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기 점차 어려워 나이듦을 실감하고...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에 영웅은 없고 이념만 설친다
2017년 4월 서울에 와서 보니, 사드 문제로 중국 사람이 많이 오지 않는 바람에 한국이 깨끗해졌다. 관광명소나 백화점, 그리고 명동 같은 상가에 예의 없이 설치는 중국인들이 안 보였다. 무례한 중국인들을 상대하던 상인들에게는 타격이겠지만 아름다운 조국에 중국인들이 안 왔으면 좋겠다. 류성룡 선생의 <징비록>을 읽으면서 나는 중국이 한민족에게 수백 년을 두고 못된 짓을 해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중국은 아직도 북한을 감싸고 돌면서 이제 국제 외교 정책에서 한반도를 희생양으로 요리하려 한다고 생각하니 중국이 너무 밉다.
작년에 서울에서 팔순잔치를 하면서 여생을 조용히 캘리포니아에서 보내겠다고 다짐했다가 마음이 변했다. 이번 방한 때는 옛날의 그리운 친구들을 일일이 연락하여 점심이나 저녁을 같이 하면서 소주도 몇 잔 했다.
나에게는 아직도 한국에 정다운 친구들이 있다. 나는 이들과의 만남이 새삼 귀하고 즐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일이 점차 힘들어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좀더 자주 만나고 싶어서 서울에 자주 오겠다고 친지와 친구에게 다짐하기도 했다.
최근 서울의 음식문화가 많이 바뀌었다. 짜고 맵게 먹는 것이 위암의 큰 요인이 된다는 인식이 한국에서 널리 자리 잡아 요리의 새로운 기본이 된 듯하다. 광화문 국밥집 국밥은 내 입맛에는 맹물에 수육 몇 점 넣고 맛을 낸 듯하다. 내방역 근처 설렁탕도 국물에 기름기가 없어 담백하면서도 나에게는 맹물 같다. 작년에만 해도 붐비던 삼겹살 집에 손님이 줄고 한산하다. 극성스럽게 마시던 위스키 소비가 줄고, 도수 낮은 소주가 국민주가 됐다고 한다. 비싼 고급 커피점이 줄고, 스타벅스 같은 대중적인 커피점이 늘어났다. 맥도날드에서는 커피 한 잔에 1000원을 받는다. 한국의 입맛도 미국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반세기 이상을 살다 보니 미국 사람이 다 됐지만, 때때로 고향을 그리워하고, 옛날 친구를 만나고 싶으며, 한국의 고리타분한 청국장이나 얼큰한 바지락 칼국수, 장충동 원조 족발처럼 먹고싶은 음식들이 생각난다. 이번에 조국에 가면 이런 고향의 음식들을 찾아 먹기로 다짐했지만, 막상 서울이나 대구에서 이런 꿈속의 맛을 볼 수 없었다. 음식이 싱거워지고 담백해졌기 때문이다.
만나는 장소는 알려진 식당이기 마련이다. 내가 한국에 오면 묵는 큰 아들 집은 서래마을 뒷산밑에 있다. 친지가 어떤 식당으로 택시를 불러서 타고 오라고 하지만, 길이 밀려서 택시 속에서 요금미터 올라가는 것을 보면 짜증이 난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오면 약속장소로 가기 위해 철저히 지하철을 이용한다. 아들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는 거리가 만만치 않고, 지하철 역에는 아직 노약자를 위한 시설이 모자라는 편이어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는 수백 개의 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한다. 걷기가 운동에 좋다고 하지만 시내로 점심약속을 나갔다 돌아오면 녹초가 되고 만다. 은퇴한 사람들 끼리 만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을 새삼 실감하게 된다.
