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돌아온 송년회, 부담스런 직장인들..."음주가무, 누구를 위한 송년회인가"
강압적 송년회 문화 이제 그만...최근 불거진 논란에도 사내 장기자랑 강요하기도 / 신예진 기자
2017-12-16 취재기자 신예진
연말 송년회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직장인들은 송년회 부담 때문에 한숨을 내쉰다. 올해 입사한 병아리 신입사원들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송년회가 더욱 두렵다. 거절할 수 없는 음주에 장기자랑까지, 사내 송년회에 사원들은 골머리를 앓는다.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직장인 윤모(27, 부산 남구) 씨는 연말이 괴롭기만 하다. 사내 송년회, 부서 회식 등 빠질 수 없는 술자리들이 윤 씨를 기다리기 때문. 윤 씨는 “올해는 또 어떤 독창적인 건배사를 준비해야 할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그 누구도 원하지 않는 송년횐데 매년 꾸역꾸역 진행된다”고 토로했다.
이모(27, 경남 창원시) 씨는 최근 ‘사내 송년회 장소 예약’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이 씨는 최대한 빨리 ‘적당히 조용하고, 아늑하고, 그다지 비싸지 않은 소고기 집’을 찾아 예약해야 한다. 이 씨는 “만약 송년회 당일 음식점이 윗분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두 내 탓이 될 것”이라며 “올해 가기 전에 몸져 누울 것 같다”고 씁쓸함을 내비쳤다.
송년회 장기자랑 준비를 압박하는 회사도 있다. 최근 한림대 성심병원이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춤 장기자랑을 강요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일부 회사들은 해당 문제를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다.
직장인 한모(25, 경남 창원시) 씨는 며칠 전부터 직장 동기들과 퇴근 후 1시간 춤 연습에 돌입했다. 송년회를 위한 신입사원 장기자랑 무대를 꾸미기 위함이다. 한 씨는 “적성에도 맞지 않는 장기자랑 댄스를 올해만 세 번을 췄다”며 “장기자랑이 연말까지 나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한 씨는 이어 “춤을 출 때마다 적응은커녕 수치스럽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이와 더불어, 최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송년회 장소’, ‘송년회 건배사’, ‘송년회 장기자랑’ 등이 인기 검색어로 자리 잡았다. SNS에서는 ‘술자리 분위기 살리는 꿀팁’, ‘센스있는 건배사 5가지’ 등의 글들이 등장했다. 직장인들은 “필수”라며 너도나도 해당 정보를 공유했다. 직장인 구모(25, 경남 창원시) 씨는 “언제쯤 회식 문화에 익숙해질 수 있을까”라며 “무엇을, 누구를 위한 송년회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사내 송년회 스트레스는 단지 이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0일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1285명을 대상으로 ‘올해 송년회 계획’에 대해 조사했다. 그 결과 68.4%가 '올해 송년회를 계획하고 있다'고 답했다. '송년회를 하지 않을 것'이란 대답은 고작 7.9%에 그쳤다. 즉, 직장인 10명 중 약 7명이 송년회 준비에 힘을 쏟고 있는 셈이다.
사원들이 송년회 스트레스를 호소하지만, 상사들은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일부 상사들은 송년회가 회사 직원들의 화합을 위한 자리라고 믿는다. 한 건설업 부장은 “일 년간 함께 고생한 직원들과 한 해를 마무리하는 행사”라며 “몇 명의 직원들이 송년회를 싫어한다고 송년회를 없앨 순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일부는 사원들의 불만에 “새삼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제조업 과장은 “나도 신입 시절을 겪었으니 물론 이해는 하지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며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지 ‘하기 싫다’고 생각하면 풀릴 것도 막힌다”고 언짢아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직장인들이 송년회 스트레스로 몸살을 앓는 현상이 오랜 조직 문화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한 사회 연구 전문가는 “회사에 복종하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요즘 세대는 개인주의적 성향을 보인다”며 “강압적인 송년회는 직원들 간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는 이어 “기업 차원의 문화 개선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는 직장 문화가 필요하다”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조직 문화도 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