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노인 돌봄 서비스, 지역마다 ‘들쭉날쭉’
“아이고! 추운데 오늘도 수고가 많소.” 부산시 금정구 서동에 홀로 거주하는 이른바 독거노인 박모(72) 씨에게 자원봉사자들이 찾아오자 그는 이렇게 반겼다. 박 씨는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자원봉사자들이 반갑기만 하다.
박 씨는 홀로 산 지 올해로 만 5년이 되었다. 박 씨에게는 2남 1녀의 자녀가 있지만, 모두 서울에 살기 때문에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것이 전부다. 올 설날도 박 씨는 집에서 혼자 보냈다. “(자녀들이) 다 바쁘다더라. 설날에 뭐가 그리 바쁜지, 원...”하며 박 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박 씨에게 유일한 행복은 집 근처에 있는 경로당에 가는 것이다. 박 씨는 경로당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독거노인(홀로 사는 노인)’이라고 설명했다. 박 씨와 단짝 친구라고 소개한 윤모(74) 씨 역시 독거노인이다. 윤 씨는 지난 달 혼자 사는 집에서 자칫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화장실에서 발을 잘못 디뎌 바닥에 그대로 미끄러진 것이다. 윤 씨는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언제 또 사고가 날지 모르니 항상 불안하다. 요즘 TV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는 노인들 뉴스를 볼 때마다 겁이 난다”고 말했다.
부산시 노령화 현상은 2000년 이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부산시청 홈페이지의 인구 관련 통계정보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2012년 부산 인구의 12.6%를 차지해, 부산이 고령사회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는 2022년에는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 부산이 ‘초고령사회’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2030년에는 고령인구가 86만 1000명으로 예측돼 전체 부산 인구의 약 30%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인구 노령화는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인데, 이를 지표화한 것이 ‘노령화지수’다. 노령화 지수는 유소년층 인구(0~14세) 100명에 대한 노년층 인구(65세 이상)의 비율을 뜻하며, 노령화지수가 14%를 넘으면 노령사회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반면에 노후준비를 제대로 한 가구는 극히 일부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구주가 아직 은퇴하지 않은 전국의 가구 중 일부를 표본 추출해 노후 준비 상황을 조사한 결과, 준비가 ‘잘 되지 않은 가구’가 조사 대상의 34.3%, ‘전혀 준비 안 된 가구’가 조사 대상의 20.8%인 반면, 노후 준비가 ‘잘 된 가구’는 조사 대상의 9%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결과는 노후 준비가 일생의 재무 이벤트 중 가장 나중에 발생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당장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다가 대체로 노후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노년을 맞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현재 부산시청이나 각 구청별 사회복지관에서는 독거노인을 위해 다양한 복지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건강한 노인이 몸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돌보는 ‘노노(老老)케어(care)’ 사업과 독거노인을 위해 주기적으로 음식을 제공하는 ‘도시락배달’ 사업, 그리고 ‘어르신주간보호’ 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부산의 모든 독거노인들에게 골고루 그 혜택이 미치는 것이 아니다. 노노케어와 도시락배달 사업은 해운대구, 부산진구, 연제구 등에서만 운영 중이고, 어르신주간보호 사업은 비교적 소득이 높은 지역에서만 일부 운영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경로당을 통해서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것이 전부이고, 그나마 경로당이 없는 지역에서는 무료급식마저 혜택의 손길이 닿지 않고 있다.
부산진구 전포종합사회복지관 김도균(26) 씨는 지역별로 노인복지 사업이 둘쭉날쭉 차이가 난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모든 독거노인들 사정이 딱한데, 구청별 복지 운영비 차이로 소외받는 지역이 있는 것이 문제점”이라며 “독거노인들 모두가 소외받지 않도록 부산시에서 신경을 써야한다”고 말했다.
9년 째 서동 부녀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안모(53) 씨는 동사무소가 주관하는 독거노인 대상 무료급식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마다 봉사하는 안 씨는 독거노인들을 보면 참으로 딱하다. 안 씨는 “이 무료급식소도 마을 주민들이 건의해 겨우 만들어졌다”며 “자식들이 등 돌리고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밥 한 끼를 언제까지 제공하게 될지 우려된다”고 말끝을 흐렸다.
박 씨는 “TV에 가끔 노인들 상대로 복지사업을 많이 해준다던데, 나에겐 ‘그림의 떡’이다”라며 “우리 경로당은 그런 혜택을 못 받는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윤 씨도 “똑같이 (복지사업을) 받아야지, 누구는 조금 받고 누구는 많이 받는 게 말이 되냐”며 “아직 경로당 하나 없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와 윤 씨는 다음 날에도 경로당에 간다. 차가운 빈 방에 혼자 있느니 그나마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서로의 체온으로 외로움을 잊는다. 박 씨는 “자식들 기다리는 것도 이제 지쳤다”며 “이젠 우리랑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사는 게 낙이다”라고 말했다. 윤 씨 역시 “노인정(경로당)에 가는 게 유일한 낙이다”라며 “설에 손주들 못 봐서 참 서글프다”고 덧붙였다.
박 씨는 액자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을 한참 바라보더니 이내 눈물을 흘렸다. 박 씨는 “가족들에게 자신이 잊혀지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