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성적 올리려면, ‘방안퉁소’ 축구팬을 텅빈 경기장으로 불러내야 한다

/ 발행인 정태철

2017-12-01     발행인 정태철

19세기 초, 미국 남부의 한 목사는 아침에 신문이 배달되면 신문을 펼치면서 항상 “신께서 어제 세상을 어떻게 지배하셨는지 봅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목사는 신문에 난 뉴스가 모두 ‘하나님’이 세상을 지배한 결과라고 본 것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다니엘 부어스틴은 신 또는 악마가 일으킨 것으로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일어나는 뉴스를 ‘자연스런 뉴스(natural news)’라고 했다. 이와는 반대로 대중의 인기를 끌기 위해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이 의도적으로 만든 뉴스를 ‘인공적 뉴스(artificial news)’라 했다.

오늘날은 자연스런 뉴스보다는 인공적인 뉴스가 더 많다. 의도적으로 미디어에 보도되기 위해서 벌이는 언론 플레이, 혹은 미디어 이벤트라는 인공뉴스가 미디어에 넘치기 때문이다. 이 시대 인간의 숨은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스런 뉴스란 무엇이 남았을까? 미안한 얘기지만, 범죄사건, 교통사고가 가장 자연스럽다. 이영학이나 김주협이 미디어 스타가 되려고 사고를 고의로 저지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순수하고 자연스런 또 다른 뉴스가 바로 스포츠다.

지구상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스포츠 축제라는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 시각 12월 1일 자정에 모스크바 크렘린 궁전에서 열린 월드컵 조추첨에서 우리는 독일, 멕시코, 스웨덴과 함께 F조에 배정됐다. 거의 최악의 죽음의 조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험난한 여정이 예상된다. 어느 점성가는 한국이 8강 간다고 예언해서 사람들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골이 들어 갈 때마다 우레 같은 함성이 지축을 흔드는 맨유의 올드 트래포드 경기장과 달리, 썰렁한 한국 축구 경기장이 지속되는 한, 월드컵 4강 신화는 재현되기 어렵다.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한다.

프리미어 리그의 관중 동원 1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2011-2012 시즌에 게임 당 평균 7만 5495명을 기록했다. 2위 아스날은 5만 957명, 20위 꼴찌 팀이 1만 6787 명이었고, 프리미어 리그 평균이 경기 당 3만 4520명이었다. 한국 최고의 흥행몰이 팀 FC서울의 2016년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1만 9692명이고, 전북은 1만 6407명, 수원이 1만 1763명이었다. 그러나 인천은 6121명, 제주는 4800명, 그리고 상무는 2000여 명 수준이었다.

미식축구에 가려 뒷전으로 밀린 미국의 메이저 사커 리그(MLS)도 평균 관중이 2만에 육박하는데, 한국 축구 관중 수는 너무 초라하다. 나도 몇 번 부산 축구장을 찾은 적이 있다. 거대한 부산 아시아드 경기장 한쪽 구석에 원래 거대 관중석을 놔두고 세워진 간이 스탠드에서 몇 천 명 정도가 오붓하게 모여 응원하기 일쑤였다.

세상의 여가 활동 중 스포츠만큼 건전한 것이 없다. 음식점, 노래방, 술집, PC방, 당구장 그 어디보다 스포츠 관람이 제일 가성비도 좋고 스트레스 해소에도 좋다. 정운찬 전 총리가 야구광팬을 넘어서, 야구에 관한 책도 쓰고, 야구 중계 해설도 하더니, 이번에 KBO 총재가 됐다. 스포츠 마니아가 스포츠 종목 수장이 되다니 건전 여가활동이란 측면에서 멋진 일이다.

