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과회사 배 불리는 의미 없는 빼빼로데이에 왜 휘둘리나" 자성론

비판 불구하고 빼빼로시장 여전히 호황...백화점· 과자 재료상·마트마다 손님들로 북새통 / 정인혜 기자

2018-11-11     취재기자 정인혜
아라비아 숫자 11이 막대 모양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만들어진 날, 11월 11일 ‘빼빼로데이’가 돌아왔다. 별다른 축제나 행사는 따로 없다. 그저 서로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친목을 다지는 날이다.  당초 연인들의 기념일이었지만, 빼빼로 제과사들의 마케팅이 성공하면서 현재는 전 국민적인 기념일로 발전했다. 요즘 빼빼로데이에는 커플들은 물론 가족, 친구, 직장 선후배 사이에서도 서로 빼빼로를 주고받으며 친목을 도모한다. 빼빼로 1년 판매량의 절반 이상이 빼빼로데이 전후로 나간다는 통계도 있다. 매년 빼빼로데이가 돌아오면 언론에선 제과사의 상업성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진다. 사실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이 다수다.  직장인 오모(26, 부산시 진구) 씨는 빼빼로데이가 부담스럽다. 이번 빼빼로데이에는 남자 친구는 물론 직장에 나눠줄 빼빼로까지 20만 원 이상을 지출했다고. 오 씨는 “슈퍼마켓이고 편의점이고 전국이 떠들썩한 분위기이지 않나. 혼자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어쩔 수 없이 챙기게 된다”며 “별 의미도 없고 돈만 쓰고 여러모로 짜증나는 날”이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다. 올해 빼빼로데이가 주말인 터라 학교에서는 그냥 넘어갈 법도 한데, 아이들은 기어이 지난 10일 금요일에 빼빼로데이를 기념했다. 일부 초등학교에서는 빼빼로를 들려 보내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던 듯 보인다. 초등학교 3학년 자녀를 둔 주부 김모(35) 씨는 “할로윈데이 지나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빼빼로데이라며 아이들이 다들 난리인지 모르겠다. 학교에서 하지 말라고 해도 어디 애들이 말을 듣냐”며 “안 사주면 혼자 소외당할까 걱정돼 친구들 나눠주라고 양손 가득 사서 보냈다”고 말했다. 긍정적인 반응도 있다. 대학생 한혜원(24, 경기도 시흥시) 씨는 “젊은층이 이렇게 나서는 기념일은 발렌타인데이, 빼빼로데이 이 두 개밖에 없지 않냐”며 “기념일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닌데, 1년에 한두 번 재밌게 즐기는 걸로 ‘한심하다’는 둥 비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싫으면 무시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의든 타의든 많은 사람들은 열심히 빼빼로데이를 준비하고 있다. 10일 알바천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7일부터 지난 9일까지 20대 성인남녀 328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빼빼로데이 때 ‘어떤 것도 구매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한 응답자는 전체의 21%에 불과했다. 10명 중 8명이 빼빼로데이를 기념할 계획이 있다는 것이다.
빼빼로데이를 하루 앞둔 지난 10일. 번화가의 모든 상점은 빼빼로 마케팅으로 여념이 없었다. 특히 제과 제빵 재료상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구름 인파가 몰려들었다. 평일 오후 시간이었지만, 교복을 입은 학생에서부터 젊은 여성, 아이와 함께 찾은 주부들도 많았다. 이곳에서 만난 주부 최정윤(33, 부산시 동구) 씨는 아이와 함께 빼빼로를 만들고 싶어 재료상을 찾았다고 말했다. 명절마다 송편, 만두 빚기에는 별 흥미를 갖지 못하는 아이들이 빼빼로 만드는 것은 먼저 성화일 정도로 좋아한다고. 최 씨는 “송편 빚는 건 힘들어하는 아이가 빼빼로 만드는 건 정말 좋아한다. 아이들이 빼빼로 재료를 사오라고 하도 난리인 통에 (재료 사러) 왔다”며 “본인이 만든 빼빼로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라도 직접 음식 만드는 데 흥미를 붙이면 나중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라며 웃었다. 매장 안에는 가게 상호가 쓰인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재료별로 나눠진 코너마다 거의 한 사람씩 서 있었을 정도. 그 중 한 사람에게 물어보니, 다들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간 일을 하기로 한 ‘단기’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했다. 빼빼로데이 대목을 맞아 이틀간만 직원을 늘린 것이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자신이 맡은 구역에 서서 재료가 놓인 위치를 안내하고 도난을 감시하는 게 주 업무란다. 한 아르바이트생은 “하루 종일 서 있기만 하면 되는 줄 알고 쉽게 생각했는데, 손님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없다”면서도 “그래도 이틀만 하면 되고 시급도 높으니 괜찮다”고 말했다. 그의 시급은 8000원. 올해 최저 임금 6470원보다 1530원 더 높다. 점심 식대는 따로 제공된다니 젊은 층에게는 쏠쏠한 용돈 벌이인 셈. 연인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특이한 점은 남성 고객들이 늘었다는 것. 2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와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왼손에는 여자 친구 손, 오른손에는 재료가 수북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선 남성은 옆에 선 여자 친구에게 연신 “오빠가 다 만들어줄게. 나 할 수 있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여자 친구의 얼굴에는 미소가 묻어났다.
백화점, 마트에서도 빼빼로 판매에 여념이 없었다. 입구부터 빼빼로 기획전 매대가 깔려 있고, 매장 내 입점한 편의점, 제과점에서는 좌판을 따로 만들어 매장 앞에 전시했다. 저렴한 가격에 빼빼로를 내놓은 매대는 일찌감치 물량이 다 빠지고 없었다. 포장지, 선물 상자도 마찬가지. 한 할인판매점에서 만난 여고생 박자연(17) 양은 “내일 친구들에게 선물하려고 빼빼로랑 상자를 사러 왔는데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며 “다들 왜 이렇게 부지런한지 모르겠다”고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성인 10명 중 8명이 기념한다는 빼빼로데이.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나친 상술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제과 회사의 배만 불리는 ‘의미 없는’ 날이라는 것이다. 특히 빼빼로 과자 제작의 원조 롯데 제과를 향한 비판이 다수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현재 롯데 제과 빼빼로는 46g 용량에 가격은 1200원이다. 1997년 빼빼로가 처음 출시됐을 때와 비교해 용량은 6g이 증가한 반면, 가격은 6배나 뛰어오른 것.
이에 온라인에서는 롯데제과를 겨냥한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한 네티즌은 “솔직히 빼빼로데이는 롯데가 매상 올리려고 만든 날 아니냐. 도대체 그날 비싼 돈을 주고 빼빼로를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걸 사먹지 빼빼로 사먹는 사람들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다. 해당 댓글은 추천 수 300을 기록하는 등 많은 네티즌들의 공감을 샀다. 이에 대해 롯데제과 측은 “(빼빼로데이마다) 저희를 비판하는 의견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빼빼로데이는 롯데에서 ‘데이 마케팅’을 염두하고 만든 날이 아닌 민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날”이라며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사회 환원에 앞장서면 비판은 자연스레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