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아주대학교 석좌교수: 뉴욕주립대(SUNY) 취재와 자유의 여신상, 그라운드 제로 등 뉴욕 관광

[제2부 보람 찾는 언론학 교수] / 장원호 박사

2017-09-24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17)-4에서 계속:

우리 부부는 1월 12일 캐나다를 거쳐 미주리에 도착했고, 며칠을 쉬고, 28일 노스웨스트 비행기 편으로 오후 세시 경에 도착하는 아주대 학보사 기자 일행을 맞기 위해 내가 밴을 빌려서 직접 세인트루이스 공항으로 나갔습니다. 컬럼비아에 도착한 학생 일행을 호텔에 체크인시키고, 중국요리 뷔페를 제공하는 음식점 ‘만리장성’으로 갔는데, 모두들 여행에 지친 듯 음식을 별로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나와 학생 기자들은 호텔로 돌아와서 앞으로의 일정과 취재 계획을 논의했는데, 나는 정말 기절할 뻔했습니다. 그렇게 당부한 취재 준비가 충분히 돼 있지 않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학생들은 간단히 설문지를 미국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남녀 학생 동거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다든가 미국 대학생들의 컨닝 등 부정행위 실정을 취재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취재 주제도 좋지 않고 즉흥적인 설문지에 의한 취재 방법도 좋은 게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마침 안식년으로 이곳 미주리대학에 와 있던 제자인 경성대 정태철 교수가 과학적 표본으로 하지 않은 설문조사로 기사를 쓰는 것은 기자가 해서는 안 되는 몇 가지 금기사항 중 하나라고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학생들은 늦게나마 취재 계획을 전면 재수정하고 취재 준비를 다시 구체적으로 논의했습니다.

29일은 하루 종일 미주리 대학에서 취재했는데, 저널리즘 스쿨은 내가 학생들을 안내했고, 미주리 대학의 다른 분야 취재는 다행히 정태철 교수가 학생들을 안내해 주어서 학생들은 계획한 것보다 많은 곳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우리 집에서 미국산 최고급 스테이크를 구워 먹으며 미국에서의 두 번째 날을 보냈습니다.

우리는 다음 날 정 교수가 태워 준 차를 타고 세인트루이스 공항으로 가서 멤피스를 경유해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고 뉴욕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우리는 공항에서 예약한 GM 9인승 밴을 렌트하여 뉴욕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뉴욕에 머무는 동안 뉴저지의 포트리 시에 있는 ‘홀리데이 인’을 MBC의 김경중 특파원이 예약해주어 여기서 며칠 머물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도착 다음 날인 금요일에 뉴욕주립대학 스토니브룩 캠퍼스(SUNY, The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Stony Brook)을 돌아보고, 토요일이며 설날인 그 다음날과 일요일까지 뉴욕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금요일 아침 일찍 롱 아일랜드에 있는 스토니브룩으로 차를 달렸는데, 맨하탄을 거처 이 대학으로 가는데 두 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뉴욕주립대학을 우리가 집중 취재한 이유는 아주대학과 자매학교인 이 대학과 앞으로 2+2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대학은 우리 아주대 총장인 오명 박사의 모교이며, 이 대학이 저명교수를 초빙하여 '오명 석좌교수'라는 칭호를 부여하는 제도를 갖고 있었고, 또 아주대의 정보통신대학과 무선 인터넷 연구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는 등 아주대학과 아주 중요한 파트너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사전에 이 대학의 여러 부서와 연락을 취하려 했으나 잘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학교에 도착해서 처음부터 총장실로 올라가니 총장 비서가 눈치 빠르게 주요 인사를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우리는 교무 담당 부총장, 학생 담당 부총장, 대학원장 겸 외국 프로그램 담당자인 마틴(Lawrence Martin) 교수를 회의실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필요한 사항을 청취한 뒤 잘 도와주겠다고 했으며, 10시 반부터 우리는 마틴 대학원장의 안내로 우리의 큰 관심사인 학생회관을 자세히 돌아보고 취재했습니다.