한국인들은 왜 축구 경기장을 덜 찾는 것일까? 야구 수준은 세계 4강인 것에 비해 축구 순위가 50위 권이라서?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듯하다. 2017년 FC서울의 게임당 관중 수 1만 6319명은 서울 연고지 야구팀 LG의 1만 5762명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축구도 그렇고, 야구도 그렇고, 인구 1000만 도시 서울의 경기장 관중이 고작 게임 당 2만 명을 못 넘는 것은 작은 편이다. 미국 야구 명문 구단 세인트루이스의 카디널스는 남한 만한 땅덩어리에 주 전체 인구가 600만 명에 불과한 미주리 주에 있는데, 5만 수용의 부시 스타디움은 관중 3-4만을 매일 넘긴다. 미주리대학 유학 시절, 미국 교수 한 분은 미주리대가 있는 콜롬비아 시가 세인트루이스에서 편도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데도 시즌 중에는 수시로 경기를 보러갔다. 어떤 날은 전날 밤 연장전이 새벽 2시에 끝나서(미국 연장전은 끝장 승부를 본다) 새벽 4시에 집에 왔다며 자랑하기도 했다. 그래서 드는 의문이 혹시 한국인들은 스포츠를 경기장에서보다 TV로 보는 것을 선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실제로 TV나 포털 야구 중계로 보는 사람들이 경기당 수십 만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TV와 현장 참여와의 차이를 분석한 고전적 연구가 있다. 1951년 한국전 당시 중공군이 침범하자, 맥아더 장군이 만주 폭격을 주장하다가 3차 대전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어 미국으로 즉시 귀환했다. 미국 국민들은 그를 영웅으로 환영했다. 그가 시카고 시를 방문할 당시 엄청난 군중이 운집해서 그를 환영했다. 이때, 미국의 사회학자 크루트 랭이 연구원 수십 명을 동원해서 맥아더 환영 행사를 현장에서 본 사람들과 집에서 TV를 본 사람들을 인터뷰했고 그 차이를 연구했다. 그 결과, TV는 카메라가 배치된 장소를 중심으로 사전에 계획된 장면만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지에 직접 간 군중들은 사람에 밀려 맥아더 장군 차가 지나가는 것도 못 본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군중들은 집에서 편하게 TV로 보는 게 나았을 거라고 후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맥아더 장군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도 있었고, TV는 그들을 고의로 보여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랭의 결론은 TV의 이미지와 현장에서 벌어진 실제 상황은 차이가 뚜렷했고, 양 측 사람들은 맥아더 축하 행사를 상당 부분 다르게 말하더라는 것이었다.

결국 TV냐 경기장이냐의 차이는 '인터넷 뱅킹'과 '은행 텔러'와의 차이와 유사하다. 편리함과 사람냄새와의 차이다. 거래 결과는 게임 결과처럼 같지만, 과정은 다르다. 이미지는 현장의 모조품이다. TV가 경기장 현장에서 획획 내뿜는 선수들의 숨소리를 대체하지 못한다. 관중 바로 앞에서 응원을 이끄는 치어리더는 그런 한국 사람들을 TV에서 현장으로 불러내는 데 나름대로 기여했을 듯하다. 미국 야구 구단들이 사람을 보내서 한국 야구장의 치어리더를 벤치마킹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들의 결론은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는 거였다. 청교도의 나라인 미국 사람들이 점잖지 못하다고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문득 K리그의 관중 부족에 대해서 궁금한 점이 있다. K리그는 왜 프로야구와 시즌이 겹치는 봄부터 가을 동안 경기할까 하는 점이다. 관중이 갈리게 말이다. 그러나 같은 온대 기후대인 영국, 독일, 스페인, 이태리, 프랑스 등 모든 유럽 축구 리그들은 다 8월에 시작해서 겨울 추운 기간을 거쳐 다음해 5월까지 운영한다. 그래서 시즌 이름이 ‘2017 시즌’이 아니고 ‘2017-2018 시즌’이다. 지금 한창 진행 중인 유럽 축구 경기장 온도는 우리와 별반 다를 게 없을 텐데, 그 많은 사람이 운집하는 게 신기하다. 왜 우리는 겨울 축구 시즌이 안 되는 것일까? 일본, 중국 축구리그도 우리와 마찬가지다. 아시아 사람들이 유독 추위에 약한가?

미국의 겨울 스포츠 미식축구(NFL)는 게임당 평균 관중이 7만 명에 육박한다. 메이저 리그 야구는 게임수가 많기는 하지만 경기당 관중 수는 3만여 명 수준이고 보면, 겨울 스포츠인 NFL에 모이는 미국인의 열기는 대단하다.

흔히 미국인들은 미국의 서부시대 프론티어 정신(개척정신)이 현대에 남아 있는 곳은 '과학 분야'와 '미식축구장'이라고들 말한다. 오늘의 미국을 이룬 과거의 개척정신이 우주개발, 자동차 산업, 항공산업,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페이스북을 만들었고, 이들의 과학 분야 개척정신은 지금도 셰일석유 채굴, 로봇, 인공지능 등에서 구현되고 있다. 그런 개척정신이 남은 또 하나의 흔적이 바로 미식축구 경기장이라는 것이다.

구 소련 사람들이 미국 사람만 하는 미식축구를 보고 땅을 점령하는 제국주의적 게임이라고 비아냥거리자, 미국 사람들이 프론티어 정신으로 땅을 개척하는 게임이라고 응수했다는 일화가 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미식축구가 열리는 날에는 온 가족이 경기 시작 몇 시간 전에 픽업트럭이나 SUV를 몰고 간다. 차 뒷 트렁크에 바비큐 재료와 야외용 그릴까지 싣고 간다. 그리곤 경기장 주차장에서 게임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차 트렁크를 열고 파티를 한다. 이것을 ‘테일게이트(tailgate, 자동차 뒷문) 파티’라고 한다.

