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부담 홀로 떠안은 미혼모...‘히트 앤드 런 방지법’ 국민청원 등장
양육 책임 회피한 비양육 부모에게 불이익 달라는 청원에 11만 명 지지 / 조윤화 기자
비양육 부모의 양육비 지급에 강제성을 부과하는 법안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이는 실제 미혼모가 아이의 친부로부터 양육비를 받아내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목소리여서 결과가 주목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비양육 부모에게 양육비를 강제 지급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와 많은 네티즌이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익명의 청원인 A 씨가 올린 이 청원은 ’미혼모를 위한 히트 앤드 런 방지법을 만들어주세요‘라는 제목이 달려있다.
A 씨는 “언제까지 무책임한 아이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만 사회적 편견과 경제적 빈곤 안에서 고통스러워야 하는 걸까요”라며 덴마크에서 실시하는 ’히드 앤드 런 방지법‘을 국내에도 도입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A 씨는 “덴마크에서는 미혼모에게 미혼부가 매달 약 60만 원 정도를 보내야 한다”며 “미혼부가 돈을 보내지 않을 시 정부가 미혼모에게 상당한 돈을 지급하며, 그 이후 미혼부에게 세금으로 원천징수를 해버린다”고 말했다. 현재 해당 청원에 11만 2000명이 동참 의사를 표시했다. 오는 25일까지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동참할 경우 정부의 공식적 답변을 듣게 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미혼모는 2만 4000여 명으로 집계됐다. 사회적으로 편견 어린 시선을 받고 있는 미혼모 특성상, 신분 밝히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집계된 수치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다수 미혼모는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미혼모 양육 및 자립 실태 조사 결과, 미혼모 46%가 부채를 안고 있으며, 월평균 총소득은 78만 원에 그쳤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5년경 한 자녀 당 양육비 지출액을 월 64만 8000원으로 산정한 것을 감안하면, 미혼모 가정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위치에 놓여 있는지 짐작게 한다.
미혼모가 양육비 부담을 혼자 떠안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생부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기 때문. 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2016년 조사에 따르면, 미혼모가 아이 친부와 단절된 경우는 78%에 달했으며, 양육비를 지원받는 경우는 9.4%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아이 친부로부터 양육비 지원을 받는 경우는 2010년 기준 4.7%(성 정책 평가원, 미혼모의 양육 및 자립상태 실태조사)에서 4.7%p 오른 수치다.
미혼모 가정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부의 시도는 여럿 있었으나 번번이 실효성 문제는 제기됐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2015년 출범한 양육비이행관리원이다. 양육비이행관리원은 한 부모 가정의 양육비 청구수령을 돕기 위해 출범했으나 비양육 부모가 양육비 지급을 고의로 거부할 경우 강제성을 부여할 권한이 없어 실효성 논란이 일었다. 일요신문 보도에 의하면, 약 3년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미혼 부모 가정에 양육비가 이행된 건수는 전체 2422건 중 78건으로 3% 수준에 불과했다.
일각에서는 친부에게 양육비 지급 청구 소송을 걸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나오지만, 소송 절차가 워낙 까다로워 미혼모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친부의 행방을 모르면, 소송을 하기조차 어렵다. 또한, 법률혼이 아닌 관계에서 아이를 낳아 미혼모가 됐을 때, 양육비 청구 소송 시 대부분 친부에게 인지 청구 소송을 해야 한다. 인지 청구 소송은 생부가 아이를 자신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을 때 ’강제 인지‘하도록 하는 소송이다. 물론 친부가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인정할 경우에는 인지 청구 소송을 할 필요가 없지만, 실제로는 인지 청구 소송을 해야 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문제는 인지 청구 소송 과정 중 유전자 검사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친부가 검사를 차일피일 미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 실제 미혼모들이 자주 찾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유전자 검사를 하루빨리 받고 싶은데 아이 아빠가 응해주질 않아 답답하다‘는 글이 다수 게재돼 있다. 이렇듯 친부가 연락을 받지 않거나, 유전자 검사를 미루는 경우 소송 기간은 하염없이 길어져 쉽사리 소송을 걸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의 박영미 대표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많은 미혼모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고, 결국 사회 취약 계층으로 전락해 생계 위기에 처하는 것이 현실이다”라며 “미혼모가 아이 키우는 부담을 혼자서 감당하지 않고 아이 아빠도 책임과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