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진구 가야동에 거주하는 고보희(36) 씨는 대형 유통업체에서 수납원으로 일하면서 한 달에 115만 원의 수입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녀의 남편은 특정한 직업 없이 인근 공사장을 돌면서 일을 하다 보니 수입이 일정치 않다.
보희 씨는 올해 열 살이 된 아들 상진이를 보면 항상 미안하고 걱정부터 앞선다. 그녀는 “방과 후 친구들 모두 학원으로 향하고 아무도 놀아줄 사람이 없이 항상 혼자 지내는 아들이 안쓰럽다”고 말했다.
상진이는 가끔 보희 씨가 일하는 마트에 찾아가 엄마가 마치기를 기다리지만 보희 씨 직장 내 직원들의 눈치에 홀로 집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보희 씨는 “학원도 못 보내주고 아직 어린 상진이를 홀로 지내게 하는 것만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고 눈물만 나온다. 하지만 집안 형편상 아이를 맡길 곳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에는 정부기관, 민간단체, 사설기관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중 시에 신고된 지역아동센터 60개소와 시에 신고되지 않았거나 미처 파악되지 못한 지역아동센터 24개소를 합쳐 총 84개소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이들 지역아동센터를 이용하고 있는 저소득층 아동은 2058명으로 총 보호대상 아동의 6.4%에 불과하다.
따라서 빈곤층 아동 2만 9881명은 방과 후에 거의 방치된 채 혼자 지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부산 진구청의 경우 방과 후 자녀를 대상으로 영어뮤지컬 교육인 ‘해피투게더 교실’을 이달부터 운영하고 있다. ‘해피투게더 교실’은 동서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운영하고 있다. 참여 학생은 전국가구 평균 소득 이하 가정의 초등학교 재학생이며, 수업은 이 대학 사회교육원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 곳은 어린이들이 영어를 재미있게 배우도록 뮤지컬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노래, 춤, 연기 등 그들의 끼를 마음껏 뽐낼 수 있다.
‘해피투게더 교실’ 수업에 자녀를 보내는 김희진 씨는 자신이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수업이 끝나기 때문에 혼자 지내는 딸에 대한 부담감이 많이 줄었다. 그녀는 “일을 마친 뒤 딸을 데리러 가면 어김없이 영어로 인사하고 춤을 추는 등 그날 배운 것을 자랑하는 딸아이 모습을 보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부산 진구청 안수균 씨는 요즘 같이 사교육에 많은 돈을 투자하는 시기에 그러한 여유가 되지 않은 저소득층 가정이 더욱 늘어나고 있고 그 가정의 대부분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있어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해피투게더 교실은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제도로 시작한 지는 한 달 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많은 학부모가 모집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구 전화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고 한다.
저소득층과 맞벌이 가정의 자녀를 위해 학교의 방과 후 교육도 변하고 있다.
부산시 교육청에 따르면, 정규 수업과 방과 후 활동에 이어 ‘가정 돌봄의 3가지 기능’을 학교에서 대신해 주는 '종일 돌봄 교실'을 올해부터 운영하기로 하고 15개 초등학교에 시범교실을 선정했다. 이는 기존에 오후 5시까지 운영하던 ‘방과 후 보육교실’을 오후 9시까지 운영해 저녁 식사도 제공하는 방식이다.
부산시 교육청 이진희 씨는 ‘방과 후 학교’가 시행된 지 3년째로 어느 정도 정착되었고 이제부터는 실질적으로 참여 학생들의 학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등 질적으로 향상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금정구에 위치하는 서명초등학교는 부산시교육청 지정 ‘방과 후 학교’ 시범학교이다. 서명초등학교의 방과 후 학교는 맞벌이 가정 및 저소득층 자녀를 위해 무료로 ‘보육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1, 2학년은 오후 5시까지, 3, 4학년은 오후 6시까지 주간보육교에 참여할 수 있고, 5, 6학년은 오후 9시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보육교실에 참여할 수 있다. 특히 늘어나는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야간보육교실의 문의가 늘어났다. 그래서 이 학교는 4월부터 1학년에서 4학년을 대상으로 오후 9시까지 운영하는 '종일 돌봄 교실'을 시작했다고 한다.
서명 초등학교 김지혜 학생은 방과 후 학교에서 친구들과 종이접기도 하고 여러 악기들을 배우는 등 밤늦게까지 학교에 있고 싶을 만큼 재미있다고 말했다. 지혜 학생은 “이제 혼자서 놀지 않아도 되서 학원 다니는 아이들이 부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서명 초등학교의 관계자는 서동과 금사동 일대에 저소득층 가정이 많고 교육환경 또한 제대로 구축되어있지 않아서 학교가 가정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방과 후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저작권자 © CIVICNEWS(시빅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