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갈 데까지 갔다...소년법 개정, 실태조사 이상으로 현장의 목소리는 더 다급하다
/ 발행인 정태철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 이후 천안, 강릉 등지에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학교폭력 사태가 우후죽순처럼 터져 나왔다. 국민들의 소년법 개정(또는 폐지) 청원이 이어졌고, 대통령의 검토 지시가 있었으며, 급기야 교육부는 ‘학교폭력 실태조사’라는 사이트를 열고 대대적으로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학교폭력 신고를 접수하고 있다.
학교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소위 학폭위가 벌써부터 있었던 모양이다. 교감이 위원장인 학폭위에는 교사, 경찰, 변호사, 학부모 위원들이 모여 폭력 문제에 대처한다고 한다. 그런데 수사권도 없는 학폭위에서 피해자와 가해자 학생과 부모를 불러 놓고 조사하고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담당 교사들은 격무에 시달리고 심지어는 불리한 해결책에 앙심을 품은 학부모의 협박을 받거나 소송을 당하기도 한다고 한다.
학교에는 불량 학생들의 선도 프로그램도 있는 모양이다. 이번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의 가해 학생들도 사고 발생 몇 달 전에 이미 선도 프로그램을 이수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참여한 집단 상담, 미술 치료, 1박 2일 10시간 교육 등의 결과 보고서는 모두 이들이 착하게 교육을 잘 받았다며 '칭찬 일색'이었다고 YTN이 보도한 적이 있다.
이렇게 실제 제도들이 엉망이다 보니, ‘현실적인 학교 폭력 해결법’이란 글이 학부모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는 기사도 있었다. 여기에는 맞으면 경찰에 신고하라, 누가 때리면 사진 찍고 엄마에게 먼저 알려라, 학교 폭력 전문 변호사나 전문 심부름센터(흥신소)를 찾으라는 조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본지는 학교 폭력을 막으려고 격투기 도장을 찾는 아이들이 많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liliumpumilum.com/news/articleView.html?idxno=2055). 치명적인 급소 공격 위주의 무술인 격투기를 배우면 학생 자신이 웬만한 공격과 방어술을 익히게 되어 함부로 다른 아이들이 덤비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 아이가 격투기를 배운다는 소문이 돌면, 그 도장의 ‘삼촌’들이 보호해준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 아이를 못 건들인다고 한다. '묘책'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세상이 이 지경이니, 나는 어느날 갑자기 우리나라 학교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아는 중학교 현직 교사 몇 사람과 일부러 만나 대화를 나눴다.
그들은 하나같이 학교 폭력이 최근에 갑자기 기승을 부린 것은 절대 아니라고 했다. 어린아이들은 예나 지금이나 치고받고 싸우는 일이 다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긴 영화 <친구>나 <말죽거리 잔혹사>, 그리고 미국 작가 마크 트윈의 소설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보면 근거 없는 말은 아닐 성싶다. 요새 언론이 지나치게 시류에 편승하는 보도를 남발하거나 몇몇 특수한 사례로 과도하게 일반화려는 '귀납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일선 교사들은 ‘자살’만큼은 과거보다 훨씬 건수가 잦아진 것 같다고 말했다,
폭력의 원인이 공부 스트레스가 아닐까? 교사들은 요즘 중학교는 자유학기제 등으로 학생들 학습량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정부에서 책가방을 가볍게 하고 토론 등 흥미 유발 수업을 하라고 독려하는 바람에 중학생의 학업 스트레스는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고 한다. 그리고 교사들은 ‘결손 가정’이 학교폭력의 진짜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문제아의 부모는 이혼 등에 의한 편모, 편부가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엄마가 이혼 후 딴 남자를 사귀는 등 아이의 정신 연령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아이는 집 밖으로 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어서 아이가 부모 품을 벗어나 같은 처지의 또래를 만나면서 문제아의 길로 접어든다는 게 교사들의 공통된 진단이었다. 술, 담배, 마약, 범죄 등은 모두 친구로부터 배운다는 사회학의 ‘나쁜 친구 이론’이 결손 가정과 결합된 결과가 학교폭력인 것이다. 부모들은 뒤늦게 자신의 아이 문제를 깨닫기 시작하면서 나서 보지만, 한 번 겉돌기 시작한 아이는 부모의 말을 거의 듣지 않는다고 한다. “나 애 포기했어요. 학교가 알아서 하세요” 하고 학교 상담을 끝낸 뒤 연락을 끊은 학부모도 있었다고 한 교사가 전했다.
