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형감각이 필요하다

2015-09-15     편집위원 장동범
세월호 참사가 난 지 얼마 안지나 한 신문 칼럼에 이런 글이 실렸다. “배를 아는 사람은 침몰 영상에 담긴 비밀을 안다. 첫째, 배는 대개 밑바닥이 해저에 닿아 가라앉는다. 세월호는 뒤집어진 채 침몰했다. 배 윗부분이 더 무거웠다는 뜻이다. 둘째, 가장 끔찍한 건 선수 밑 부분이 이틀간 물 위에 떠 있는 장면이다. 일반인은 에어포켓이란 희망을 걸었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그곳은 뱃사람들이 생명수라 부르는 평형수가 들어있어야 할 곳이다. 그곳에 공기가 들어찼으니 뜬 것이다. 평형수가 턱없이 부족해 복원력을 상실했다는 증거다.” 배의 균형을 잡아줄 평형수가 들어있어야 할 선수 바닥 공간이 비어있으니 일정기간 떠 있은 것인데, 해경 구조대원들은 마치 사람이 있는 듯 망치로 그곳을 두드려대, 이를 본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 에어포켓에 수많은 선객들이 살아있는 줄 착각했고, 현장을 찾은 대통령조차 배에 공기를 넣어야 한다고 주장해, 상당수 사람들을 구조할 수 있으리라는 웃지 못 할 기대를 갖게 했다. 배는 물이 있어야 뜬다. 그러나 물이 배 안에 가득차면 가라앉기 마련이다. 역설적으로 배가 무게 중심을 잃고 기우뚱할 경우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는 복원력을 가지기 위해 큰 배의 밑바닥에는 일정량의 물을 채운다 한다. 이 물을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밸러스트 워터(ballast water), 즉 뱃사람들이 ‘생명수’라고 부르는 평형수인 것이다. 누군가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양심을 버렸다”고 진단했다. 이때의 욕심이란 돈을 벌기 위해 화물을 규정보다 많이 실은 것이고, 버린 양심은 배의 생명수인 평형수라는 메타포다. 누군가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담보로 잡힌 후진국형 안전사고인 것이다. 인류의 조상이 숲에서 걸어 나와 본격적인 직립 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두 발의 균형이 중요해졌다. 두 발이 균형을 잡아 대지를 굳게 디디고 섬으로 해서 두 손은 그 만큼 자유스러워져 각종 도구를 다룰 수 있었고 머리는 수평선과 광활한 하늘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도전과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직립의 결과 인간은 다른 네 발 동물들보다 훨씬 심한 소화 장애를 겪고 위장병과 치질이라는 부산물을 갖게 됐다. 두 다리로 곧게 서는 직립은 아기가 걸음마를 배우듯이 신체의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 우리 몸에는 귓속에 달팽이 고리관이 이 균형감각을 담당하는데 몸이 중심을 잃고 기우뚱하면 바로 서려고 애를 쓰게 하고 두 다리에 힘을 키움으로써 복원력이 생긴다. 그러나 직립의 능력이 생겼다 해도 몸이 중심을 잃으면 다리 뿐 아니라 두 팔도 펴고 눈도 크게 떠 복원력을 키운다. 바로 서는 능력은 인간의 종합적인 균형감각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육체의 균형감각 못지않게 정신적인 균형감각 또한 중요하다. 사물을 보는 눈이나 사회생활에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현상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결정된다. 균형 잡힌 시각의 중요성은 특히 분단이라는 현실을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인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부분이다. 남과 북,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중앙과 지방, 영남과 호남의 지역 간, 세대 간의 갈등 문제 등 나열하면 나열할수록 복잡해진다. 이 같은 갈등에 대해 원로 언론인이었던 리영희 선생은 새들에 비유해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인간의 직립에 균형 감각이 필요하듯, 모든 사물도 자기 자리가 있어 본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경향이 있다. 가령 쇠 절구통 가장자리의 불안한 쇠구슬은 손을 떠나자마자 일정한 왕복활동을 통해 비로소 절구통 바닥 중앙에 편안하게 멈춘다. 절구통 바닥 한가운데가 자기 자리인 것이다. 이처럼 모든 사물이 원래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는 평상심을 이퀄리브리움(equilibrium)이라고 한다. 또 인간의 신체도 외부 환경에 일정한 자극을 받을 경우 내부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바깥 날씨가 추우지면 몸을 움츠리고 핏줄을 수축시켜 대사량을 증진시킨다든지, 날씨가 더우면 땀구멍을 열어 땀을 흘림으로써 체온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호메오스타시스(homeostasis), 즉 항상성이라고 한다.

이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정상적인 현상, 잘못된 부분이 부른 비극을 온 국민이 생생하게 지켜보게 됐다. 그것은 집단적인 정신적 외상(트라우마)을 입혔고 오래 상처를 남겼다. 트라우마는 결코 치료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견딜 만큼 무뎌질 뿐이라지만, 인체의 균형 감각이 되살아나 원래 자리로 돌아가려는 평형심이 발동하듯 우리 국민에게 성찰의 힘이 생기게 했다. 이 과정에서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한 원인 행위들이 철저하게 파헤쳐지고 가려져 다시는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항상성의 원리가 작동돼야 함도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