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문화 예술의 도시: 예술 공간으로 변신한 지하보행로 '500m미술관' / 목지수 안지현
[2부] 삿포로의 도시 브랜드 자산
최근 들어 국내 각 지자체마다 복합 문화 공간이나 전문 공연장, 미술관 등을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점점 치열해지고 있다. 당장 현안 과제도 많은데 공연장이나 미술관, 박물관 하나가 더 생기는 게 도시에 과연 무슨 도움이 되냐는 의견도 많다. 게다가 비슷비슷한 문화시설이 여전히 많은데 또 짓느냐는 필사적인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그 예산으로 차라리 도시 인프라 개선이나 당장 시급한 복지 예산을 늘리면 시민들에게 돌아가는 편익이나 혜택이 더 클 것이라는 주장에 귀가 솔깃해 지기도 한다.
도시에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생기는 것은 시민의 문화 향유를 확산시키며 도시 전체를 혁신시킬 수 있는 마중물이 되어 큰 변화를 불러 올 수도 있다. 이미 세계적인 도시 브랜딩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미술관' 유치 사례는 물론, 영국의 게이츠헤드의 사례도 주목해 볼만하다. 게이츠헤드는 이웃 도시 뉴캐슬의 하수구라는 놀림을 받으며 쇠퇴하던 공업도시였지만 이제는 <북쪽의 천사상>을 비롯한 유명 재생 예술품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지금은 '세이지 게이츠헤드(The sage Gateshead)'라는 음악 전용관도 들어서면서 온전히 예술의 힘으로 도시를 바꿔놓고 있다. 예술의 힘은 이제 도시의 운명을 갈라놓기에 충분하다.
삿포로의 선택 역시 이와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삿포로적인 솔루션으로 진행되었다. 삿포로는 지하공간이 활성화되어 있고, 많은 시민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지하도를 걸으며 쇼핑도 하고 여가를 즐긴다. 그만큼 지하도 시설이 보행친화적이고 쾌적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하도 곳곳에서 만나는 다양한 전시와 공연이 있기에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삿포로 시는 2006년 지하철 도자이선 오도리역과 버스센터역 사이의 긴 보행 공간 500m를 전시공간으로 바꾸는 ‘500미술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6개월 간의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삿포로 시는 혹한의 겨울에도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예술을 접할 수 있도록 긴 지하도의 한 쪽 벽면이라는 틈새를 찾아낸 것이다.
이는 당시 '삿포로 아트 스테이지'라는 예술 축제의 한 부분이었는데 시민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삿포로의 중심가로인 오도리에서 스스키노를 잇는 지하도의 경우, 상업 공간과 자연스레 연결되면서 활력이 있는 반면, 이곳은 출퇴근하거나 통학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구간임에도 불구하고 긴 터널처럼 그저 지루하게만 여겨져 왔기 때문이다.
500m 정도 이어지는 긴 공간의 벽면을 전시 공간으로 꾸미자, 이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예술 작품이나 전시품으로 향하게 되었다. 국내외의 다채로운 문화 예술 콘텐츠를 전시하고, 전시와 관련된 행사를 개최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전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주목할 만한 것은 500m미술관을 통해 삿포로에서 활약하는 예술인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기회를 늘리고 삿포로 고유의 문화 콘텐츠를 전시하면서 미술관이 삿포로 시의 도시 브랜딩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500m미술관은 삿포로 고유의 자산인 긴 지하도를 잘 활용한 가장 삿포로스런 문화 예술 공간이다. 예산 집행과 운영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고 가꾸어 나가는 지혜가 여기에 숨어있다. 문화 예술 공간 ‘한 방’으로 도시를 바꿀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앞서 도심 속 숨은 공간을 문화로 채워보는 다양한 시도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