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출판기념회, 정치 자금 모금 행사로 변질 우려
김영란법도 비켜가는 출판기념회, 정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책 판매해도 문제없어 / 조윤화 기자
2019-03-08 취재기자 조윤화
정치인의 출판기념회가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행사로 변질됐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책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라기보다 '선거자금 모금 행사'라는 비판이다.
출마 예정자에게 출판기념회는 인지도를 높일 좋은 기회의 장이자 세를 과시할 수 있는 행사다. 선거 유세 전 합법적으로 선거 자금을 대거 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출판기념회는 1석 3조의 효과를 가진다.
선거법상 출마 예정자들은 선거일 90일 전까지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부터는 출판기념회 개최가 전면 금지된다. 최근 들어 급증한 출판기념회 소식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일주일이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몰아내기식 출판기념회가 우후죽순 열리는 것이다.
출판기념회 초대장을 받은 공무원과 지역 업자들은 속앓이가 심하다. 누가 당선될지 모르니 행사마다 참석 안할 수도 없고, 막상 행사에 가서도 ‘얼마를 봉투에 넣어야 하나’ 고민이다.
충청지역의 한 자치단체 공무원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자치단체장이 출판기념회 한 번 하면 억대를 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공무원이 30년 이상 근무하고 받는 퇴직수당보다 많은 돈을 하루에 번다”며 “기획출판사 등에서 대필 작가나 출판기념회까지 맞춤형으로 제공해 많은 정치인이 손쉽게 큰 돈을 챙겨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부 출판기념행사에서는 현금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카드 단말기까지 가져다 놓는다. 행사 관계자들은 이름과 직책이 적힌 흰 봉투 안에 책 정가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이 들어있는 것을 알면서도 제재를 하지 않는다. “봉투가 두꺼워 보이는 이들에게 책 몇 권을 더 얹어 줄 뿐”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법적인 문제는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없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출마를 앞둔 공직자는 1회 당 100만 원, 연간 300만 원을 초과하는 후원 액수를 받을 수 없지만, 책값을 명목으로 하는 돈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책을 정가보다 적은 액수로 판매하면 선거 홍보로 간주해 제재하지만,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출판기념회에서 올린 수익은 정치자금에 해당하지 않아 수입 내용을 공개할 의무 역시 없다.
이에 정치권 내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인들이 언급하는 ‘3무(無) 선거’에 ‘기부금 모금·선거 펀딩·출판 기념회’가 등장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지난 6일 인천시 교육감 선거 출마를 선언한 박융수 인천시 부교육감은 “후원 기부금, 선거 펀딩, 출판기념회가 없는 3무(無) 선거를 하겠다"며 "세칭 진보와 보수의 진영 논리를 포괄할 수 있는 교육감으로서 제 학연·지연·혈연과 관련 없는 인천에서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펼치겠다"고 밝혀 인천 시민들의 호평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