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 할로윈 데이? '이벤트 데이 문화'는 문화적 넌센스, 사회적 환상

/ 발행인 정태철

2017-11-11     발행인 정태철
1985년 1월, 미국 유학 시절 첫 학기 어느 날이었다. 수업 중 강의실 창 밖에서 “Happy Birthday, Susan!”이라고 적힌 도화지를 누군가 들어 올렸다. 교실 안 학생들이 환호했고, 그 중 수잔인 듯한 주인공이 V자를 그렸다. 그건 한 남학생의 여자 친구 생일 축하 이벤트였다. 당시 우리 세대에게는 애인 생일은커녕 형제나 친구 생일 챙기는 풍습이 없었다. 지금도 나는 내 형제나 친구들 생일이 언제인지 전혀 모른다. 그런 내 눈에 그때 미국 대학생들의 생일 축하 이벤트는 일종의 문화 충격처럼 낯설고 대학생답지 않은 유치한 장난으로 보였다. 몇 년 전 내 생일 날, 페이스북에서 지인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내게 보내오는 것을 보고 이에 익숙지 않은 나는 기겁해서 페북 정보란의 생일을 화급하게 지운 기억이 있다. 주머니 용돈이라곤 버스비 정도밖에 없던 우리 젊은 시절에 생일 파티란 단어 자체가 없었다. 초임 교수 시절, 어느 아침 수업시간에 꽉 차야 할 강의실 절반이 비는 일이 발생했다. 출석한 학생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날 변고는 전날 밤 우리 과 누구 생일 파티의 ‘후유증 참사’였다. 우리 세대에게 없던 친구 생일 파티가 요즘 세대에게는 미국처럼 성행하는 모양이다. 이제 우리도 그들만큼 살만해졌나보다. 정말 경제적 풍요 때문인지, 요새는 날마다 기념일이고 이벤트 데이다. 11월 11일은 그 유명한 ‘빼빼로 데이’다. 빼빼로가 특정 기업의 상표이고 보면, 빼빼로 데이는 마케팅 전략의 산물일 가능성이 짙다. 10월 10일은 ‘초코파이 데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써니텐 데이’라고 한다. 이것도 특정 상표가 붙은 날이니 관련 기업에 의심의 눈초리를 안 보낼 수 없다. 기업이 뒤에서 부채질을 한다고 부리나케 빼빼로와 초코파이를 사들고 서로 선물로 주고 받는 게 좀 우습다. 상업적 동기가 있기는 하지만 공익성을 띄는 기념일은 그래도 애교스럽다. 3이란 숫자가 겹치는 3월 3일은 ‘삼겹살 데이’인데, 이는 돼지고기 소비를 촉진하려는 축협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9월 9일은 닭을 부르는 ‘구구’에서 따온 ‘구구 데이’인데, 이는 닭고기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농축산부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10월 24일은 ‘사과 데이’인데, 학교폭력대책국민협의회에서 학교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청소년 친구들끼리 둘(2)이서 제철 과일인 사(4)과를 나눠 먹으며 사과하고 화해하라는 취지가 있다고 한다. 한편, 기념일 중에는 외국에서 넘어온 것도 많다.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는 기독교 성인 발렌티누스의 축일이다. 사제 발렌티누스는 로마 황제의 허락 없이 남녀를 결혼시켜주었다는 이유로 순교당한 성인이다. 서양은 이날을 사랑을 고백하고 축하하는 날로 여긴다. 그래서 가족이나 연인들끼리 달콤한 초콜릿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운다. 이게 비즈니스적으로 변질되어 미국의 이날 초콜릿 매출은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 사람치고 이 기간 초콜릿을 사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발렌타인 데이를 즐겼다가 태형을 당했다는 뉴스도 있었고, 북한에서 발렌타인 데이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유독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발렌타인 데이가 성행한다고 하니, 특히 이 지역 초콜릿 산업의 전략과 이벤트 좋아 하는 젊은이들의 문화가 접목된 결과로 보인다.
