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함과 부끄러움의 차이?

2013-01-16     경성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 박기철

한 점 부끄럼 없는 인생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윤동주의 ‘서시’는 아직도 진한 감동을 줍니다. 이 서시는 1948년에 출간된 윤동주의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가장 앞에 나오는 시라고 해서 서시라고 합니다. 이 서시는 광복 후 혼란한 시대에 방황하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따뜻한 위안과 아름다운 감동을 불러일으킨 최고의 서정시라고 합니다. 이 시의 맨 앞부분을 보면 죽는 날까지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아야겠다고 합니다. 정말 인간에게 부끄럼 없이 사는 것이 중요할까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란 시적 표현이 생활 지침이 될 수 있을까요?

부끄럼 없이 사는 즐거움

맹자는 군자에게 세 가지 즐거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君子有三樂! 첫 번째 즐거움은 양친이 다 살아계시고 형제가 무고한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요(父母俱存 兄弟無故 一樂也), 우러러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요(仰不愧於天 俯不作於人 二樂也),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다(得天下英才 而敎育之 三樂也)라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즐거움 중 두 번째인 하늘과 땅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삶입니다. 이는 스스로의 인격 수양을 통해서만 가능한 즐거움이겠지요. 이렇게 보면 윤동주의 서시는 맹자의 군자유삼락의 두 번째 즐거움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로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굽어보아도 사람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란 고전 표현이 우리의 인생 지침이 될 수 있을까요?

부끄럼 가지고 사는 인생

하지만 맹자는 또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맹자가 말한 4단(四端) 중에 수오지심(羞惡之心)이란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 나를 부끄러워하는 마음입니다. 왜 똑같은 사람인 맹자가 인간은 부끄럼 없이 사는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라 했는데, 이와 모순되게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인간의 두 번째 선한 마음씨라고 했을까요? 인생에 있어서 부끄럼이 하나도 없이 남 앞에서 당당히 사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건 부끄럼을 가지며 나 자신에게 겸손히 사는 것이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요? 창피함이 외면적이라면 부끄럼이란 내면적입니다. 찢어진 바지를 입은 것이 들켜 남 앞에서 느끼는 감정이 창피함이라면, 찢어진 팬티를 입어 남에게 안보여 창피하진 않지만 나에게 느끼는 감정이 부끄럼입니다. 창피함을 느끼는 사람은 남이 안 보는데서 창피한 행동을 할 수 있지만 부끄럼을 느끼는 사람은 남이 안 보는데서 창피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에게 부끄러우니까요. 창피함을 느끼면 쪽팔리지만, 부끄러움을 느끼면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창피함이란 창피해지지 않으려고 외부로부터 나를 지키지만, 부끄럼이란 부끄럽지 않으려고 내부로부터 나를 지킵니다. 나를 절제하기 위해 창피함보다 부끄럼을 느끼며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창피함을 느끼며 살기보다 부끄럼을 가지며 살아야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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