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식 앞둔 ‘시진핑 황제’…우리의 중국 전략 재검토가 시급하다

강동수 자투리 시사인문(35) 장기집권의 문 열어젖힌 ‘시진핑 체제’가 뜻하는 것

2018-03-07     편집국장 강동수

1.

자고 깨면 새로운 뉴스가 터져 나온다. 뉴스의 홍수 속에서 국민들은 오늘은 또 무슨 일이 터질까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야 할 판이다. 워낙 국내 뉴스가 범람하다 보니 우리네 삶과 연결된 중요한 국제 뉴스가 제 대접을 못 받고 구석으로 밀려나는 형국이다. 이를테면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 시동에 따른 미국과 EU·중국·캐나다 사이 일촉즉발의 ‘무역 전쟁’이 그렇다. 그 와중에 이웃나라인 중국도 지금 정치적 격변을 맞고 있다.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칠 일인데도 우리는 국내 문제에 정신이 팔려 그 변화를 놓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의 이른바 ‘황제 등극’이 그것이다.

중국에선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약칭 전인대) 1차 회의가 지난 5일 오전 개막했다. 이번 전인대가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것은 ‘국가주석직 2연임 초과 금지’를 규정한 헌법 조항을 삭제해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케 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오는 11일 헌법이 개정되면 시진핑은 이론적으로는 종신까지 절대 권력을 장악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의 지식인과 기업인들이 유례없이 그의 장기집권에 반대하고 있고 장쩌민 전 주석도 강경한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중국공산당이 밀어붙일 것이 확실하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 사상’도 헌법에 삽입될 전망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따르면, 이번 개헌은 지난해 9월 시 주석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시진핑이 지난해 9월 29일 공산당 지도부인 25인의 정치국 위원이 모인 자리에서 개헌을 처음으로 제안했다는 것. 이후 장더장(張德江) 전인대 상무위원장이 이끄는 태스크포스가 꾸려져 지방 당 간부와 비공산당 정당 관계자 등 2600여 명의 의견을 들었다. 12월 중순에는 당 원로들을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 이들 원로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 원자바오(溫家寶) 전 총리,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 등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서방언론은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춘추전국을 끝내고 중국의 첫 통일국가를 세운 진(秦)의 시황제(始皇帝)에 빗대 ‘시황제(習皇帝)’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비꼬고 있다. 기원전 221년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를 세운 진시황(秦始皇)은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폈다. 화폐와 도량형을 통일하고 만리장성과 아방궁 같은 거대한 토목 공사를 벌였다. 그가 국론 분열을 방지하기 위해 언로를 막고 사상을 강력하게 통제하는 분서갱유를 자행했던 인물이라는 건 다들 아는 이야기.

시진핑을 ‘시황제’라고 부른 건 서방언론이 먼저다. 2014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시 주석을 표지모델로 올리고 ‘시황제(習皇帝·Emperor Xi)’라는 제목을 달았다. 타임은 “1세대 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중국 인민을 일어나게 했고 2세대 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 인민을 부유하게 했다면, 시진핑은 중국 인민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고 썼다. 강력한 반부패 개혁정책으로 공직자 수십만 명을 낙마시키며 권력을 장악해 가는 시 주석의 행보를 절대 권력자인 황제에 빗댄 것.

중국의 지식인은 물론 서방 언론은 시진핑의 장기집권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중국이 그나마 지키고 있는 10년 주기의 정권 교체 전통을 깨트려 버리는 것은 마오쩌둥(毛澤東) 시대로의 회귀라는 거다. 분명히 그런 측면이 있다. 1인 장기집권이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란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시진핑 1인 시대’는 그런 단순한 비판을 넘어서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중국의 꿈’, 이른바 ‘중국몽(中國夢)’이라 불리는, 미국을 제치고 21세기 세계 최대 패권국가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의 장기 포석이라는 거다. 우리가 경계심을 갖고 중국의 동향을 주목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대목이다.

 

2.

중국은 1982년 이후 집단지도 체제를 도입해 왔다. 이것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결정적 과오를 남긴 마오쩌둥 같은 독재를 막기 위해 덩샤오핑이 도입한 것이지만 이제 당·정·군 권력을 모두 틀어쥔 시 주석에 의해 집단지도 체제가 끝나가고 있는 것.

