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된 나의 길' 성찰하면서 새로운 다짐
배운 것, 가진 끼, 남은 에너지 다 쓰고 갈 터
인생 스케치를 하는 뜻
환갑(還甲)이다. 1961년 신축년(辛丑年)생이 2021년 신축년을 맞았으니 육십갑자 한바퀴를 완전히 돌았다. 인생을 사계절로 치면 훌쩍 늦가을에 접어든 거다. 나의 늦가을은 어떤 빛깔과 어떤 향기를 품고 있나?
내 속의 나는 여전히 어리고 젊은데, 세월이 환갑을 불러 환갑하고 가라고 다그친다. 나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나이값을 해야할 나이다. 언제 이렇게 달려왔지 싶은데 60년이 지났다. 인생에 답안이 있을까마는, 스케치라도 해놔야 여생이 덜 쓸쓸하겠기에 이 글을 쓴다.
고맙고 귀한 날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전문)
내가 좋아하는 시다. 사물을 보고 즐기는 나만의 방식이 시 속에 녹아들어 있다. 짧은 시에서 세상살이의 관점을 배운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이 시를 외며 길을 찾곤 했다.
달려온 길을 돌아보니, 아득하고 아스라하다. 몇 군데 주마등이 일렁거리고 전깃불이 반짝인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해준 부모님께 먼저 고마움의 절을 올린다. 아버지 박종탁(1922년 생) 님은 천상 선비였고 가난한 농부였다. 호인이셨다. 평생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사셨다. 일찍 돌아가셨다. 어머니 하점주(1927년 생) 님은 올해 연세가 아흔 다섯! 고향(경남 창녕)에서 혼자서 밥해 드시고 무던히 계시니 이런 복이 없다. 작은 몸피 어디서 그런 홀로 삶의 강함이 나오는지…. 얼싸안고 업어드리고 싶다. 나의 환갑은 부모님의 피와 정신, 인과 덕이 안겨준 불멸의 선물이다.
어머니가 요즘 아프시다. 거동조차 불편한 상황에서 며칠 전 아들 환갑이라고 100만 원을 덥석 보내주셨다. 환갑맞은 막내아들, 때때옷 입고 춤추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가보다. 빈한한 노모가 쌈짓돈을 털어 보내준 격려금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 거꾸로 내가 안겨줘도 시원찮을 격려금을 받고는 한동안 멍해졌다. 아직도 난 철없는 아이같다.
좋았던 날들, 그런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여 아들과 딸을 낳아 32년을 살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수확이다. 지난 여름 아들놈은 짝(며느리)을 찾아 대구에 둥지까지 틀었다. 새 식구를 맞아 가족의 정이 새로워졌다.
어찌 좋은 시간만 주어지랴? 밀고 당기며 비바람에 부대낀 세월, 쓰고 지우고 다짐하고, 웃고 울고 싸우며 맷돌처럼 닳아진 시간…. 잘 한 것도, 잘 난 것도 없는 남편, 그럼에도 믿어주고 따라준 아내, 세한송죽처럼 잘 견뎌준 모성, 잘 자라준 아들 딸, 고마운 가족 친지들이 있어 오늘 나의 환갑이 있음이니 진정 고마워할 일이다.
기자로 살아온 반생
또 한가지 지난 삶의 기쁨과 보람을 말하자면 기자로 살아온 것이다. 대학때 취업을 위해 어줍잖게 꾸었던 꿈이 기자로서의 행로가 되었다. 운동권도, 반골도 아닌 내가 시대를 향해, 사회를 향해 부르짖을 수 있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나의 관심사는 문화와 환경 그리고 휴머니즘 쪽으로 쏠렸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기사 쓰는 법을 배웠고, 발로 뛰고 공부하면서 글을 썼다. 마감시간은 채찍이었다.
펜은 총보다 강하지 않았지만, 총이 해내지 못하는 것을 펜이 해냈다. 지방은 늘 찬밥신세였고, 세상은 있는 자, 가진 자 중심으로 돌아갔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지만, 펜의 궤적이 헛된 건 아니었다.
나는 애는 썼지만 좋은 기자는 못되었다. 30여 년간 움켜쥐고 달렸던 기자, 무관(無冠)의 제왕이란 화려한 수식어를 벗고 돌아보니 보람 반, 아쉬움 반이다. 기자로 살면서 쓴 다수의 기획기사와 몇권의 책은 그래도 자랑스런 자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새로운 길 찾기
“요새 누가 환갑(잔치)을 하나?” 주변에서 많이 듣는 말이다. 실제 그렇기도 하다. 요즘 환갑은 남들에게 알리기도 뭣할 만큼 생애주기적 의미가 약하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이 평균 83.3세(통계청 자료)라고 하니, 육십은 젊은 장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환갑을 달리 본다. 한 인간이 살아온 지난 역정을 정리하고 미래의 좌표를 찾는다는 점에서 육십갑자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다. 환갑을 인생 2모작, 새로운 인생대학 입학으로 표현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吾道一以貫之(오도일이관지)’. 요즘 이 여섯 글자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일관되게 하나로 통합하라’. ‘논어’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 왈, 나이 사십은 세상 일에 정신을 빼앗겨 판단을 흐리는 일이 없다(不惑) 했고, 오십은 하늘의 명을 깨닫는 나이(知天命)라 했다. 그리고 육십은 귀가 순해져 들리는 모든 소리를 이해한다(耳順)고 했다. 귀가 순해진다? 육십갑자 한 바퀴를 도니 세상물정을 알만하다고 할까.
