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향한 창끝, 노 대통령 부관참시로 물타기 되어선 안된다

/ 논설주간 강성보

2017-09-27     논설주간 강성보

육두문자를 쓰지 않고 하는 욕설 중 가장 지독한 것은 ‘육시랄(육시당할) X’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육시’는 한자어 ‘륙시(戮屍)’로, ‘시체를 도륙한다’는 의미다. 즉 ‘육시랄’은 “네 X이 죽은 뒤 그 시체가 다시 도륙당할 것”이란 뜻이다. 상대방에 대한 극단적인 분노와 저주가 담긴 무시무시한 욕설이다. 남녀 성기나 성행위를 소재로 한 현란한 욕설이 많이 개발된 요즘 이 ‘육시랄...’은 잘 쓰이지 않지만, 옛날 우리 선대들은 감정이 아주 격해졌을 때 이 욕을 자주 내뱉곤 했다.

‘부관참시(剖棺斬屍)’는 ‘륙시’보다 한 단계 더 위다. 륙시는 관 속의 시체를 끄집어내 목만 자르는 행위를 말하지만, 부관참시는 그 시체가 안치된 ‘관’마저 깨부수고 그 안의 시체를 난도질하는 것이다. 

1498년 조선 10대 임금 연산군이 일으킨 ‘무오사화(戊午士禍)’ 당시 이미 죽은 뒤 부관참시 당한 사림파 선비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주로 부왕 성종 연간에 연산군의 생모 폐비 윤씨 처형을 의결한 어전회의 참석자들이었다. 송흠, 한명회, 정여창, 남효온, 성현 등이다. 세조의 미움을 사 죽임을 당했던 김종직은 사망한 지 오래됐고 폐비 윤 씨 처형과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이들 사림파의 정신적 스승이었다는 점에서 그들과 함께 부관참시 형을 받았다.

사체 훼손의 형벌은 양의 동서를 막론하고 비일비재하게 자행됐다. 핍박을 받은 자가 권력을 장악한 뒤 이미 죽은 사람에게 원한을 갚기 위한 보복 행위로 사체를 훼손했다는 기록이 적지않다.

서양의 경우 잉글랜드 대주교 존 위클리프를 사체훼손형을 받은 대표적 인물로 들 수 있다. 위클리프는 14세기 영국왕 에드워드 2세의 비호 아래 면죄부 장사를 일삼는 로마 교황청의 부패와 타락상을 집요하게 비판했다.

그 결과 교황청으로부터 미움을 받아 파문당했으며 그의 사망(1382년) 후 33년이 되던 1415년 독일 보덴에서 열린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로부터 이단으로 찍혀 사체 화형형을 선고받았다. 형이 확정되고 13년 뒤 교황 마르티누스 5세는 실제 위클리프의 무덤을 파헤쳐 사체를 불태우는 화형을 집행했다. 한 줌의 재가 된 그의 유골은 웨일즈 지방의 세이번 강에 뿌려졌다.

위클리프의 죄목은 신성모독. 그는 당시 라틴어로 된 성경을 일반인도 접근하기 쉽게 영어로 번역했는데, 이 행위가 성스러운 하나님의 말씀을 세속화함으로써 격을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중세 암흑시대 유럽에서는 그런 터무니없는 논리가 통했다. 하지만 위클리프의 이 선구적 신앙 행위는 많은 성직자들을 감화시켜 16세기 마틴 루터나 츠빙글리, 칼뱅 등에 의한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의 불길로 이어졌다.

위클리프는 정치적 성향도 매우 진보적이었다. 영국식 민주주의의 초석을 닦은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우리가 민주주의 정치를 말할 때 흔히 인용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부’라는 명 구절이 에이브라함 링컨의 작품으로 알고 있으나, 실은 위클리프가 원작자다. 미국의 남북 전쟁이 끝난뒤 게티즈버그에서 감동적인 연설했을 때 링컨은 저작권료도 내지 않고 위클리프의 저서 속 이 구절을 그대로 인용했던 것이다.

역사가 아닌 신화의 영역이지만 동이족의 치우(嗤尤) 천황도 사체가 갈갈이 찢기는 참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마천의 사기 등에 따르면,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 중국 삼황오제 시절 화하족(華夏族: 漢族)의 황제(黃帝)는 치우 천황과 지금 황하 유역의 중원을 둘러싸고 패권을 다투고 있었다. 농경민이 중심이 된 화하족은 유목민인 동이족에 비해 숫적으로는 우세했으나 전투력이 뒤처졌다. 황제는 치우와 백 번 싸워 백 번 패했다. 그러다가 지금 베이징 인근으로 추정되는 탁록(涿鹿)지방에서 건곤일척의 전투가 벌어졌다. 여기서 황제는 치우를 전사시키고 회심의 일승을 거둔다.

