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의 김병기 교수는 역사에 대한 무지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 윤민영
김병기 서예가 겸 전북대 교수 “서예학적 측면에서 광개토대왕릉비 조작이 의심스럽다”
2019-01-05 충남 천안시 윤민영
지난 3일 JTBC에서 방송된 <차이나는 클라스-질문있습니다>에서 김병기 서예가(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가 출연해 ‘잃어버린 우리 문화, 한자’를 주제로 열변을 토했다. 이 방송을 우연히 보고 있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집중하게 됐다. 처음에는 진부하다는 느낌을 갖고 시청했지만 나중에는 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내가 스스로를 반성하게 된 부분은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한 강의를 펼친 곳이었다. 김병기 서예가는 우리나라 역사를 기록한 언어인 한자에 대해 국민들이 관심 갖지 않다보니 우리 문화 유산을 빼앗기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일본이 광개토대왕릉비를 변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과정이 너무나도 체계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김병기 서예가는 서예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광개토대왕릉비는 이미 일본이 비석을 변조했다고 주장했다. 원래 수십 년 전에도 광개토대왕릉비 조작 논란이 있었다. 이 때 사학자들이 논쟁을 펼쳤던 부분은 ‘석회 도부 작전’이다. 바로 일본이 석회를 발라서 비석을 조작하는 작전을 폈느냐의 여부였다. 국립대 사학과 모 교수는 “일본이 조작했는지 안했는지에 대해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이 결론”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김병기 서예가는 ‘석회 도부 작전’이 아니라 광개토대왕릉비의 ‘필체’를 통해 일본의 조작설 주장을 이어나갔다.
김병기 서예가는 자신의 대만 유학 시절을 통해 광개토대왕릉비 조작 의혹을 갖게 된 계기로 말문을 열었다. 이후 서예학적 얘기를 했다. 예를 들면, 광개토대왕릉비의 필체는 모든 획을 직선으로 처리하며 가로획은 수평, 세로획은 수직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글자가 네모반듯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작 의혹을 제기한 글자는 수평과 수직은 물론이거니, 네모반듯하지도 않고, 원래 있던 글씨에 다른 것을 덮어 쓴 것처럼 한 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져 있었다. 또, 내가 봐도 일본에서 19세기 당시 유행했다던 ‘명조체’와 조작 의혹을 받는 그 세 글자 ‘渡海破(도해파)’와는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김병기 서예가는 마지막으로 본인의 주장은 아직 많은 사람들이 공인하지 않은 ‘개인의 주장’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병기 서예가는 “나는 최소한 이 주장을 서예학자로서 찾아낸 근거를 가지고 주장하고 있다. 한 번쯤은 역사학적인 관점이 아니라 서예학적 관점으로 보는 사람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 줄 필요가 있다. 내 이론을 엎을 수 있는 의견이 나온다면 백 번 수용할 수 있으니까 우리 역사를 찾는 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방송을 보고, 나는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나는 1972년 전부터 광개토대왕릉비의 변조설을 주장했던 이진희 교수의 이름도, 광개토대왕릉비가 일본에 의해 조작된 의혹이 있다는 사실도 이 방송을 보고 처음 알게 됐다. 지성인이라 불리는 대학생이면서 우리나라의 역사적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계속해서 일본은 역사 왜곡 뿐만 아니라 독도를 향한 영토 분쟁을 일으키고 있고,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라고 하면서, 중국 내에 있는 고구려 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한 것이 생각났다. 이런 때 우리나라 역사를 국민들이 모른다면 그저 손 한 번 못써 보고 빼앗기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방송이 끝난 후, 나는 광개토대왕릉비에 대해 더 알아봤다. 그랬더니 나는 놀라운 사실을 하나 접하게 됐다. 바로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독립기념관에 광개토대왕릉비 복원비가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해 10월 독립기념관에 출사갔을 때 찍은 사진들을 살펴봤다. 역시나 내가 찍은 사진 중 광개토대왕릉비가 찍힌 사진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진은 광개토대왕릉비를 찍으려고 한 사진이 아니었고, 다른 장면을 찍을 때 한 쪽 구석에 자리잡은 광개토대왕릉비가 그저 우연히 찍힌 것 뿐이었다.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다. 나름대로 내 자신이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송을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냥 내가 알고 있던 역사 지식은 그저 상식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한 글귀가 떠올랐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고 남들보다는 역사를 더 많이 알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나의 역사 지식은 그리 깊은 게 아니었다. 나보다 역사를 더 모르는 사람 역시 많을 것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지금 우리나라는 일본의 역사 왜곡과 영토 분쟁 조장, 더 나아가 중국의 역사 왜곡에까지 맞서고 있는 상황이니 더욱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젊은이들은 입시와 취직를 위한 공부에만 매달려 있다. 그렇다보니, 시험과 관계 없이 역사만을 위한 역사에는 관심이 없었다.
지난 2017년도부터 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됐다. 이는 아주 긍적적인 변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한국사의 비중은 외국어보다 낮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목은 영어같은 외국어가 아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일본은 적극적으로 잘못된 역사를 교육하고 있고, 중국 역시 마찬가지로 한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게 오래 지속되면 우리 역사는 그 원형을 잃을 것이다. 우리 역사는 우리 손으로 지켜나가야 한다. 앞으로 교육에서 한국사의 비중이 높아지고, 많은 학생들이 한국사와 친해져야 한다. 그래야만 광개토대왕릉비의 진실을 찾고 우리 역사를 지킬 수 있다.
JTBC에서 방송된 <차이나는 클라스-질문있습니다>에서 김병기 서예가는 이런 말을 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시대에 무슨 민족이 필요하고 역사를 얘기하느냐, 너는 국수주의 아니냐’고 얘기한다. 국수주의와 역사를 아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알고서 우리 민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필요한 것이지, 우리 민족을 아예 모르는 것은 무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