카톡과 SNS가 아이들 몰려다니는 걸 부추긴다는 얘기도 있었다. 그들은 SNS를 이용해서 편리하고 신속하게 나쁜 일과 수법을 공유하고, 심지어 자기들의 행동이 학교에서 적발되거나 법망에 걸릴 경우의 법적 지식과 대처 방법을 공유한다고 한다. 어떤 교사는 이를 두고 “아이들이 영악하다”고 표현했다. 그들은 무슨 일을 저지르면 '보호처분' 몇 호에 해당하는지 등 자신들의 죄와 처벌 조항을 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선 교사들은 정부, 사회, 가정 모두가 학교의 선생님들에게 학교폭력의 해결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고 털어 놓았다. 최근에는 교육청에서 교사에게 방과 후에도 학생을 지도하라고 요구한다고 한다. 그래서 출석 정지된 학생들 집에도 가야하고, 대안학교로 보내진 학생도 만나야 한다며 힘들어 했다. 교사들은 “선생이 슈퍼맨은 아닌데”라고 하소연했다.
아이들은 요즘 교사들이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아무 제재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고 한다. 예를 들면, 가해 학생에게 교사가 반성문을 쓰라고 하면, 가해 학생은 안 쓰고 버틴단다. 봉사활동하라고 하면, 또 안 하고 버틴단다. 때릴 수도 없고 윽박지를 수도 없는 답답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 학생은 오히려 큰소리를 치며 전학시켜달라고 한단다. 전학 가면 거기서 또 일 저지르고, 또 다른 학교로 가면 그만이란 게 폭력 학생들의 행태라는 것이다. 퇴학은 이미 사문화된 제도라고 한다. 폭력 학생들에게 학교 안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것은 법정에 가는 것이라고 한다. 소년법에 의해 일반법정에는 잘 가지 않지만, 문제아들이 소년법정에 가면 ‘소년원 2년 형’이란 최고형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법원행을 제일 무서워하는 게 사실이란다. 그러나 소년원 생활은 사후 기록에 남지 않는다고 하니, 강도, 강간 등 극단적인 범죄에 발을 들인 아이들한테는 소년법정도 위협이 되지 않는 게 한계라는 것이다.
학생이 교사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을 할 경우, 학교장이 직권으로 학폭위나 교육청을 거치지 않고 가정법원으로 바로 보낼 수 있는 ‘통고처분’이라는 제도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가정법원에서는 문제 학생을 소년원에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교사 입장에서 제자를 바로 법원에 보내기를 꺼려하기 때문에 통고처분은 거의 이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번 대화에 참석해준 교사 한 분이 부산 여중생 폭력 사건의 가해자들과 같이 어울려 다니던 여학생 한 명을 최근에 만났다고 했다. 그 여학생은 그날 다른 약속이 있어서 문제의 폭력 현장에서 용케 빠지게 됐다고 한다. 교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 여학생은 “소년법이 없어져야지, 그게 있다는 걸 다 아니까, 애들이 다 갈 데까지 가는 거에요”라고 스스로 말하더란다.
위 사진 설명에는 "아이들을 맘대로 놀게 하라. 그러나 서로 죽이게는 하지마라"고 되어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폭력 학생을 선도하는 게 아니라 방치하고 있다. 놔두면 정말 아이들 폭력이 살인이 될 것 같다. 이제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엄벌주의’ 카드를 고민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