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는 한미군사훈련 시비 걸고, 정치권에선 ‘김일성 가면’ 이념 공세 펴고...평창올림픽에 재 뿌리는 사람들
/ 편집위원 이처문
2019-02-12 편집위원 이처문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12월, 일본군 소위 오노다 히로는 필리핀의 작은 섬 루방에 파견됐다. 그의 임무는 미군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1945년 2월, 루방은 미군에게 점령당했다. 며칠 만에 일본군 대부분은 전사하거나 투항했다. 하지만 오노다와 그의 부하는 밀림으로 숨어들어 미군과 원주민을 상대로 유격전을 계속했다.
그해 8월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일본은 항복했다. 그러나 오노다는 전쟁이 끝난 줄도 모른 채 밀림에서 전쟁을 벌였다. 필리핀 정부가 “전쟁은 끝났다”며 전단을 뿌리고 방송을 했지만 그들은 믿지 않았다. 미군의 유인 작전으로 오인한 것이다. 이번엔 일본 정부가 나섰다. 패잔병들의 가족 사진을 전단으로 만들어 공중에서 살포하면서 가족 품으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오노다도 이를 봤지만 미군의 계략인 줄 알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노다는 1972년 스즈키라는 호기심 많은 청년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30년 가량의 세월을 밀림에서 버텼다.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왜 혼자서 밀림에서 유격전을 벌였느냐는 질문에 “절대 항복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존재하지도 않는 제국을 위해 허황된 믿음을 지키느라 일생을 파괴적인 삶으로 허비한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는 수용하고, 그렇지 않은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한다. 영국의 심리학자 피터 웨이슨이 제시한 개념이다.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경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코카콜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탄산음료인데도 끊임없이 새로운 광고를 만들어 내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맛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이미 잘 알고 있는 음료라는 믿음을 소비자에게 심어주려는 마케팅 기법이다. 영화를 고를 때 자신이 보고 싶은 영화에 달린 긍정적인 댓글을 보고 마음을 굳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자신이 산 주식이 오를 거라고 믿는 사람이 비관적 주가 전망에 귀를 닫는 것도 같은 경우다.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했다는 언론 오보 역시 확증편향의 대표적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이번 소동은 한 언론사가 ‘김일성 가면 쓰고 응원하는 북한 응원단’이라는 사진기사를 내보내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통일부는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해명했다. 해당 언론사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며 공식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보수 야당은 때를 놓치지 않고 이념 공세에 나섰다.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비아냥거리던 사람들은 “김일성이 지켜보는데서 응원을 하게 내버려둔다”, “우리 대통령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김일성 가면을 쓰고 응원하느냐”는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국민과 언론이 김일성 가면으로 인식하면 그건 김일성 가면”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람들의 눈에는 가면에 등장한 그 남자가 젊은 시절 김일성이어야만 했다.
상식적으로 봐도 북한 응원단이 김일성 가면을 썼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비록 가면이긴 하지만 북한 사람들이 김일성 눈에 구멍을 뚫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일 터. 예전에 김정일 현수막이 비에 젖게 내버려뒀다며 눈물로 항의하던 북한 사람들 아니던가.
한 언론사의 오보에 때를 만난 것처럼 불을 켜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평창올림픽이 이렇게나마 탈없이 진행되는 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모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는 북한 응원단이 단순하게 응원만 하려고 내려왔을 리가 없다. 북한 응원단은 대남 유화책에 불과할 뿐 뭔가 노림수가 있다. 하지만 지금 북한은 노림수를 준비할 정도의 여유가 없어 보인다. 남한을 통해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야 하는 처지다. 어쭙잖은 꼼수로 대사를 그르칠 까닭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김일성 가면’을 생각해냈다는 것은 상상력 치고는 유치하다. 설사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더라도 ‘피식’ 웃고 말 일이었다.
드론 오륜기가 세계인의 눈을 사로잡고, 김여정 특사가 외신의 관심을 독차지했다. 이런 와중에 평창올림픽이 못마땅한 사람들은 여전히 재 뿌리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고 언급해 우리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한반도 문제에 대해 한국은 일본의 권고를 들어야 한다는 교만이 아니고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발언이다. 평화 무드를 조성하려는 올림픽에 와서 ‘군사훈련’을 들먹였다. 그것도 남의 나라 훈련일정에 감놔라 배놔라는 식으로. 이웃나라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얕보기’에 가깝다.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의 주권 문제이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고 일침을 놓았지만 한반도에서 대화보다는 대결과 긴장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아베 정권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지지율 추락으로 고민하던 아베 총리가 북한의 미사일 발사이후 다시 지지율을 만회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보수정권에겐 긴장과 대결만큼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는 확실한 수단이 또 없을 터이다.
문제는 아베 정권의 속셈에 장단을 맞추는 국내 일부 보수 야당이다.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라고 폄훼하고, 북한 응원단 가면을 ‘김일성 가면’이라고 우기는 순간 아베는 회심의 미소를 보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이런 정치적 역학 관계를 꿰뚫고 있는 아베가 의도적으로 한미군사훈련을 언급했을지 모른다. 우리의 보수야당도 이미 이를 문제 삼았던 터다.
미국 NBC 해설자 조슈아 쿠퍼 라모는 역사를 왜곡하는 망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일본 강점기를 겪은 한국인이 일본의 문화와 기술, 경제를 본보기로 여기게 될 것이라는 ‘논평’이 또 한번 한국인의 속을 긁어 놓은 것이다. 어쨌거나 우리를 향한 외부의 왜곡된 시각을 탓하기에 앞서 나라 안에서부터 비뚤어진 시각을 바로잡는 게 급선무일 것 같다. 평창올림픽이 그나마 대한민국을 이념의 틀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게 해주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