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부는 평화 훈풍, "다시 만납시다" 남북 정상회담 성공리 마무리

[정상회담 스케치 결산] 정상회담 12시간 만에 종료…文·金 아쉬움 뒤로 하고 올가을 기약 / 정인혜 기자

2018-04-28     취재기자 정인혜

11년을 돌고 돌아 남북 정상이 평화 협상 테이블에서 마주 앉았다. 연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를 가로막고 있던 얼음의 벽은 눈 녹듯이 허물어졌다. ‘판문점 선언문’을 발표한 두 정상은 올가을 북한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움을 뒤로하고 헤어졌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7일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의 정상이 만난 것은 11년 만의 일이다. 두 정상의 손을 맞잡는 순간 숨죽여 TV를 지켜보던 시민들의 입에서는 탄성과 박수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날 부산역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서 정상회담 생중계를 지켜봤던 김창용(70) 씨는 “문 대통령과 김정은이 손을 잡는데 괜스레 뭉클해서 눈물이 다 나더라”라며 “지난 대선에서 문 대통령을 뽑진 않았지만, 이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본다. 앞으로 더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두 정상의 만남은 ‘파격’이라는 단어로 요약된다. 두 정상은 양측을 배려하는 정중한 분위기 속에서도 연신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검정색 인민복 차림의 김 위원장은 군사분계선부터 경호원 없이 혼자 문 대통령을 향해 걸어왔고, 문 대통령은 그를 환한 미소로 맞았다.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북측 최고지도자가 남쪽 땅을 밟은 것이다.

이어 이번 만남의 ‘하이라이트’ 장면이 나왔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깜짝 ‘방북’을 제안했고,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갔다. “나는 언제쯤 (북측으로) 넘어갈 수 있겠느냐”는 문 대통령의 말에 김 위원장이 “지금 넘어가 보자”며 문 대통령의 손을 이끈 것이다. 서로가 마음먹기에 따라 군사분계선이 아무런 의미 없는 ‘선’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전통의장대의 호위 속에 양측 공식 수행원들과 인사를 나눈 두 정상은 정상회담이 열리는 평화의 집으로 이동했다. 건물에 들어선 김 위원장은 1층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새로운 역사는 이제부터. 평화의 시대, 역사의 출발점에서"라는 방명록을 작성했다.

이후 두 정상은 본격적인 정상회담에 돌입했다. 회담장에 걸려 있던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를 마주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김 위원장이 모두발언에 나섰다. “이 자리까지 11년이 걸렸는데 걸어오면서 보니까 왜 그 시간이 오래됐나, 왜 오기 힘들었나 생각이 들었다”고 말문을 연 김 위원장은 “미래를 내다보며 지향성 있게 손잡고 걸어 나가는 계기가 돼서 기대하신 분들 기대에도 부응하자”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발언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문 대통령이 “우리 김 위원장이 사상 최초로 군사분계선 넘어오는 순간 이 판문점은 분단의 상징 아니라 평화의 상징이 됐다”며 “오늘 하루 종일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는 만큼 그동안 10년 동안 못한 거 충분히 나누자”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말에 김 위원장도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옆에 앉은 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제1부부장은 문 대통령이 앉은 오른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문 대통령의 말을 경청했다.

첫 번째 정상회담을 마친 뒤 별도의 오찬을 가진 두 정상은 오후에 다시 만나 판문점에 소나무를 심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산 소나무에는 남북의 냉전을 허물고 평화의 새 시대를 열자는 의미가 담겼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함께 삽을 잡고 흙을 떴으며, 대동강·한강에서 길어온 물을 뿌렸다. 남북의 화합과 평화를 기원한 퍼포먼스로 보인다.

이후 남북 정상은 배석자 없이 군사분계선 표식물이 있는 ‘도보다리’까지 친교 산책을 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산책하던 두 정상은 도보다리 끝부분에 마련된 의자에 마주 보고 앉아 30분간 진지한 대화를 이어나갔다.

