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심이 부른 비극...가족 동원해 십년지기 생매장한 50대 여성, 사건 내막 들여다보니
'절도범' 누명 앙심에 범행 계획…취재진에 "잘못했습니다" 눈물 호소 / 정인혜 기자
2017-11-30 취재기자 정인혜
이모(55) 씨는 자신에게 ‘절도범’ 누명을 씌운 지인 A(49) 씨가 너무 미웠다. A 씨가 ‘동거남의 집에서 소지품 챙기는 것을 도와달라’기에 좋은 마음으로 나섰을 뿐인데, ‘소지품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을 한 적이 없다’니. A 씨의 이 같은 진술로 이 씨는 한순간에 절도범이 됐고, 벌금 100만 원형을 선고받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른 이 씨는 앙심이 극에 달했다. 그는 결국 A 씨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씨는 조용히, 들키지 않을 방법을 짜내야 했다. 수십 번의 고민 끝에 도달한 결론은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렵겠다’는 것뿐. 결국 주변 인물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살인을 함께해 줄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는 결국 남편과 아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내와 엄마를 끔찍이 아끼는 마음이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친 이들은 범행에 가담하기로 결정한다.
함께 해줄 동지(?)도 찾았겠다, 이 씨는 범행 도구를 모색한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무릎 통증으로 처방받은 약에 수면제가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의사에게서 얼핏 들은 것 같다. 이 씨는 병원에 다시 들러 의사에게 수면제가 어떤 것인지 물어보고 약에서 수면제만 솎아냈다. 평소 A 씨가 좋아하던 믹스 커피에 수면제를 섞으면 감쪽같을 테다. 아들에게는 렌터카를 준비하라고 일렀다.
햇빛이 강렬했던 7월 어느 날. 이 씨는 아들이 운전하는 차 안에서 A 씨에게 수면제를 탄 커피 두 잔을 건넸다. A 씨는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이리저리 흔들어 깨워도 A 씨가 미동도 하지 않자, 이들 모자는 남편의 집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이 씨 가족은 힘을 모아 자택 인근 텃밭에 A 씨를 파묻었다. 훗날 아들 박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씨를 땅에 묻을 때 숨을 쉬고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들의 범행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인 A 씨가 연락이 안 된다는 이유로 신고한 한 사회복지사에 의해 꼬리가 잡혔다. 경찰은 A 씨가 사라진 당일 이 씨의 아들 박 씨가 성남에서 렌터카를 빌려 철원을 다녀온 사실을 확인했다. A 씨의 휴대전화도 성남과 철원 사이에서 끊겼다.
경찰은 이들을 용의자로 특정하고, 지난 28일 이 씨 모자를 감금 혐의로 체포한 뒤 같은 날 오후 2시께 남편의 철원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범행 발각이 목전에 닥치자 남편은 덜컥 겁이 났다. 남편 박 씨는 압수수색 중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자택 창고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편이 죽음에 충격을 받은 걸까. 이 씨 모자는 경찰에 범행 사실 일체를 자백했다. 이어 경찰은 남편 박 씨 자택에서 900여m 떨어진 밭에서 A 씨의 시신을 수습했다.
남편은 죽었고, 새파랗게 젊은 아들의 인생도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본인은 가족을 동원해 십년지기를 살해한 인면수심 살인자가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취재진들 앞에 선 이 씨는 울먹이며 “잘못했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경찰은 이 씨 모자에게 살인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