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이 알고 싶다'를 알고 싶다...방송작가 "노동력 착취당했다" 폭로
한 방송작가 ‘최저임금 외면하는 방송국 실상' 폭로 / 조윤화 기자
2019-01-27 취재기자 조윤화
“청년 실업이니, 열정 페이니, 방송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웃프다. 저걸 만든 막내 작가는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최근 방송국에서 제작진 월급의 일부를 상품권으로 지급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방송사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제작진들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구조는 근절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PD연합회가 “잘못된 관행을 감시하고 바로잡지 못한 데 대해 PD들은 부끄러움을 금할 수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자성의 목소리를 유도한 사람들은 이른바 '갑질'을 당한 사람들이다.
지난 24일 국내 방송작가의 구인, 구직, 정보 공유 등이 이뤄지는 사이트 ‘KBS 구성작가협의회’ 자유게시판에는 ‘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피디들을 고발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SBS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 일했던 방송작가라고 밝힌 익명의 작가는 ‘인니’라는 필명으로 방송작가들이 겪는 방송계의 부조리를 폭로했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는 내가 방송일을 하며 만난 최악의 프로그램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했던 당시 월급으로 160만 원을 받았으나, 그마저 월별로 주지 않고, 방송이 끝나면 6주 후에 일괄 지급되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6주 간격으로 돌아가는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 특성상 “6주 중 기획 주인 첫 주만 10시쯤 출근해 7시쯤 퇴근하고, 2~5주엔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한다”며 "당연히 수당은 받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그곳이 알고 싶다>에선 24시간 일을 한다고 주장한 글 작성자의 주 업무는 밥 심부름과 커피 심부름이었다고 한다. 자신을 심부름꾼이라 칭한 작성자는 “기껏 커피를 사왔더니 이거 말고 다른 메뉴 먹고 싶다는 선배의 말에 도로 내려가 다른 것을 사오기도 했다”고 밝혔다.
폭로 글 원문에 따르면, 그는 담당 PD에게 "어떻게 이렇게 일을 시킬 수가 있냐"고 항의했지만 담당 PD는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하는 데야. 그렇게 똑똑하게 굴 거면 여기서 일 못해. 다들 그렇게 일해왔고, 그게 여기의 규정이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아직도 담당 PD의 답변이 잊히지 않는다고 말한 작성자는 “<그것이 알고 싶다>가 적폐 청산을 부르짖을 때마다 나는 웃긴다”며 자조했다.
작성자는 뉴스타파 <목격자들>에서 일할 당시의 상황도 털어놨다. <목격자들> 측에선 작성자가 첫 출근을 할 때까지도 월급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담당 PD에게 월급은 얼마냐고 묻자, ‘공중파처럼 120만 원씩은 못 줘’라고 하더라”고 주장했다. 당시 최저임금이 126만 원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작성자는 최저임금보다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의 월급을 받고 일한 셈이다. 이에 작성자는 “프로그램 PD는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 의문을 제기하며, “갑질을 고발하는 그들이 막내 작가들에게 갑질을 하는 형국이 아닌가”라며 비판했다.
글을 마무리하며 작성자는 “청년 실업이니, 열정 페이니, 방송에 그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웃프다. 저걸 만든 막내 작가는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보도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막내 작가들에게는 최저임금조차 지급하지 않는 방송국의 현실을 꼬집었다.
현재 해당 게시글은 3만 5000건의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얻고 있다. 네티즌들은 “너무 황당하고 안타까운 현실에 할 말을 잃었다”, “언론의 진짜 적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총파업까지 하며 방송 자체를 바꾸자고 개혁을 외쳐대는 사람들이 이게 뭐냐”며 익명의 방송작가가 폭로한 현실에 낙담했다.
한편, <그것이 알고 싶다>제작진은 해당 게시물로 논란이 불거지자 26일 동아닷컴에 “작가와 보조 작가의 처우 문제를 포함해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개선하기 위해 전반적인 조사를 하고 있다. 문제점이 발견되면 적극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