환갑의 의미와 지향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고 내 갈 길을 가는 것. 환갑을 계기로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밝혀본다.
첫째, 나보다는 남을 위해 살아야겠다.
지금까지 달려온 나의 삶은 주로 나를 위한, 나에 대한 투쟁이었다. 기사를 쓴 것도, 책을 낸 것도, 여행을 한 것도 돌아보니 나를 위한 것이었다. 나의 나에게 투자해 얻은 것이 작음을 이제 알겠다. 앞으로는 가족과 가정, 나아가 사회와 공동체를 위한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써야겠다. 넓게 보고 깊이 헤아리고 멀리 바라보겠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겠다.
둘째, 삶의 의미를 만들고 남겨야겠다는 것이다.
변용(變容)과 반전(反轉)의 의미를 새겨본다. 변용과 반전이 나와야 할 시기는 장년이나 노년기이다. 지금까지 적당히 넘어가고, 실수하거나 남에게 신세지고 잘못해 온 것을 바탕으로 장년기나 노년기에는 이전처럼 살아선 안 되겠다는 각오이다. 변용과 반전이 있으면 스스로 발전이 있을 테고, 주변이 즐겁고 행복할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때때로 비겁하고 조급하게 살아온 측면이 있다. 또 자기 위주로, 편의대로, 내키는대로 살았다. 깊이 성찰해야 할 부분이다.
생각해보면 운좋은 인생이었다. 젊을 때 음주 교통사고로 죽을 뻔한 경우를 겪었고, 맹장 수술을 하고 실밥도 안뽑은 채 유럽행 비행기를 탄 적도 있었다. 두만강 북중 접경지에서 취재중 북한 경비병이 총구를 겨눠 혼비백산한 경험도 했다. 그러면서도 매번 운명의 여신은 내편이었고 나의 목숨을 살려주었다.
앞으로는 운(명)에 내 삶을 걸지 않겠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선에서 움직이겠다. 그리고 많이 듣겠다. 이순의 이치를 알았다면 이행하는 것도 필요하리라. 성질 내는 대신, 보듬고 설득시키겠다. 온화함과 온순함으로 세상을 부드럽게, 편안하게 만들고 싶다. 그러나 양보할 수 없는 가치나 그릇된 일, 불의한 일엔 할말을 하고 싸우땐 싸우겠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야겠다.
셋째, 살아있는 나날을 즐기겠다.
읽고 쓸 수 있는 기력과 시력이 있는 한 더 부지런히 읽고 쓰겠다. 제대로 손대지 못한 시와 소설도 써보고 싶다. 그리고 틈틈이, 아니 시간을 내서라도 취미생활을 즐기겠다. 더 많은 기타 연습을 통해 노래를 다듬고, 수준급 하모니커가 되고 싶다. 2, 3년 안에 콘서트무대도 꾸미고 싶다. 배우다 만 서예(캘리그래피)에도 깊이 빠져보고 싶다.
그리하여 내가 가진 기(氣)와 끼, 에너지를 다 쓰고 가겠다. 돈에 연연하지 않겠다. 돈을 잘 버는 것은 기술이지만, 잘 쓰는 것은 예술이라고 했다. 적게 벌어 잘 쓰면 많이 버는 효과가 나는 법. 사람답게, 인간답게, 아름답게, 치열하게 살고 싶다.
만 육십, 환갑은 뜨거움을 녹이고 새로움을 갈무리하는 시기다. 한순간 한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날들인가. 그래서 내가 돌아가는 인생의 마지막 자드락길이 쓸쓸하지 않게 지금부터 준비해야겠다.
환갑이란 나이의 무게가 어깨를 지그시 눌러온다. 적은 나이가 아니다. 내가 참여하는 모임 중 ‘윤좌’라는 문화사랑방 같은 동인회가 있다. 동인들의 나이가 다들 지긋하시다. 얼마전 팔십 고개를 넘어간 선배 동인이 내게 물었다.
“박 선생, 올해 나이가 몇이요?”
“아 예, 올해 환갑입니다!”
“참 좋은 나이네!”
우리는 같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