. 그녀는 “당시의 저는 스스로가 도태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생각해보면 그때의 저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시간이 흘러 30대 후반이 된 황성희 씨는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에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어느 날 갑자기 워킹맘의 길에 들어서게 됐다. 직장에서 일하다 디스크가 발병한 그녀의 남편이 수술로 인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황 씨의 마음은 초조해져만 갔다. 병원비며 아이들 교육비 등 지출은 늘어나는데 수입은 없어 불안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압박을 견디지 못한 그녀는 결국 가족들에게 자신이 워킹맘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가족들 모두가 반대했지만, 그녀의 고집은 완고했다. 그녀는 “모두가 날 못 미더워하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저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가족들의 반대가 심해질수록 오히려 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못했다. 30대 후반이 된 황성희 씨를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황 씨는 “채용 공고에는 20대 젊은 사람들만을 원했고, 경력이 많은 사람만을 찾았어요. 그에 비해 나이도 많고, 10년 넘게 경력이 단절된 저를 고용해주는 회사는 없더라고요”라며 당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황성희 씨는 이전에 일했던 사무직이 아닌 단순 노동직을 찾아 자신의 이력서를 돌렸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를 더 거듭했을까. 드디어 그녀는 어느 한 식품업체의 식품 판매사원으로 고용됐다. 그 때가 2008년, 그녀의 나이 38세 때였다. 그곳에서 그녀는 물건을 나르고 식품을 판매하는 등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일들을 하며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녀는 “제 전공도 아닌 일을 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죠. 하지만 그게 제 또래 워킹맘들의 현실이었어요. 회사 안에도 저와 같은 처지의 직원들이 많았거든요”고 말했다.
비록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다시 시작한 직장 생활은 황성희 씨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황 씨는 워킹맘 시절에 대해 잊고 있었던 ‘사회 안에서의 나’를 다시 만난 시간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녀는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느라 몰랐던 세상살이를 배워나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직장인의 ‘나’는 엄마일 때와는 다르게 굉장히 수다를 좋아하는 사람인 걸 새삼 깨닫게 되기도 했어요”라고 말했다.
워킹맘이어서 느낄 수 있었던 작은 행복도 있었다. 황성희 씨는 워킹맘 당시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에 대해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었을 때”라고 이야기했다. 황 씨는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아이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학원을 다닐 수 있게 해주고,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사줄 수 있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죠”라고 말했다.
황성희 씨는 워킹맘 생활 10년 만에 다시 가정주부로 돌아왔다. 황 씨가 다시 가정주부가 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건강상의 문제였다. 원래 몸이 건강했던 그녀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난 후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급성 위장질환을 앓기도 했고, 손목 힘줄과 무릎 연골에 부상을 당하는 등 많은 신체적 고통이 잇따랐다. 그녀는 “아무래도 제가 나이가 많고, 노동직을 하다 보니 몸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이 일을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고, 어차피 남편도 복직에 성공했으니 이제 제 일은 다 했다고 생각했죠”라고 말했다.
워킹맘이어서 생겼던 고충도 황성희 씨가 다시 가정주부가 된 데에 영향을 미쳤다. 황 씨에게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회사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다 보니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신없이 지낸 탓에 전에는 실수하지 않았던 것들을 자꾸 실수하게 돼 속상했던 때도 많았다. 이를 테면 가족들의 생일이나 제사 등 집안 행사를 잊어버리는 것과 같은 일들이었다. 하지만 황 씨에게 가장 큰 고충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이었다. 그녀는 “바쁘다 보니 아이들에게 신경을 못 써줘서 어린 나이에 아이들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야만 했던 점이 항상 미안했어요. 특히 아이들이 아플 때 제가 돌봐줄 수 없어서 가장 미안했죠. 그래서 ‘역시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 건가’ 하는 고민을 오래 전부터 해왔었어요”라고 말했다.
직장을 그만둔 지 어느새 1년, 황성희 씨는 현재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직장을 찾아보고 있다. 그녀의 마음이 홀가분한 데에는 그녀를 응원하는 가족들의 영향이 크다. 두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난 후, 황 씨는 집에 있는 시간이 유달리 어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괜히 집안을 몇 번이나 둘러보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나름대로 어색함을 지우기 위해 애쓰기도 했다. 그 모습이 너무 티가 났던 것일까? 어느 날, 가족들은 그녀에게 물었다. “엄마, 솔직히 다시 일하고 싶죠?” 그 질문을 듣자마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회사를 다닌다는 건 갈 곳이 있다는 점에서 저한테는 큰 의미가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 질문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죠”라고 말했다.
황성희 씨의 대답을 들은 가족들은 그녀에게 뜻밖의 말을 건넸다. 바로 일을 다시 시작하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가족들의 제안에 황 씨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듣고 난 후, 당황스러움은 감동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말하길 제가 일하고 있었을 때가 가장 활기 있어 보였대요. 그런데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기력 없이 집에만 있으니까 차라리 제가 다시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대요”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황성희 씨의 이번 취업 도전은 다른 때와는 다르다. 단순히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직장 생활을 위해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취업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보다 빠른 취업을 위해 황 씨는 여성 센터에서 주관하는 경력단절 여성 취업 지원 프로그램에도 신청했다. 그녀는 “확실히 예전보다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많아져 취업 준비를 하는 데 훨씬 수월하긴 해요”라며 “이 기세로 쭉쭉 하다 보면 저한테도 곧 좋은 소식이 찾아올 거라고 믿고 있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