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저우 아시안게임 롤러스케이트 남자 계주 결승전에서 병역특례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다. 정철원 선수가 결승선을 통과하기 직전, 세리머니를 하다 0.01초 차로 금메달을 놓쳤기 때문이다. 그는 그 0.01초 차로 금메달뿐만 아니라, 병역 혜택까지 놓친 죄인이 됐다.
눈앞에서 금메달을 놓친 그의 스포츠맨십에 대한 비판보다 병역 혜택을 놓친 것에 대한 왈가왈부가 컸던 데에서 주객전도라는 인상을 받았다. 모두가 그가 병역 혜택을 받기 위해 운동하고, 국가대표가 되고,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고 여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이 사설을 읽기 전의 나까지도 주객전도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모두가 말하는 대로 생각하고 있었다. 아시안게임을 하는 내내 가장 많이 듣고 했던 말이 “금메달 땄어? 군대 안 가겠네! 다행이다!”였기 때문이었다. 이강인을 좋아하는 친구도 아시안게임 동안 군 면제를 위해 금메달을 꼭 따내야 한다고 진지하게 말하던 게 떠올랐다.
원래라면 전혀 연관성이 없었을 스포츠와 병역은 ‘병역특례제도’로 인해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국가 이익’과 ‘국위선양’을 이유로 병역 혜택을 주는 병역특례제도는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뿐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처음 만들어진 1973년 이후로 크고 작은 논란에 자주 휩싸였다.
이번 아시안게임 이전에도, 지금은 무산됐으나 BTS가 병역특례 문제로 논란이 됐던 적이 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빌보드 차드 1위와 그래미어워드 수상 등을 기록하며 문화훈장까지 수여받은 BTS의 행보를 ‘국위선양’의 범위에 포함해 군 면제를 주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이에 동의하는 사람과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나라의 권위나 위세를 널리 떨치게 한다는 뜻의 ‘국위선양’의 기준이 매우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BTS로 인해 예술이 그 범위에 들어가냐의 문제가 떠올랐던 만큼, 앞으로도 스포츠와 예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다시 비슷한 논쟁이 생기지 않을 거란 보장은 없다.
결국, 끊이지 않고 이어져 오는 병역특례에 관한 논란들은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나는 여러 논란을 거쳤던 병역특례제도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고민한 끝에 병역특례제도가 사라져야 한다는 결론을 냈다.
병역특례제도는 병역을 면제해 주는 것을 ‘특례’로 표현한다. 이로 인해 병역은 면제받아야 하는 ‘형벌’이 된다. 나라를 지키는 이 의무를 신성시하며 존중해 주고, 감사하자고 겉으로 말하고 있으면서 이런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당장 지난달에 전역한 남동생이 있어서인지 이 문제가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다. 입영통지서를 받은 순간부터 동생은 “군대에 가기 싫다”라는 말을 밥 먹듯이 했었다. 입대 직전 머리를 빡빡 밀고 침울해져 온 동생을 보며 한참을 웃었던 기억이 난다.
군대에 간 동생은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는지 살이 계속 빠져서 어머니가 꽤 걱정했다. 다행히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몇 달이 지나자 잘 적응해 군대 내에서 상도 받고, 운동도 열심히 하며 건강하게 전역했다. 돌이켜 보면 동생은 군대에 가는 걸 ‘손해’처럼 여겼던 것 같다.
병역을 둘러싼 모든 문제는 병역 자체를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특별히’ 여기기에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군대에 가는 것을 기피하거나 면제받으려 하고, 다녀온 사람들은 그 가기 싫은 군대에 갔다 왔으니 그만큼의 보상이나 대우를 받으려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휴전 국가인 이상, 병역은 국민에게 의무로서 이어질 것이다. 나라에 대한 의무로서, 나라를 지키는 일이 싫은 일로 취급받는 것은 나라에도, 군인에게도, 국민에게도 좋지 않다. 그러니 지금처럼 병역을 ‘형벌’로 여기는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
병역은 국민으로서 수행하여야 하는 국가에 대한 군사적 의무다. 이 의무를 행하는 일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의무를 행하는 국민을 그만큼 존중해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이 당연한 의무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의식 변화의 움직임이 더욱 빨리 일어났다면 동생은 울상을 짓지 않고, 웃으면서 입대하지 않았을까?
사실, 병역특례제도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것이 이번 시사연구 수업에서가 처음이었다. 지금까지는 그냥 ‘이런 제도가 있구나’ 정도로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겨 왔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모이고 모여서 결국 우리 사회에 병역을 ‘형별’처럼 여기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을 깨닫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만약 나 혼자 해당 이슈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면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제도가 ‘왜’ 만들어졌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제도가 ‘어디에’ 이용되는지 그리고 영향을 미치는지 아는 것도 중요함을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 계속해서 논란을 일으키는 제도를 또 발견한다면 전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않고, 그 이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