최근 크리스마스 데이는 미국에서 특이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흔히 크리스마스가 되면 미국 백화점에는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요란한 네온사인이 뜨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는 산타, 썰매, 순록 등 크리스마스 상징물이 그려진 종이컵으로 서비스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부터 기독교 신자가 아닌 고객들을 배려한다는 의미에서 미국 백화점 네온사인은 ‘해피 할러데이’라는 종교적으로 중립적인 문구로 바뀌었고, 스타벅스도 기독교적 디자인을 더 이상 크리스마스 시즌에 선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이를 비난하는 일부 보수 기독교 신자들과 일반인들의 갈등을 ‘크리스마스 전쟁’이라고 미국 언론들이 표현하기도 했다. 크리스마스 전쟁은 ‘속 깊은’ 척하지만 결국은 마케팅 전략을 펴는 기업 탓으로 보인다. 크리스마스는 밤 12시 이후 통행금지가 엄격했던 과거 우리 세대에게는 통행금지가 해제되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이용해서 친구들과 밤의 해방을 즐기는 날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는 백화점 세일에 맞춰 '쇼핑하는 데이’에 불과하다. 과거나 현재나 크리스마스 데이는 원래의 기독교 의미와는 관계가 없으니, 우리나라에서는 미국과 같은 '크리스마스 전쟁'은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저 그날 우리는 크리스마스 통큰 세일에서 횡재만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10월 31일에는 할로윈 파티가 번지고 있다. 원래 할로윈 파티는 서양의 귀신 쫓는 축제다. 이게 미국에서는 할로윈 파티 코스튬(복장) 산업과 결부되어 엄청난 상업화의 길로 가고 있다. 마블 영웅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 그해 할로윈 매장에 이들 '신상' 코스튬이 즉시 걸리는 식이다. 올해 할로윈 데이 때 서울 이태원이나 부산의 서면 등지에서 일부 젊은이들이 좀비 복장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녀서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좀비 런(run)’이라는 좀비 쫓는 대규모 이벤트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할로윈 데이는 한국에서는 없는 귀신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노는 일종의 신종 게임 같은 이벤트에 불과하다. 문화적 의미는 없고 우르르 몰려 가는 군중심리만 있다.
3월 17일은 성 패트릭 데이라는 아일랜드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이는 아일랜드에 기독교를 전파한 성인 패트릭을 기리는 축제다.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녹색 옷을 입는 게 이 기념일의 특징이다. 녹색 옷은 성 패트릭이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잎이 세 개인 초록색 토끼풀을 보이며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한데서 유래한다. 아직 성 패트릭 데이는 우리나라에 상륙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미래에 우리 젊은이들이 이날의 문화적 의미와 상관없이 놀이 삼아 녹색 옷 입고 거리를 누비는 이벤트를 벌이는 날이 올 수도 있을 듯하다.
영국 BBC가 몇 년 전 ‘한국인의 스팸 사랑(South Korea’s love affair with Spam)’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다. 스팸은 우리가 즐겨 먹는 미국 회사의 햄 통조림이다. 우리가 스팸을 좋아하는 것이 왜 영국인의 뉴스거리가 됐을까? 스팸은 미국에서는 지방과 나트륨 함량이 높은 싸구려 햄 통조림 브랜드다. 그래서 골치 아픈 쓰레기 광고성 이메일이나 문자를 가리켜 ‘스팸 메일’이라고 한다(스팸 회사가 사람을 귀찮게 할 정도로 광고를 극성으로 해대는 것에서 스팸 메일이란 말이 생겼다는 설도 있다). 우리는 스팸을 얼큰하면서도 감칠 맛 나는 부대찌개 필수 레시피로 여기지만, 미국 사람들은 스팸을 싸구려 정크 푸드로 여긴다. 이런 저질 음식을 한국 사람들이 명절 선물로 주고받고 있으니 BBC 방송이 이상하다고 보도한 것이었다. 국제화 시대에 문화는 전후 맥락을 알고 섭취하는 게 좋다.
상업적인 데이 문화나 정체불명의 외래문화에 젖는 것은 경제적 풍요의 상징일지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넌센스고, 여가의 낭비이며, 군중심리다. 본질을 즐기는 게 아니라 본질의 껍데기인 환상을 즐기는 것이다. 빼빼로, 초콜릿, 좀비 모두 문화적 본질을 대체하는 환상일뿐 문화적 의미 그 자체는 아니다. 모든 이들이 산타 할아버지가 있다고 생각하고 즐기는 크리스마스처럼, 인위적인 기념일은 '사회적 환상'일 뿐이다. 그리고 그 환상 뒤에는 환상을 상업화한 '환상 산업'이 있다. 환상 속의 기념일, 이벤트 데이가 과도하게 넘치고 있다. 차라리 칠월칠석, 단오, 동지 같이 우리의 민속적 스토리가 있는 풍습을 쇠는 게 훨씬 정신 건강에 좋다. 내 어머니는 내가 열 살 때까지는 생일에 꼭 붉은 수수팥떡을 해주셨다. 붉은 색의 주술의 힘으로 병 걸리지 말고 잘 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수수팥떡을 신나게 맛 볼 수 있는 데이는 내 생일이 유일했다. 커서 타지 생활할 때 어머니는 자식 생일 날 꼭 전화를 주셨다. “오늘 네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었냐?”고 말이다. 그제서야 나는 ‘아,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하고 머쓱해 했다. 무슨 데이는 줄줄이 없었어도, 생일에 케익은커녕 미역국도 제대로 먹지 못했어도, 나는 “오늘 네 생일인데, 미역국은 먹었냐?” 하시던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듣던 그 시절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