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 '데이트 통장' 애용.. 함께 돈 넣고 함께 쓰고

서로 부담 안주고 비용 관리 ..이별 때 '재산분할'(?) 문제도 발생

2014-05-02     취재기자 장가희
캠퍼스 커플, 일명 'CC'인 이아림(24, 부산시 동구) 씨와 권지훈(가명, 24, 부산시 사상구) 씨는 388일 째 연애 중이다. 지난 11일, 그들은 수업을 마치고 데이트하기 위해 부산 사상에서 만났다. 5시 약속에 권 씨가 조금 늦었다. 남자 친구를 보자마자, 이 씨는 배고프다며 투정을 부렸다. 권 씨는 이 씨를 안아주며 달랬다. 화해한 후, 그들은 손을 잡고 저녁으로 이 씨가 좋아하는 치킨을 먹으러 갔다. 치킨 값으로 나온 금액은 1만 7000원. 저녁을 먹은 후, 영화관에서 쓴 금액은 1만 8000원. 이 금액 모두를 남자 친구인 권 씨가 씩씩하게 지출했다. 이 씨는 권 씨의 계산을 당연시 여겼다. 마지막으로 간 맥주 집에서는 추가로 1만 9000원이 나왔다. 맥주 집에서도 권 씨는 기분 좋게 지갑에서 체크카드를 꺼내며 자신이 계산했다. 모든 데이트 비용을 권 씨가 냈음에도, 그는 과도한 지출에 쭈뼛쭈뼛 하지 않았고, 여자는 미안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권 씨가 모든 데이트 비용을 지출하고도 웃으며 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알고 보니, 그들에게는 '데이트 통장'이 있었다. 권 씨가 당당히 카드를 내밀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데이트 통장을 공유하기 때문이다. 데이트 통장이란 연인 두 사람이 한 계좌로 돈을 모은 뒤 그 통장의 체크카드로 데이트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말한다. 남자가 돈을 더 많이 쓴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남녀가 같이 돈을 내고 같이 쓰는 데이트 통장이 요즘 20대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이 씨 커플은 데이트 통장을 만든 지 3개월 째 접어들고 있다. 이 씨는 1인당 밥 값 5000원에 30일을 곱해 남자 친구와 총 30만원을 통장에 넣고 데이트 비용으로 쓴다. 그들은 "서로 바빠 일주일에 1~2번만 만나기 때문에 30만원이 데이트 비용으로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데이트 통장은 공동명의로도 만들 수 있지만, 입출금할 때 두 사람이 함께 은행에 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이 씨 커플의 통장은 이 씨 명의로 되어있다. 통장은 이 씨가 관리하고, 체크카드는 남자 친구인 권 씨가 들고 있다. 이 씨는 ”체크카드도 제가 관리할 수 있지만, 남 앞에서 남자 친구의 어깨에 힘을 실어주기 위함도 있고, 하나씩 따로 관리해야 서로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죠”라며 미소를 지었다. 또 다른 대학생 커플, 손선희(23, 경남 밀양시) 씨와 박형준(25, 부산시 해운대구) 씨도 데이트 통장을 쓴다. 손 씨는 통장을 쓰기 전에는 남자 친구의 지출이 더 많아서 항상 미안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도 같이 내고 같이 쓰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고 밝혔다. 박 씨는 데이트 통장을 쓰기 전에는 매번 데이트 비용을 자신이 지출하던 과거가 상상도 하기 싫었다. 지금은 데이트 통장에 정해진 한도가 생겨서 합리적으로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박 씨는 "데이트 통장을 모든 연인들에게 강력 추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가 데이트 통장에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김민호(가명, 21, 부산시 수영구) 씨는 올해 초 여자 친구의 제안으로 데이트 통장을 만들었다. 그런데 데이트할 때마다 데이트 통장의 잔액을 신경 쓰게 되니까 오히려 힘든 면이 생겼다. 김 씨는 "데이트 통장 잔액이 그 달 중반 쯤에 다 써버려, 그 때 여자 친구가 데이트 횟수를 줄이자고 해서 당황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익명을 요구한 김 모(26, 부산시 금정구)씨는 데이트 통장에 대해 안 좋은 추억이 있다. 김 씨는 데이트 통장을 쓰던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돈이 남아있지만, 혼자 마음대로 쓸 수도 없고 다시 연락하기도 싫어서 아직도 쓰지 않는 데이트 통장을 마치 '이별의 정표'처럼 가지고 있다.
또, 지난해 11월 8일 JTBC ‘마녀사냥’ 프로그램에 출연한 영화평론가 허지웅 씨는 데이트 통장을 쓰던 커플이 이별하면 그 데이트 통장은 이혼 커플의 '재산분할' 같은 형태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혼도 하기 전에 (데이트 통장 때문에) 이혼을 경험하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