마오쩌둥이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간 주도했던 극좌 사회주의운동인 ‘문화대혁명’이 중국 대륙을 오랫동안 엄청난 혼란과 침체에 몰아넣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문화대혁명 이후 권력을 장악한 덩샤오핑은 1인 독재체제가 혼란의 가장 핵심 원인이라고 보고 공산당의 실력자들이 권력을 균점하면서 상호 견제하는 집단주의 체제를 형성했다. 국가 주석은 그 집단체제를 이끌어 가는 좌장(座長)인 셈. 1983~1988년 리셴녠(李先念), 1988~1993년 양상쿤(楊尚昆)은 명목상으론 국가주석이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덩샤오핑이 장악했다. 그리고 덩샤오핑 사망 이후 1993~2003년 장쩌민(江澤民), 2003~2013년 후진타오(胡錦濤) 등이 10년 주기로 집권해왔다. 제7대 국가주석 시진핑의 임기는 2023년 3월까지로 예정돼 있었지만 이제 연임 제한 조항이 철폐되면 그는 ‘황제’로 군림할 전망이다.

중국 현대 정치사에서 두 개의 큰 상처는 ‘문화대혁명’과 1989년 중국의 청년, 지식인들의 민주화 요구를 덩샤오핑이 탱크로 뭉개버린 ‘천안문 사건’이다. 전자가 중국을 극좌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퇴행적 사건이었다면, 후자는 ‘공산주의’를 정치 이념으로 하고 있는 중국을 서방식 민주체제로 바꾸겠다는 운동이었다. 덩샤오핑으로선 극좌적 문화대혁명의 반복도, 공산주의 이념을 무력화시키고 중국의 서방국가화를 시도하는 ‘천안문 사건’의 재발도 막아야 할 형편이었던 것. 다시 말해 ‘문화대혁명’과 ‘천안문 사건’의 중간 지점에 중국을 위치 지으려는 덩샤오핑의 구상이 집단지도체제를 낳았다고 설명할 수 있겠다.

헌법학 전문가인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법학교수는 지난달 27일 미국 블룸버그 통신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난 30년간 중국에서 10년마다 권력을 교체하는 실험이 30년간 유지되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실험의 핵심 개념은 중국 공산당 내의 권력이 분산되고 가장 중요한 결정은 합의에 의해 이뤄지도록 한 것이며, 그 합의의 결과물이 바로 임기 제한이고, 이에 따라 국가주석뿐 아니라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도 함께 10년마다 교체되는 시스템이 유지됐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펠드먼 교수는 “임기 제한과 지도부 합의에 의한 결정 시스템은 위험을 감수하고 개방으로 나가는 여건 조성에 기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면서 “권력이 나눠진 체제에서 어느 한 쪽이 경제성장의 과실을 독차지할 수 없고, 의사 결정의 책임도 지도부에 분산되기 때문”이라고 썼다.

덩샤오핑 시대 때부터 중국의 정권을 놓고 암투를 벌여왔던 세력은 크게 3개다. 공산주의청년단(약칭 공청단), 태자당, 상하이방이 그것. 공청단은 후진타오(전 국가주석)-원자바오(전 총리)-리커창(현 총리)으로 이어지는 권력 계보를 갖고 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중국 권부의 실세로 등장한 상하이 출신의 인사로 이뤄진 상하이방은 장쩌민(전 국가주석)-우방궈(전 전인대 상무위원장)-장더장(전 부총리) 등이 주요 멤버다. 그런가 하면 태자당은 덩푸팡(덩샤오핑 장남)-시진핑(현 국가주석)-저우융캉(전 정치국 상무위원)-보시라이(전 정치국 상무위원, 충칭시 당서기) 등의 인맥을 갖고 있었다.

태자당은 덩샤오핑의 자녀 및 사위를 비롯해 당·정·군·재계 실력자의 자녀 약 4000명이 중국의 핵심적인 요직에 포진했던 게 그 원천이다. 이들은 하나의 조직으로 모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혈연관계에다 결혼, 학교, 직장 등을 통해 그물망처럼 촘촘한 ‘관시(關係)’를 맺으며 중국의 정·관계와 경제계를 주름잡았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부총리 등을 역임한 중국공산당 핵심 간부였던 시중쉰(習仲勳)의 아들 시진핑 현 국가주석의 권력기반도 태자당인 거다.

 

3.