미식축구는 게임이 하도 격렬해서 모든 팀이 1주일에 정확하게 단 한 게임밖에 하지 않는다. 그래서 4개월 시즌 동안 매주 게임을 해봤자 한 팀이 20게임 내외밖에 소화하지 않기 때문에, 구장은 10만 수용이 가능한 거대 규모여야 하고, 입장료가 비싸며, 매 게임마다 관중이 꽉 차야 수지가 맞는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미식축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경기가 중단되는 법이 없고, 관중이 줄어드는 법도 없다. 사람들은 털옷, 담요, 방수옷, 롱패딩 등 온갖 중무장을 하고 아무리 추워도 기죽지 않는다. 영하 20도 이하로 내려가서 경기가 중단된 적이 역사상 몇 번 있기는 했지만, 이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한 겨울에 미식축구장에 가면 개척정신이 따로 없음을 실감한다.

미국은 모든 스포츠 간 연중 스케줄이 시스템화되어 있다. 그만큼 국민 중 대다수가 스포츠를 레저로 즐길 수 있게 종목 간 리그 운영이 체계적이다. 10월부터 가을 야구가 포스트 시즌으로 치닫기 직전인 9월에 미식축구가 개막한다. 그리고 11월 야구의 월드시리즈가 끝나면, 바로 12월부터 미식축구가 흥분의 도가니로 진입한다. 그때 11월에 농구가 슬그머니 개막한다. 1월 말 내지는 2월 초 슈퍼볼로 미국이 들썩이고 나면, 이어서 농구가 팬을 끌어들일 단계에 이른다. 3월에는 대학농구가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란 결승전을 벌이고, 5월에는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이 열린다. 그 직전인 4월에 야구가 벌써 슬며시 개막해서 농구의 열기를 이어가고, 연중 스포츠 시스템의 순환이 매년 되풀이 된다. 

이때 거의 날마다 야구 게임이 있는 5월에서 9월까지가 일종의 스포츠 열기 소강기인데, 이 시기에 바로 월드컵이나 하계 올림픽이 열린다. 스포츠 중계의 큰손인 미국 TV가 이 시기에 그런 국제 대회가 열리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프랑스 오픈, 윔블던, US 오픈 등 테니스와 각종 LPGA 골프가 진행되는 것도 이 소강기다. 결과적으로 1월부터 12월까지 대부분 두 개 종목 이상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니, 미국에서는 스포츠만 보고 있으면 1년이 후딱 간다. 미국 메이저 TV의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는 1년 내내 거의 스포츠 중계로 편성되어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거기에 미국 본토에만 시간대가 4개가 있기 때문에, 중서부 기준으로 주말에는 낮 12시 동부 뉴욕 게임, 오후 3시 중부 세인트루이스 게임, 저녁 6시 로키 마운틴 콜로라도 게임, 밤 9시 LA 게임까지 하루 종일 4게임을 '본방사수'로 볼 수도 있다. 실제 나는 미식축구를 토요일 하루 종일  밤 12시까지 4게임을 연속 시청한 적이 있다. 내 가족에게는 잔인한 하루(?)였을 것이다.  

심지어 미식축구 시즌에 금요일은 고등학교가, 토요일은 대학이, 그리고 일요일은 프로가 정확하게 분리해서 게임을 갖는다. 그래서 TV 중계 보는 것도 편하다. 요일마다 원하는 미식축구 게임을 겹치지 않게 골라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1년 열두 달 미국 사람들은 스포츠를 따라 다니며 울고 웃는다. 1년 열두 달 회식으로 술집을 전전하는 레저 문화보다는 그게 훨씬 더 건전하다.

요즘 한국 축구가 영 시원찮다. 러시아 월드컵 조추첨 결과가 최악에 가깝다고 한다. 독일은 말할 것도 없고, 멕시코, 스웨덴(예선전에서 이탈리아를 꺾어 탈락시켰다)도 만만치 않다. 아무튼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결과는 브라질 월드컵처럼 참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한국 축구의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관중이 몰려야 선수가 뛰고, 스타도 탄생한다. K리그를 8월에 시작해서 겨울을 거쳐 5월에 끝나는 시즌으로 한 번 바꿔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 축구팬들의 개척정신과 도전정신을 실험해보자. 우리가 ‘방안퉁소’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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