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 개뿔도 없을 때, 쥐뿔도 모를 때 시작하라

2014-03-21     칼럼니스트 손정호

 

나는 대학 시절 나의 부끄러운 일면을 고백하려 한다. 하지만 그 때의 부끄러운 경험이 나에겐 세상과 삶을 다르게 바라보게 하는 엄청난 계기가 되었기에 지금은 더 이상 부끄럽지 않다. 당시 그 일은 내게 절실했었고, 결과적으로는 그 일이 지금의 내가 있게 했다.

밀레니엄을 앞둔 겨울 쯤인가. 나는 대학 내 언론사의 영상팀장, 신문방송학과 영상조교, 방송동아리 학회장 등 1인 3역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학기말 성적이 나왔는데, 학과 1등이었다. 이미 학내 언론사 기자로 근로장학금까지 받고 있었는데, 좋은 학점 덕에 성적장학금까지 받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가정이 어려워 휴학하려던 후배에게 근로장학금을 양보하고 성적장학금만 받기로 했다. IMF 금융위기와 취업대란 등으로 많은 학생들이 휴학하던 어려운 시기에, 나는 이런 이유로 교수님들을 포함해서 주위의 칭찬을 많이 받았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 때 우연히 국가에서 하는 대학생 해외봉사단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모집 인원은 약 200명이었으며, 파견 국가와 분야가 매우 다양했다. 나는 사진과 비디오 촬영을 이용한 영상 기록 분야로 지원했고, 파견 국가로는 한국보다 더 추운 광활한 러시아를 선택했다. 그리고 각 대학별 추천 학생 3명 중 1순위로 모교 총장님의 추천장을 받아 해외봉사단에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전국 대학이 160개 정도였으니, 각 대학에서 최소 1명만씩 뽑힌다고 계산해도 내가 선발될 확률은 거의 100%였다.

나는 러시아 대륙을 밟을 꿈을 꾸고 어떤 영상을 담을까에 대해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몇 주가 지나서 해외봉사단 선발 결과가 나왔다. 탈락이었다! 교수님과 주위 친구들도 매우 놀랐다. 내 모교에서 총장님 추천서를 받은 3명 중 3순위로 추천장을 받은 여학생이 선발되었다는 것이다. 3순위가 어떻게? 납득할 수가 없었다. 나는 왜 내가 선택되지 않았는지를 해외봉사단에 물어봤다. 그 대답은 탈락의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을 내게 안겼다.

“학생은 과거에 봉사 경험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머리에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 한마디에 나는 아무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봉사 경험과 이타 정신은 전혀 없이, 그저 미지의 땅에서 이국적인 체험만을 꿈꾸던 내가 너무나 부끄러웠다. 나는 봉사하려는 자세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 후 나는 다음 해의 해외봉사단 선발을 고대하는 희망으로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자원봉사센터를 찾아갔다. 그곳 시청에서 운영하는 각종 자원봉사 활동을 기록하는 일을 했다. 그런데 그 일은 너무 간단하고 단순했다. 나는 좀더 역동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또 다른 자원봉사 활동을 찾았다. 그리고 독거노인들을 위한 영정사진 촬영 자원봉사자를 찾는다는 복지관을 찾아 노인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렸다.

그후 각 구청 사회복지사끼리 서로 나를 소개해 주어서 다른 복지관의 영정사진 촬영 봉사 의뢰가 계속 들어 왔다. 나는 몇 달에 한번 씩 이곳 저곳 복지관을 돌며 독거노인들의 영정사진 촬영 봉사를 계속했다. 또 학교에서 가까운 성당에서 운영하는 장애아 고아원을 찾아가 고아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봉사활동에도 참여했다. 나중에는 영상 동아리 후배들을 모두 끌고 가서 함께 사진 및 비디오 촬영 봉사 활동에 참여하면서 대학에서 배우지 못한 진실하고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나는 러시아로 갈 꿈은 자연스럽게 잊었고 참다운 봉사 자체에 대한 기쁨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이국적 체험이 아닌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이웃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가 시청과 구청의 자원봉사센터를 찾아갈 때의 심정은 봉사를 제대로 알지 못한 죄책감을 만회하려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졸업을 앞두고 내 주머니는 텅텅 비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낮아진 마음으로 봉사의 손길을 내밀고 나니, 자연스럽게 봉사 거리가 수면 위로 보이기 시작했다. 봉사활동 내내 내 돈은 거의 들지 않았고, 도리어 여러 단체와 기업들이 나의 봉사활동을 후원했고 그들과 서로 네트워킹할 수 있었다. 봉사란 단지 내 시간과 마음만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쥐뿔도, 개뿔도 없는 상태였지만, 봉사활동을 통해서 더 큰 칭찬을 듣고 자신감을 회복했다. 그리고 인생의 교훈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그 일 이후로도 러시아에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2000년 다른 봉사활동 기회를 통해 중국 동북3성과 백두산을 카메라에 담게 됐고, 그 다음해 홍콩까지 가서 촬영하는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그게 인연이 돼서 결국 대학원을 졸업한 후 홍콩으로 다시 가게 됐고, 그곳에서 가정을 이룬 것은 물론 삶의 터전을 가꾸게 되어10년째 언론사 일을 하고 있다.

봉사는 개뿔도 없을 때, 쥐뿔도 모를 때 시작하라. 아무 것도 없을 때가 봉사를 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다. 젊은이들이 성장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내가 어려워도 남을 도울 때다.

*손정호는 경성대 신문방송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는 홍콩에서 영상 프로덕션인 '홍콩썬미디어'를 운영하고 있으며, 동시에 시빅뉴스의 자매지이며, 홍콩 교민을 상대로 발행되는 주간지 '홍콩수요저널'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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