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순 기자회견 소동...까딱 하다간 미디어가 프로 뉴스 메이커 서해순에 말려든다

/ 발행인 정태철

2018-09-29     발행인 정태철
내가 나에게 말하는 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란 한 개인이 사회의 다른 여러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권리다. 이때 표현의 자유를 성취할 수단이 바로 언론(미디어)이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개인들에게 공평하게 신문이나 방송이 개방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그래서 대통령은 기침만 해도 뉴스가 되지만, 일반인은 희귀병에 걸려 죽기 전에는 뉴스를 타지 못한다. 1967년 미국 법학자 제롬 배론(Jerome Barron) 교수가 처음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배론 교수는 미디어가 표현의 자유를 독점했다며,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미디어가 의견 표현의 기회를 모두에게 공평하게 제공할 의무를 갖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게 바로 ‘미디어 접근권(the right of access to the media)’의 효시다.
미디어 오너와 기자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인, 고위 공직자, 기업인, 연예인, 스포츠 스타, 저명 학자 등의 셀리브리티(유명인사)들은 언론 접근이 쉽다. 이들에게는 기자들이 먼저 달려들기 일쑤다. 특히 이들이 벌이는 기자회견은 가장 쉬운 언론의 미끼다. 기자회견으로 재미를 본 원조가 바로 매카시즘으로 유명한 미국 매카시 전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멀쩡한 사람들을 공산주의라고 발표하는 기자회견만으로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다. 그들이 공산주의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중에는 그가 '오늘 오후에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그날 오전에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자들이 몰려왔단다. 매카시는 뉴스거리가 필요한 기자라는 동업자의 등을 타고 국민을 유린한 것이었다.
최근 우리나라처럼 기자회견 또는 인터뷰가 많은 나라도 없을 듯하다. 국정 농단과 적폐 청산 관련해서 구속된 사람이 수십 명이니 이들이 검찰에 들락거릴 때마다 마이크가 춤을 춘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시시했다.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자기 변호 뿐이었다. 질문을 받지도 않았다. 1995년 내란죄로 소환되기 직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골목 성명' 기자회견도 요란했다. 미디어가 다 모였으나 메시지는 하나도 없었다. 대통령의 미디어 접근권 만이 충족되었을 뿐이었다. 공영방송을 두고 여야가 바뀔 때마다 싸움이 벌어지는 것도 미디어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접근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정치인들은 어느 미디어가 자신을 배제했다고 생각되면 반론권을 요구하기도 한다. 반론권은 접근권의 일종이다. 요새는 연예인도 기자회견을 활용한다. 송중기, 송혜교 커플도 결혼 발표 기자회견으로 인기를 높였고, 나훈아 씨의 야쿠자에 의한 신체 일부 훼손설 기자회견은 기자회견의 '백미'였다. 그는 책상 위로 올라가 “제가 바지를 내려서 5분간 보여드릴까요, 아니면 믿으시겠습니까?”란 말 한 방으로 루머를 일소했다. 이게 즉흥적인지 연출된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기자회견은 원래 진실이 이런 식으로 모호한 법이다.