사실 아주대가 이곳에 학생회관을 새로 짓어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를 위해 2주 후에 학생회 간부와 학생처장 등이 이곳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고, 우리가 뉴욕주립대학의 준비사항을 먼저 체크하러 온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은 학생 담당 부총장이 대접하는 점심을 먹고, 도서관 등 이곳의 시설을 돌아보았으며, 각자의 계획대로 개별 취재를 하고 오후 5시경에 뉴욕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날의 취재는 수확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이 대학 간부들도 만났고, 아주대가 한국의 좋은 대학이라는 사실을 홍보했으며, 동시에 아주대와 뉴욕주립대학과의 2+2 프로그램이 빨리 시행되기를 바란다는 요청도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포트리에 와서 MBC 김경중 특파원과 저녁을 식당에서 간단히 먹고 그 근처에 있는 김 특파원 집으로 초대되어 술과 후식을 잘 대접받았습니다. 특히 김 기자의 딸이 애니메이션 공부를 한다고 하여, 나는 언제나 자문에 응하고 도와주겠다고 말했고, 토요일은 마침 비번인 김 기자가 자기 밴으로 학생들 뉴욕 시내관광을 시켜주기로 했습니다. 나는 모처럼 호텔에 혼자 남아서 책이나 읽기로 작정하고 스토니브룩에서 소설책 두 권을 샀습니다. 요즘 소설책은 페이퍼백으로 나와도 한 번 보고 버리기는 아까울 정도로 값이 비쌌습니다.

나는 뉴욕을 자주 왔던 터라 더 관광하고 싶은 곳이 없어서 꼼짝 않고 호텔에 머물면서 소설책을 읽었습니다. 학생들은 김 특파원의 안내로 뉴욕 시내 구경을 잘 하고 늦게 돌아왔습니다. 나는 중앙일보 뉴욕지사에 근무하는 김창욱 내외를 불러 함께 저녁을 했습니다. 김창욱 씨는 중앙일보 차장 시절인 1993년에 서울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주리로 연수를 와서 나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해에는 8명의 언론인들이 왔었는데, 부산의 차용범 씨는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가 박사 학위를 마치고 부산시청 미디어 센터 등을 거쳐 현재는 부산국제광고제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고, 경향신문에 있던 김현섭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관을 하다가 헤리티지 재단 초청으로 미국으로 갔습니다.

이 밖에도 그 해에는 매경의 김대호, 한경의 유재혁, 그리고 YTN 이사인 고광남 등 각 분야의 언론인들이 참여해서, 한해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도로 재미있게 보냈는데, 특히 김창욱, 김대호, 유재혁은 나의 고대 후배로서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와서 사이가 각별했습니다.

김창욱은 중앙일보로 돌아가서 사회부장 등을 역임하다가 결국 중앙일보를 정리하고 뉴욕 현지 중앙일보 사장을 맡아 미국으로 이민 온 지 벌써 5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발행인 사장을 맡고 있는 그가 털어 놓은 미국에서 지낸 그간의 이야기는 눈물겹도록 힘든 사연의 연속이었습니다. 열심히 어려운 시절을 견딘 그는 처음 목표한 대로 아이들 공부를 잘 시켰고 지금은 편하게 지낸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열심히 살자고 다짐하면서, 우리는 헤어질 때 애절한 마음에 서로가 멀리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습니다. 다시 미국에 돌아오면 우리도 찾아가겠지만, 나는 김창옥 씨가 아직도 꿈에 보인다는 컬럼비아에 오라고 신신당부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맨해튼으로 나갔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여신상을 둘러보고, 바로 9.11 현장으로 갔습니다. 날씨가 쌀쌀해서 밖에 오래 있기 힘든 처지였지만 그 거대한 쌍둥이 건물이 파괴되는 텔레비전 뉴스를 상기하면서, 우리는 그곳에서 한 동안을 서 있었습니다. 월 스트리트의 증권 시장 부근을 돌아보고, 우리는 브로드웨이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가서 음식은 맛있게 먹었지만, 1시간 주차료로 16달러를 내고 보니, 역시 뉴욕은 비싸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고 학생들이 말했습니다.

뉴욕에 온 김에 우리는 컬럼비아 대학을 구경하고 그 근처의 상가를 몇 군데 들렀습니다. 마침 일요일에도 일하는 김경중 특파원의 뉴욕 사무실을 방문한 뒤, 학생들은 본인의 자유 선택에 따라서 라디오 시티, 록펠러 센터 등을 관광했습니다. 다시 포트리로 돌아온 우리는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일찍 잤는데, 내일은 출근 시간의 러시아워를 피해 보스턴 근처인 캠브리지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17)-6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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