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대학생들, '전공과외 수업' 열풍
A학점 따려..."스스로 공부하지 않고" 곱잖은 시선도
부산의 한 사립대 영문과에 다녔던 이모(24) 씨는 작년에 부산의 한 국립대 경제학과로 편입했다. 이 씨는 자신이 원했던 학교를 다니게 돼서 정말 기뻤지만 합격에 대한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영문학과 출신인 그가 계량경제학 등 수학을 많이 다루는 경제학과 3학년 수업을 이해하고 따라가기란 불가능했다. 이 씨는 “학과에 아는 사람도 없어서 혼자 수업을 듣는데 누구 물어볼 사람도 없었어요. 그냥 아무나 물어보면 안 될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수업 내용을 가르쳐 달라고 말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이 씨는 남에게 눈치 보이는 것보다 속 편하게 돈을 주고라도 자신이 궁금한 점을 물어보고 가르쳐줄 사람이 있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일종의 과외 선생을 찾게 된 것이다. 이 씨는 즉시 편입생들이 모여 있는 인터넷 카페 사이트로 들어갔다. 이 사이트는 이 씨가 편입 공부를 하면서 편입학 정보를 얻으러 자주 접속했던 곳이었다. 이 씨는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과목과 과외해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작성해서 올렸다. 연락이 빨리 왔고, 그는 이렇게 해서 돈을 주고 경제과 과목 과외를 받게 됐다.
요즘 대학들은 전공과목도 상대평가로 학점을 준다. 일정한 비율로 정해진 A학점을 받기 위한 경쟁이 학생들 사이에 치열한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학과목 점수가 나쁘면 취업에 발목이 잡힐 것이란 조바심 때문에 최근 대학생들 사이에는 ‘전공과외’가 생겨나고 있다. 일반적으로 과외란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학과목을 배우는 사교육을 말하지만, 이미 대학을 진학한 대학생들도 대학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한 방법으로 과외를 받는 풍조가 성행하고 있다.
전공과외는 경영학, 통계학, 물리학과 같이 수학을 많이 활용해야 하는 이과나 상경계열 쪽에서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과외 대상 과목은 수학의 미적분에서부터 물리, 수리통계, 회계원리, 유기화학 등 대부분 수학이나 물리 등 고등학교에서 깊게 다루지 않는 분야들이 속해 있다. 그리고 상대평가로 전공과목을 평가하는 대학들과 점수 경쟁이 치열한 소위 명문대에서 전공과외가 널리 퍼지고 있다. 실제 포털 사이트 전공과외를 찾는 광고글에서 서울대, 연대, 고대, 지방의 일류 국립대 등의 특정 과목 과외를 찾는 사례가 많이 보인다.
과외를 받으려는 학생들은 문과생이 이공계 학과로 교차 지원한 대학 1년생이거나, 진도를 따라잡기에 어려움을 겪는 편입생, 복학생, 전과생 등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이공계열이나 상경계열 쪽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 전공 기초에 취약하다는 점이다. 편입생의 경우, 1학년부터 배우는 기초 과목을 건너뛰어 3학년 과목을 들어야 하므로 상황이 다급하다. 편입생이나 복학생들은 나이도 많고 취업이 목전이라 시간적 여유도 없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전공과외가 등장한 것이다.
서울의 한 명문 사립대에 재학 중인 1학년 김모(20) 씨도 전공과외를 받았다. 2013년에 통계학과에 입학한 김 씨는 1학년 수업부터 과목 이해에 굉장히 애를 먹었다. 김 씨는 “고등학교 때 미적분을 배웠지만, 대학에서 다시 배우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나름 인강(인터넷 강의)을 들으면서 혼자 공부했지만 그 걸로는 역부족인 것 같아 결국엔 과외를 받았어요. 돈은 많이 들어갔지만 그래도 성적은 잘 나와서 다행이었죠”라고 말했다. 김 씨는 주 3일 2시간씩 한 학기 내내 과외를 받았다. 시간당 4만원 씩 그는 한 달에 96만원을 과외비로 지출했다. 한 학기 과외비가 거의 한 학기 등록금에 육박했다.
전공과외는 1대1 개인과외로 진행된다. 김 씨는 과외 선생이 자신의 약점을 빠르게 해결해 주니까 굉장히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 그는 “저는 1학년이라 기초 학문 위주로 공부를 했어요. 그래프를 분석하는 것부터 시작해 고등학교 수준의 내용까지 주어진 시간 내에 몰랐던 걸 다 물어 보고 배웠어요”라고 말했다.
전공과외를 받으려면 과외 받을 사람을 구한다는 사람이 올린 연락처에 연락하거나 자신이 직접 대학과 과목명을 적고 과외 선생을 구한다는 글을 학교 게시판이나 인터넷 카페에 올리면 된다. 조건이 맡는 사람이 연락하면, 그 다음부터는 전화나 문자를 통해 과외 시간, 과외 일수, 과외비용을 협의한다.
전공과외 선생은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인 대학 졸업생 혹은 대학원생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주로 같은 출신 학교 학생을 가르친다. 서울에서 전공과외를 가르치는 신모(29) 씨는 “저희 학교 학생들만 가르칩니다. 과목 담당 교수님들마다 특징이 다 있어요. 문제를 출제하는 경향, 선호하는 문제 등 말이죠. 매년 문제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형식이라는 게 거의 정해져 있어서 족집게 과외를 해줄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전공과외가 생겨난 원인에 대해 의견이 다양하다. 편입학원 강사 문모(41) 씨는 4년 전 정부가 대학에 편입 정원을 대폭 늘려주어 편입생이 증가할 때부터 대학에 전공과외 열풍이 불었다고 본다. 그는 “편입생들이 편입학 시험을 치기 위해 해당 학교 학생들에게 과외를 받는 일이 생겼는데, 그게 입학 후에도 연장되어 그때부터 전공과외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부산의 한 국립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한모(35) 씨는 중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대학의 전공 기초 학문과 잘 연계가 안되기 때문에 과외가 생겼다고 본다. 또한 한 씨는 대학생의 전공과외가 중고등학교의 사교육 의존 현상과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씨는 “어렸을 때부터 학원과 과외에 익숙한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서도 혼자 공부하는 법을 모르기 때문에 과외를 찾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경기도 내에서 사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의 비율은 76.5%, 중학생 76.4%, 고등학생 72.5%이며, 이는 학생 4명 중 3명 꼴로 과외를 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공과외를 받는 대학생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 부산의 한 국립대 학생인 김모(26) 씨는 “대학생이 전공과외를 받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스스로 극복할 생각을 하지 않고 과외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면, 같은 성인으로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전공과외로 부수입을 올리는 대학생 과외 선생에 대한 인식도 좋을 리 없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모(53) 씨는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우리 때는 후배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밥 한 끼 얻어먹으면 그만이었죠. 돈을 받고 후배를 가르칠 생각을 하다니, 그만큼 세상이 각박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대학생 자녀를 둔 가정주부 이모(55) 씨는 부모 입장에서 대학의 전공과외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이 씨는 “대학생들이 오죽하면 취직이 안 돼서 전공과외까지 받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만약 취업을 위해서라면 제 아들도 과외를 시키고 싶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