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랑이 얼어있는 심장을 녹이리라...영화 <겨울왕국>을 보고

2014-03-14     부산광역시 최정은

<안나와 눈의 여왕>, <빙설기연>, <차가운 심장>, 우리나라에선 <겨울왕국>. 이들은 영화 원제 <프로즌(Frozen)>의 국가별 다른 이름들이다. 각 나라마다 이 영화의 이름이 다른 것처럼, 디즈니가 처음 영화의 제목을 지을 때도 다양한 후보군이 등장했을 터. 디즈니가 왜 원작의 제목 <눈의 여왕>마저 포기하고 의미조차 두루뭉술한 ‘프로즌’이란 단어를 제목으로 차용했는지 의문이다. 허나, 이 영화를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 또한 두루뭉술한 단어 하나다. 영화의 주인공 안나와 엘사, 두 자매는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그 둘의 관계가 말이다.

엘사는 모든 것을 얼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동생 안나를 기쁘게 해주던 그 힘이 어느 날 안나를 다치게 한다. 안나를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바위 요정 트롤은 안나의 기억에서 엘사의 마법을 지운다. 트롤은 엘사에게 그 힘은 위험하니 제어하는 방법을 배우라 권한다. 아버지인 왕은 엘사가 힘을 제어할 때까지 성문을 닫는다. 안나도 엘사에게서 떼어놓는다. “느끼지 말고, 드러내지 마.” 자신의 힘이 두려워질 때면, 엘사는 언제나 이렇게 되뇌었다. 그런 노력에도 엘사의 힘은 커져만 가고, 엘사의 두려움도 비례하게 불어난다. 바다가 부모를 삼켜버린 후, 두려움은 더욱 엘사를 조여온다.

안나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어제까지만 해도 친하던 언니가 하룻밤 사이에 변했다. 이유도 모른다. 성문도 닫혀서, 드나드는 사람들도 없다. 벽에 걸린 그림과의 대화가 안나의 일상이 되었다. 안나는 엘사의 방문을 종종 두드려보지만, 엘사는 방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다. 부모의 장례에서조차 모습을 보이지 않는 언니의 방문 앞에 기대, 안나는 몇 년 동안 해오던 똑같은 질문을 한다. “같이 눈사람 만들래?” 그렇게 그 둘은 얼었다. 둘은 다르다. 외모도, 성격도, 개인의 사정도. 안나는 갈색머리고, 엘사는 백금발이다. 안나는 느끼는 대로 내뱉고, 엘사는 참다가 폭발한다. 같은 구석을 찾는 게 더 힘들다. 세상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은 없다. 각자의 개성이 어릴 때부터 현재까지 만들어지고 굳어진다. 마치 얼어붙는 것처럼. 그 얼음 같은 각자를 물처럼 녹여내 섞이게 하는 것은 따뜻한, 서로에 대한 애정이다. 안나는 눈사람 올라프와 트롤들을 통해, 엘사는 몸을 던져 자신을 구한 동생을 통해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깨닫는다. 서로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가능하지 않다. 각자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자라왔기 때문이다. 둘은 비슷하다 해도 같지 않다. “난 언니를 이해해.” 얼음궁전에서 안나가 엘사에게 건넨 이 말은 그래서 거짓이다. 그러나 누구도 안나 말의 진위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 역시 개연적으로 자신의 소중한 누군가를 이해하려 했던 경험이 있는 까닭이다. 그 누군가는 무뚝뚝한 아버지도, 잔소리꾼인 어머니도 될 수 있다. 매번 다투는 자매, 멀게 만 느껴지는 형제, 알다가도 모르는 친구도 누군가일 수 있다. 배우지 않았지만, 은연 중에 사람들은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 그런 행동을 이 영화는 ‘사랑’이라 말한다. “사랑은 상대를 먼저 생각해 주는 거야.” 눈사람 올라프의 입을 빌어, 영화는 사랑이 사람 관계를 지속시키는 매개체임을 강조한다. 진정한 사랑이 얼어있는 심장을 녹이리라. 주문 같은 한 마디를 통해 영화는 이미 말하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특별한 가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