시진핑은 1953년 산시성 푸핑에서 태어났다. 혁명 원로인 시중쉰(1913~2002)의 차남이다. 청소년 시절은 매우 불우했다. 문화대혁명으로 숙청된 아버지 때문에 그도 산시성으로 쫓겨 가 고된 노동 재교화를 받아야 했던 것.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부친이 복권된 뒤에야 베이징에 돌아온 그는 1975년 22세의 나이에 칭화대학에 입학해 화학공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첫 공직은 중앙군사위 판공실 비서였다. 그는 중앙보다는 지방 근무가 많았다고 한다.

그가 정치적 두각을 나타낸 것은 공청단파의 리더인 후진타오 주석이 상하이방의 대부로 통하는 장쩌민 전 주석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시기인 2006년 당시 일어난 천량위 상하이시 당서기의 비리사건이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태자당 소속인 그는 상하이 당서기에 취임한 뒤 이 사건을 무난하게 수습했다. 이때 공청단파와 상하이방 양쪽에서 ‘정치력이 있는 지도자’란 평가가 나왔던 것. 그는 2007년 10월 당 17차 전국 대표자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급부상했다.

시진핑이 권력의 일선에 나선 것은 2010년께 중국 공산당 내부에서 일어난 노선 갈등 때문이었다. 이 노선 갈등은 정치개혁 논쟁으로 격화됐는데 공청단파이자 개혁파인 총리 원자바오는 성장제일주의에서 벗어날 때라며 분배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 그는 공산당의 권력도 법치의 테두리 안에 가둬야 하며 중국에 자유가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그러자 상하이파 중심의 보수파들이 이런 주장에 반발했다. 이 두 파벌의 팽팽한 세력다툼 끝에 절충안으로 시진핑이 후진타오의 후계자로 지명됐다. 후진타오 주석이 자진해서 지명한 게 아니라 부부장급 이상 고위 공산당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 차기 지도자 1순위에 뽑혔던 것.

2013년 국가주석과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에 취임하며 정부, 당, 군을 장악한 시진핑은 빠르게 권력 기반을 다져나갔다. 2013년 3중전회에서 전면적인 개혁에 착수할 것을 선포했고, ‘중앙 전면심화 개혁영도소조’를 조직해 자신이 직접 개혁을 총지휘할 것을 예고했다. 그리고 성장률에 목매는 대신 환경 보호와 빈곤 퇴치, 지역 균형발전, 지속가능한 도시화 등에 역점을 둔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2015년부터 ‘4개 전면’(전면적 소강사회 확립, 전면적 심화개혁, 전면적 의법치국, 전면적 종엄치당)을 통치철학으로 삼겠다고도 했다.

 

4.

그렇다면 시진핑이 10년 주기의 권력 교체 틀을 깨고 장기집권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개인의 권력욕이라고만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는 집권 1기에 걸쳐 당, 정부, 군대에 걸쳐 확실한 통제력과 주도권을 확보했다. 그에겐 중국사회를 개혁해야 할 과제가 주어져 있었다. 후진타오 시대 1인당 GNP 5000달러 시대에 도달해 중진국 수준에 도달한 만큼 공산당 지도부가 인민들에게 약속했던 ‘사오캉(小康)사회’를 확실히 보장해야 했던 것. ‘사오캉 사회’란 인민들에게 먹고 살만한 중산층의 삶을 보장하는 것. 그래서 그는 집권 2기에 들어서면 더 급속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영기업 개혁과 지방정부 재정문제, 부채문제 해결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건 사실 중국의 최대 난제다. 온갖 이권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어서 함부로 칼을 대기가 쉽지 않으며, 성장에 자칫 악영향이 갈 수 있기도 있기 때문.

대외 정책도 마찬가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는 의미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외교정책으로 내세운 덩샤오핑 시대를 넘어 이젠 미국과 세계 패권을 다투는 ‘중국 굴기(堀起)’의 시대의 맞았다는 거다.

시진핑이 주창하는 ‘대국외교’는 크게 두 방향이다. 그 하나는 ‘신형 국제관계의 건설’이다. 그 동안은 미국에 눌려 있었지만 이제 G2로 부상한 만큼 중미관계가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돼야 한다는 뜻.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미국을 제치고 세계 제1의 패권국가로 부상하겠다는 야심도 숨겨져 있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시진핑은 국방 현대화를 통해 강군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를테면 핵 항공모함을 건조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미국, 일본 등과의 충돌을 불사하며 동중국해를 자기네의 지배 아래 두려고 시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른바 ‘인류운명공동체의 건설 추진’이다. 시진핑은 지난 1기 집권에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브릭스(BRICS)은행 ▲실크로드기금 등을 추진했다. 군사력뿐만 아니라 경제, 국제 협력 분야에서도 세계 지도국이 되겠다는 구상이다. 이처럼 ‘대국외교’를 강조한 시진핑 2기 시대의 외교는 전통적인 방어 전략에서 한발 나아가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