배론의 접근권 덕에, 우리나라도 일반 수용자의 접근권이 많이 향상됐다. 방송국은 시청자위원회를 운영하는 게 법적 의무이며, 신문의 독자위원회, 독자 투고, 방송 프로의 방청객 참여, 전화 참여, 사연 참여, 댓글 등이 모두 접근권 때문에 생겼다. 최근에는 페이스북, 블로그, 유튜브 등 SNS가 활발해지면서 누구나 사회 전체를 향해서 한 마디 할 수 있는 과잉 미디어 접근 시대가 됐다. 누구나 기자처럼 글을 전파시킬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의 미디어 학자 캐츠는 “기자가 산 위에서 십계명을 들고 서 있는 모세 같던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인터넷 신문을 창간하기도 쉽다. 미디어를 창간하는 것은 미디어 접근권을 아예 소유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터넷 신문은 등록 개수만 6000개가 넘는다. 테크놀로지로 일반인의 접근권이 많이 향상된 것이다. 그런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소외된 일반인들의 미디어 접근권이다. 이들은 세상에 할 말이 있으나 하소연할 곳이 마땅치 않다. 그래서 억울한 사연을 가진 일반인들이 언론에 접근하는 방법은 극단적이고 눈물겹다. 1인 시위를 하는 방법도 있고, 한강 다리를 올라가는 방법도 있다. 소위 자살 소동을 벌이면, 기자들이 몰려오기 마련이다. 인질극도 있다. 인질을 잡고 억울하다고 하면 기자들이 달려와 그 소리를 들어 준다. 이혼한 부인에게 불만이 많은 남편이 아들을 인질로 잡고 자기에게 잘못이 없다고 주장한 경남 합천의 최근 엽총 인질극 등 인질극은 제법 흔하다. 소수의 주장을 미디어를 이용해서 널리 퍼트리려는 사람들이 미디어를 강제로 끌어들이려고 테러를 저지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미디어 악용(media abuse)’이라고 한다. '미디어 어뷰즈'가 이슈가 된 계기는 1985년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헤즈볼라가 미국 TWA 항공기를 하이제킹한 사건이었다. 헤즈볼라가 납치 항공기를 레바논에 강제 착륙시키고 인질 석방 조건으로 내세운 게 자기들의 주장이 CNN으로 전 세계에 생중계되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대부분 인질은 풀려났으나, 일부 인질은 목숨을 잃었고, CNN 방송은 허락되지 않았다. 테러리스트들의 방송 접근권은 비싼 희생을 치루고 거부된 셈이었다.
2005년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도 대단한 미디어 악용 사례였다. 그는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국내 과학자로 인지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 사이에서 황우석 신드롬까지 일으켰다. 그러다가 논문 조작, 줄기세포 조작 제보가 이어지고, 방송이 이를 파헤치자, 황 교수는 기자회견으로 난국을 돌파하려고 했다. 한 시간이 넘게 진행된 그의 기자회견은 전국으로 생중계됐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매진해야할 황 교수를 미디어가 의혹만 가지고 괴롭힌다는 여론을 일으켰다. 모든 게 끝난 지금, 그는 일부 유죄가 선고되어 교수직에서 파면됐다. 최근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 임명자가 물러난 이유도 과거에 황우석 교수의 연구 비리와 관련이 있다는 게 이유였다. 가객(歌客) 김광석의 전 부인 서해순 씨가 요즘 가장 핫한 인물이다. <김광석>이란 다큐 영화가 김광석 타살 의혹과 딸 서연 양 의문사 의혹을 제기하면서부터다. 서해순 씨가 자의로 전격 JTBC에 출연해서 인터뷰를 자청했다. 인터뷰 방송을 보고 지적 수준이 보통이 아니라는 둥, 오히려 손석희 앵커가 헤맸다는 둥 의견이 분분했다. 그만큼 그녀는 횡설수설하면서도 당돌하게 질문에 조목조목 답했으며, 사회가 자신을 마녀사냥한다고 항변했다. 그녀는 다음날 CBS에 출연, 여기서도 거침없는 기자회견 행보를 거듭했다. 네티즌들은 미워죽겠다고 하지만, 그녀는 할 말 다 하고 다녔다. 방송국이 그녀에게 접근권의 카페트를 깔아 주고 있다. 죄가 없으니 저리 당당한 것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고, 경찰 조사에 앞서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려고 그런다든지, 적어도 <김광석> 영화 보고 일방적으로 자신을 의심하는 여론을 흔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얘기도 나돈다. 아무튼 기자회견이 그녀를 여론의 주인공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기자회견, 그것은 뉴스를 타려는 뉴스 메이커들의 고도의 계산과 전략이 섞인 언론플레이다. 거기다가 기자회견이 죄인에게 변명의 기회를 제공하든 말든 시청률만 오르면 그만이라는 미디어의 ‘선정주의’와 그에 따른 ‘시청률 지상주의’, 그리고 자기에게 카메라가 몰려오는 순간을 이용해 여론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프로 뉴스 메이커의 언론플레이와의 합작품이다. "이거는 민주주의 특검이 아닙니다"라고 검찰에 출두하면서 대기하던 기자들에게 의도적으로 외쳤던 최순실의 언론플레이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그러나 여전히 앞뒤 안 가리고 기자들은 뉴스 메이커들에게 경쟁적으로 우르르 달려든다. 그 와중에 지금 언론은 서해순에게 말려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