산책 후 다시 정상회담에 들어간 두 정상은 이어 ‘한반도 비핵화’를 명문화한 판문점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김 위원장에게 세계 언론 공식 데뷔 무대가 됐다. 북측 최고지도자가 전 세계 언론 앞에서 직접 합의문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정상은 선언문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연내 종전선언과 함께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비핵화 완전 타결의 초석을 마련한 셈이다. 판문점 선언 발표 후에는 양 정상이 서로 포옹하는 역사적인 장면도 연출됐다.

사상 첫 남북 부부동반 만남도 이날 성사됐다. 판문점 선언 후 이어진 공식 만찬에는 김정숙 여사와 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김 여사는 하늘색 코트를, 리 여사는 분홍빛 투피스 차림에 검은색 클러치를 들고 만찬장을 찾았다. 먼저 도착한 김 여사는 평화의집 현관에서 특유의 밝은 미소로 리 여사를 맞았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평화의집으로 함께 들어갔고,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던 두 정상과 만나 각각 서로의 배우자와 악수했다.

두 부부의 만남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문 대통령은 리 여사에게 자신과 김 위원장을 ‘우리’라고 표현하며 “우리는 하루 사이에 아주 친분을 많이 쌓았다”고 말했고, 리 여사는 “남편께서 ‘문 대통령님과 진실하고 좋은 얘기도 많이 나누고 회담도 잘됐다’고 하셔서 정말 기뻤다”고 화답했다.

김 여사와 김 위원장의 대화도 흐뭇함을 자아냈다. “다리를 건너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평화롭던지”라는 김 여사의 말에 김 위원장은 “벌써 (방송이) 나왔습니까”라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어 김 여사가 “오면서 봤다. 무슨 말씀을 하는지 가슴을 두근두근 하면서 (봤다)”고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하자, 김 위원장은 “우리 둘이서 카메라 피해 멀리 갔는데 다 나왔구먼요”라고 멋쩍게 말했다. 미소로 지켜보던 문 대통령은 “아주 진한 우정을 나눴다”고 한마디 거들었다.

환영 만찬을 주재한 문 대통령은 건배사로 분위기를 띄웠다.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날을 위하여!”라는 문 대통령의 건배사와 함께 남북은 북측에서 준비한 평양냉면, 문 대통령이 유년을 보낸 부산의 음식인 달고기 구이와 김 위원장이 유년시절 즐겼던 스위스 풍의 감자전을 먹었다. 남북 예술단은 남측 대표 국악기인 해금과 북측 대표 악기인 옥류금을 이용해 <반갑습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을 연주했다.

특히 제주도 출신 초등학생 오연준 군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부를 때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극에 달했다. 남북 정상 부부는 내내 웃음을 머금고 박수로 오 군을 격려했다. 사회자의 “언제부터 제주에 살았느냐”는 질문에 오 군이 “태어날 때부터요”라고 대답하자, 김여정 부부장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박장대소했다.

마지막으로 열린 환송행사에서 남북은 ‘하나의 봄’이라는 주제를 담은 영상을 함께 감상했다. 피아노 연주와 함께 평화의집 외벽 전면에는 한반도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표현한 영상이 상영됐다. 국악과 오케스트라가 접목된 <아리랑>과 사물놀이가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손을 꼭 맞잡고 영상을 관람했다.

환송행사를 마친 뒤 문 대통령 부부는 김 위원장 부부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두 정상은 올 가을에 북한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악수를 나눴고, 김 여사와 리 여사는 포옹했다. 김 위원장은 북측으로 향하는 차에 올라타서도 문 대통령 부부를 향해 계속 손을 흔들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아쉬운 작별 인사를 끝으로 12시간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이 끝났다. 이제 과제는 이날 이끌어낸 공동 선언문을 어떻게 실현하는지에 있다. 이번 정상회담이 65년간 이어진 정전을 종식하고 평화체계를 구축하는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의 한반도 정세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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