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주민이 택배기사에 갑질? 택배차량 출입금지 갈등 '일파만파'
다산신도시 아파트, 안전문제로 지상주차 금지 "카트로 옮겨라"...택배노조 "기사에 부담 떠넘지 말라" / 신예진 기자
2019-04-10 취재기자 신예진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에서 때 아닌 택배 전쟁이 발발했다. 택배 차량의 지상 출입을 통제하는 아파트 측과 이에 집까지 물품 배송을 거부하는 택배 기사의 싸움이 시작된 것. 여론은 택배 기사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쪽에 무게가 실렸다.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한 아파트 입주민 공고가 공개됐다. 공고 내용의 주는 지상 차량 통제를 위한 ‘단지 내 택배 운송차량 출입 금지’다. 아파트 측은 “우리 아파트가 최고의 품격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지상에 차량 통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갈등은 이를 거부하는 택배사에 대한 대응 방안을 둘러싸고 불거졌다. 아파트 측이 입구에서 배송 물품을 내린 뒤 택배 기사가 카트를 이용해 고객들에게 배송하라고 요구했기 때문. 공고문에는 “아파트 출입 못 하게 해서 택배를 반송하겠다고 하면 ‘걸어서 배송하기 싫다고 반송한다는 말씀이신가요’라고 대응하길 바란다”는 내용도 담겼다.
아파트 측의 택배 차량 거부는 지난 3월 택배 차량에 아이가 부딪히는 교통사고에서 비롯됐다. 당시 택배 차량은 후진하던 중이었다. 이에 일부 단지에서는 지상에 택배 차량 출입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택배사에 전달했다. 그 대신 단지 출입구의 지상 주차장을 이용하거나, 지하 주차장을 활용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일부 택배업체 측은 아파트 측에 곤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지하주차장의 층고(2.1~2.3m)보다 택배 차량의 높이(2.5~3m)가 더 높아 지하주차장으로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것. 택배기사는 모두 개인 사업자다. 따라서 택배 차량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택배기사가 사비를 들여야 한다. 비용은 약 1대 당 300만~400만 원 선이다. 택배 차량을 개조하면 적재 공간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결국,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은 아파트 단지 앞에 택배 물량을 쌓아놓겠다고 선언했다. 택배 주인이 직접 찾아가는 셀프 서비스인 셈이다. 그러나 택배 기사는 배달된 물건을 다 찾아갈 때까지 쌓인 택배 물품 앞에서 자리를 지켰다. 물건이 탈 없이 주인을 찾아가도록 새벽까지 추가노동을 한 것.
택배 전쟁을 지켜보는 다른 아파트 입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주부 A는 “나도 지상에 차 없는 아파트에 산다”며 “그래도 택배, 우체국 차량 등은 열외다”라고 말했다. A 씨는 “경찰차와 소방차도 출입을 금지할 거냐”며 “아이가 다치지 않는 다른 방안을 찾아야지 무조건 막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온라인에서도 여론은 ‘주민들의 갑질’이라고 한 목소리로 비난했다. 한 네티즌은 “택배비는 고작 2500원이고 기사에게 돌아가는 돈은 1000원도 안 된다”며 “택배가 한두 개도 아니고 자기네가 차량 출입을 막아놓고 입구에서부터 카트로 일일이 집까지 배달하라는 게 가당키나 하냐”고 말했다. 그는 “제발 돈을 내는 만큼만 서비스를 바라길”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마을 택배기업’을 제안했다. 단지 내 거점에 물량을 배송하고, 사회적 취약계층 종사자들이 가구별로 배송해 주는 시스템이다. 실제로 남양주시 별내동, 도농동, 화도읍 등 작은 마을에서 마을 택배기업을 실행하고 있다. 이를 아파트에 도입한다면, 택배기사들이 한 곳에 모아 놓은 상품을 아파트에 거주하는 노인 등이 각 가구에 배달하면 된다. 노인들은 관리비를 통해 월급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논란에 대해 유명 강사인 최태성 한국사 강사는 다산 정약용을 언급하며 상생을 주문했다. 최 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산신도시? 택배 업체와 아파트 주민 간의 갈등? 다산 정약용의 고향 남양주. 정약용의 핵심 사상 중 하나는 애민이죠”라며 “사람에 대한 따스한 시선과 배려. 다산의 정신에 따라 서로에게 윈윈하는 결과가 나오길 바랍니다”라는 글을 올렸다.
한편,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10일 성명을 내고 택배 회사와 국토교통부가 문제 해결에 앞장 설 것을 촉구했다. 택배노조는 “택배회사와 국토부는 택배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고 문제 해결에 책임 있게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배노조는 “다산 신도시 아파트 정문 안쪽에 물건이 널브러진 모습은 택배노동자의 절박한 사정을 보여준다”며 “인수자가 확인되지 않은 물건의 분실 책임은 택배 노동자가 전적으로 부담한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기 때문"이라고 호소했다.
택배노조는 “사고를 방지고자 하는 아파트 단지의 결정은 충분히 공감한다”며 “그럼에도 이는 택배 노동자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택배산업 전반적으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택배회사는 택배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하지 말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