시진핑이 임기 제한을 철폐해 집권 연장을 꾀하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중국의 패권 전략과 맞닿아 있다. 자신이 주창하는 ‘중국몽’을 현실화하려면 2023년으로 정해진 집권 기간으로는 시간이 모자란다는 거다. 자기가 안정적인 집권 기반을 가지고 이런 전략을 장기 추진해야 한다는 이야기. 따지고 보면, 3선 개헌에다 유신헌법까지 만들어 종신집권을 시도했던 박정희의 논리와 비슷한 맥락인 셈.

그래서 중국 지식인들도 바로 이런 시진핑의 야망을 경계하고 있는 것. 장기 집권의 길을 허용하면 중국이 힘들게 쌓아놓은 집단지도체제가 무너지고 1인 독재체제로 갈 우려가 크다는 거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형국으로는 이미 중국 공산당을 평정한 시진핑이 장기집권의 문을 무난하게 열 것으로 보인다. 그 문이 바로 이번 전인대에서 의결될 헌법 개정인 거다.

 

5.

그렇다면 ‘중국몽’으로 슬로건화한 시진핑 치하 중국의 대국주의는 궁극적으로 동북아시아,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게 우리로선 초미의 관심사다. 시진핑의 장기 집권이 그저 강 건너 불이 아닌 까닭도 바로 이 지점이다.

‘시(習)황제’ 시대에서 우리는 어떤 중국 전략을 수립해야 할까. 무엇보다 향후 한중관계에 있어서 중국의 일방적 보복이나 견제를 받지 않아야 할 거다. 동시에 우리의 국익과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선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적으로 중국에 대한 깊이 있는 학습이 따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선 대미일변도의 외교정책에 대한 전면 재검토가 시급할 것 같다. 현재의 한미 동맹체제를 근본에서 허물어뜨리란 소리는 결코 아니다. 우리는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미국의 신세를 적지 않게 져왔고 안보, 경제 측면에서 미국은 결코 소홀히 할 파트너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의 굴기가 계속되고 패권주의 전략을 앞세운다면, 우리가 인접국가인 중국과 구태여 척을 져서 긴장과 갈등을 유발할 필요가 없지 않나. 미-중 틈바구니에서 국익을 지켜나갈 지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이를테면, ‘사드 배치’를 섣불리 결정해 중국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중국의 경제 보복을 자초하는 일이 반복돼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사드 보복이 비열하다고 비난하기에 앞서 그런 보복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 그리고 설혹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미리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은 언제든 변할 수 있는 8색 가면을 쓰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에 대한 우리의 협상력을 높일 필요도 있을 것이다. 수교 당시엔 중국으로선 동북아의 경제 우등생이었던 우리의 자본과 기술, 경제발전 경험이 절실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우리에게 크게 빚질 일이 없다. 오히려 양국의 경제관계는 제한적 협력 속에서 치열한 경쟁의 시대를 맞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익에 필요한 대 중국 협상력을 높이는 국가 전략을 준비해야 할 때다.

장기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여나가기도 해야 할 터다. 중국 시장을 소홀히 해선 안 되겠지만 특정한 나라에 너무 많은 무게중심을 두는 건 위험할 수 있다. 우리의 시장을 다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거다. 그렇게 보면 ‘신(新)남방정책’을 통해 아세안 10개국과의 교역을, 현재의 중국 교역량만큼 발전시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구상은 시의적절한 대안이 될 것 같다. 이는 대중 협상력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요악하면, 안보는 한미동맹을 유지하고, 자주국방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잘 맺어나가는 것, 경제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것 등이 되겠다.

지금 중국에선 ‘시황제’ 대관식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하고 보면, 북한의 세습 독재자 김정은, 개헌으로 임기를 늘려 2024년까지 집권을 노리는 러시아의 ‘차르’ 푸틴에 이어 중국에선 시황제까지 등극하는 것. 게다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선 ‘무지막지한 장사꾼’ 트럼프가 세계를 상대로 무역 전쟁에 나선 형국이다. ‘스트롱 맨’들이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의 입지를 다져나갈 지혜가 그래서 더욱 필요한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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