만나면 서로 할 이야기가 제한되어 있다. 별로 신통치 않은 말을 많이 하는 친구는 모임에서 환영을 못 받는다. 나는 아직도 여행기를 쓰는 취미를 살리려고 가기 어려운 곳에도 찾아가려 하지만, 나와 그런 곳을 동반할 수 있는 옛날 친구는 하나도 없다. 그래도 아직도 건강이 괜찮은 친구는 만나면 가벼운 등산을 한다. 나는 미국에서 골프를 일주일에 세 번씩이나 치는데, 한국에는 내 나이에 골프 치는 친구가 한 사람도 없다. 골프 치는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골프장 을 가기 위해 먼 길을 차를 몰고 갈 수 있는 친구가 없다.
갑자기 서울이 나에게는 즐거운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외국에 살 만큼 살았으니 조국에 돌아와 같이 살자는 친구들의 고마운 제안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한국이 과연 내가 살 수 있는 곳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리 내외는 1년 만에 한국에 나오면 아들 내외와 두 손자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반갑고 고맙다. 그러나 우리가 오래 머물게 되면 그들 생활에 리듬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1년에 한두 번 방문하되 한 번 방문에 2주를 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4월 18일에는 남포면옥에서 '보기스 클럽' 회원들과 함께 저녁식사를 가졌다. 회장 김희광이 주선하여 최신호, 김종완, 허남진, 김종립, 김민환, 김종찬 등 1988년부터 1990년에 미주리에 연수 왔던 언론인들로 구성된 이 모임은 함께 골프를 치면서 보기를 파로 인정하는 재미있는 모임이다. 이 모임에서 5언더를 쳤다고 하면 보기 18개 중에 5타를 줄였다는 것으로, 이 클럽을 모르는 친구들은 이런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식사 값을 서로 계산하려 했으나, 어느 사이에 허남진 멤버가 부담했다고 한다. 너무 고맙다.
이 모임에서 “한국 대선과 작년 미국 선거와 어떻게 비교할 수 있겠느냐?”고 한 멤버가 나에 묻기에, 나는 21세기 정치에서 없어진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그 첫째는 정치적으로 영웅다운 인물이 후보자들 중에는 없다는 것이다. 요즘 책방이나 도서관에서 영웅전을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후보자들마다 본인이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21세기 세계 정치의 두번째 특징은 존경받는 언론인이나 믿을 만한 언론매체나 기사가 없다는 것이다. 인터넷 매체가 온갖 사이비 기사를 쏟아내니 전 세대에서 믿을 만한 언론사나 존경받던 언론인이 사라져 버렸다.
마지막은 확고한 정강정책의 대립이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적 주장은 예외 없이 지지자와 반대자들이 있기 때문에 적당히 넘어 가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이유로, 중대한 국가지도자를 선택하는데, 국민들은 뛰어난 정치인도 없지만 국가를 생각하기보다는 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거나 비슷한 정치인에게 투표하고 만다는 것이다. 미국에는 지금 대학 졸업자가 한국의 절반도 못 미치는 40% 미만이다. 똑똑한 여자 클린턴보다는 바보 같은 소리만 하는 트럼프가 더 좋다는 어느 백인 친구의 실토가 트럼프를 당선 시켰는지도 모른다.
한국이 오늘날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국민 생활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월등하게 윤택해 졌지만, 그동안 국가가 이루어놓은 업적을 고맙게 여기는 사람보다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여러 그룹들이 있다. 1945년 해방 이후 일본에서 독립하려는 뜻으로 공산당에 가입했다 돌아 오니 이승만 대통령의 반일반공에 피해를 본 후손들, 박정희 대통령의 반공을 이용한 정치적 피해자 후손들, 그리고 전두환 대통령 시절 삼청동에서 혼났거나 5.18 광주항쟁에 연관된 정치인들의 마음 속 원한은 한국 정치에서 지우기 힘든 상처이기도 하다.
미국에도 남북전쟁 이후 150여 년이 지났어도 남부 백인들의 전직 대통령 흑인 오바마에 대한 반감은 대단했다. 오바마는 수십 년 동안 아무도 손 못 대던 의료보험을 개혁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세계에서 할 수 있는 국정 수행을 잘 한 업적을 인정하기 싫은 남부층이 트럼프를 당선 시킨 것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