황제는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얼굴을 가진(銅頭鐵額) 치우가 너무 무서웠다. 다시 부활해 자신의 화하족을 괴롭힐가봐 두려웠다. 그래서 그의 몸을 조각조각 내어 중국 각지에 분산시켜 묻었다. 그 치우 시신 조각을 묻은 장소로 추정되는 하북, 하남성 곳곳에 군신 치우사당이 세워져 지금도 중국인들의 추앙을 받고 있다.

근세에 발굴된 한 고대 설화를 기록한 사서에 따르면, 황제는 또 치우의 위장을 도려내 솜뭉치 등을 채워 넣은 후 부하들로 하여금 발로 차면서 희롱하도록 했다고 한다. 바로 축국(蹴麴)의 기원이다. 지금 산동성 쯔보(淄博)시에 가면 제국(齊國)박물관이 있는데 중국 제나라 유물과 함께 전 FIFA 의장 블레터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사진이 내걸려 있다. 박물관 측에 따르면, 축구의 기원이 바로 축국이며 그 축국이 이 제나라에서 시작됐음을 국제축구협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고 한다.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의 응원단은 치우천황의 얼굴을 형상화한 붉은 악마를 내걸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전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달군 이 응원의 기획단은 우리 한국인과 치우천황, 그리고 축구와의 친연성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또 동이족의 적통이며 치우천황의 후손이라는 인식을 유전자 깊숙이 새기고 있는 우리 한민족은 어느 나라든 왕이 친히 전쟁에 나갈 때는 언제나 독기(纛旗)를 내걸었다고 한다. 꿩의 꽁지 깃털 등으로 만든 이 독기가 상징하는 것이 바로 치우천황이었다. 지금 서울 성동구에 있는 ‘뚝섬’은 조선시대 왕들이 독기를 내걸고 승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 곳이다. 독기의 ‘독섬’이 음운 변화해 ‘뚝섬’이 된 것이다. 제방을 뜻하는 ‘뚝’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얘기가 좀 멀리 왔지만, 보수정당들이 지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부관참시를 시도하고 있다고 하기에 떠올려본 사체 훼손의 역사다. 부관참시는 명예 형벌이다. 신체적, 경제적 형벌은 아니지만 유족에 대해 견딜수 없는 불명예를 안긴다는 점에서 그 어느 형벌보다도 더 잔혹하며 비인도적이다.

보수정당이 새삼스럽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650만 달러 뇌물을 계속 걸고 넘어지려는 이유는 뻔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칼끝과 여론의 화살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방편으로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뇌물사건의 진상에 대해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 당사자인 노 전대통령이 극단적인 선택을 함으로써 사건이 종결됐다. 자유한국당은 사건을 다시 뒤져보자고 말한다. 고인이 된 노 전대통령을 다시 소환할 수는 없지만 미망인 권양숙 여사 등을 조사해서라도 진상을 파악하자고 덤빈다. 특검법도 만지작 거리고 있다. 바로 노 전 대통령을 무덤 속에서 다시 끄집어 내 칼질하겠다는 자세다.

참 잔인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을 지낸 정진석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투신하기 전날 권양숙 여사와 부부싸움을 벌였고 이로 인해 권 여사가 가출했다는 새로운 정보를 SNS를 통해 공개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그 정보를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정 의원은 낱낱이 밝혀야 한다. 사실이 아니라면 이는 사자에게나 살아있는 사람에게나 엄청난 명예훼손이 된다. 옛날 주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보호하고 싶다는 충정은 이해하겠지만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MB와 그 측근들의 비리와 죄상이 지금 비늘 벗겨지듯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조만간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검찰청 포토라인에 MB 역시 서지 않을 수 없을 듯 싶다. 진실을 향한 온 국민의 여론과 검찰 수사의 거센 파도 앞에 자유한국당이 부관참시라는 케케묵은 꼼수로 맞대응하려 해도 폭풍 앞의 촛불에 불과할 것이다. 설사 지금 당장 실정법의 법망을 피한다 해도 언젠가는 그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하늘의 그물은 성기기는 해도 결코 죄인을 놓치는 법이 없다(天網疎而不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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