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며 갖는 노파심..."여야가 잘 협조해서 조국의 통일과 미래를 잘 밝혔으면" / 장원호

[제3부] 삶의 뜻을 생각하는 은퇴인

2018-05-06     미주리대 명예교수 장원호 박사

2017년 10월의 서울 체류 기간 동안 박근혜 전 대통령 재판 등의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배경과 민주화 운동세력의 정체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한국 정치에 밝지 못한 나는 이번 서울에서 제법 긴 나날을 보내면서 한국의 정치 변화와 이에 따른 한국의 미래를 곰곰 생각해 봤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막내 아들의 장인인 이삼열 박사가 자신의 저서인 <현실개조를 향한 사회철학의 모색>을 선물로 주어서 틈틈히 이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문재인 대통령 당선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박사의 책을 통해 민주화 운동그룹의 사회철학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다. 사회 정의를 주장하는 그들의 사회 철학적 배경이 무엇인가도 조금 알 만해졌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그룹은, 이 책에서 지적한 것처럼, 현실개조를 위한 사회철학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투쟁을 계속해왔으며, 그동안 법조계,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 등에 참여하면서 세력을 키워 왔고, 이번 촛불집회로 그 역량을 모아서 마침내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이런 현실을 알지 못했거나 인정하지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집권 정당은 민주화 운동 그룹의 투쟁 대상인 대기업과 결탁한 부정부패 집단으로 몰렸으며, 이런 사회 변화를 의식하지 못한 대한 죄과를 단단히 치르고 있는 것 같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한국의 경제발전을 이룩하고 한국을 오늘의 경제대국으로 견인하는데 많이 기여했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의 뛰어난 리더쉽과 위대한 업적은 후일 역사가 인정할 것이다. 당시 박 대통령의 경제 철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서 공산주의 통제경제에 대응하기 위해 시장경제에 국가통제 기능을 부분적으로 믹스시킨 수정자본주의 중 시장통제식 자본주의를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수차에 걸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폐허가 된 조국을 일으켜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독일을 방문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에르하르트 독일 수상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대화를 들었다고 한다. “고속도로를 건설하세요. 그 위를 달릴 자동차 산업을 키우세요. 자동차 산업은 수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많은 세금을 걷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철이 필요합니다. 제철소를 건설하세요. 에너지 수급을 위해 석유 화학 공장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제품을 실어 나를 무역 선박이 필요하니 조선소를 설립할 것을 권유합니다.”

박 대통령은 고속도로를 건설했고, 이 밖에도 중화학 공업을 육성했으며, 제철소와  조선소를 지었다. 그 결과, 오늘의 한국경제는 눈부신 도약을 이뤘고, 전후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변한 세계 유일 국가의 위상을 자랑한다. 한국의 세계 10위권 경제역량은 거의 전적으로 당시 박정희 식 계획경제의 성과였다. 오늘날 수출을 주도하는 자동차, 제철, 석유화학, 조선 모두 세계 정상권이고, 반도체 역시 값싼 에너지에 기반을 둔 발명 역량의 결실이다.

문제는 보수 정당들이 과거 경제 성과에 심취해서 경제 발전의 부작용과 우리 사회의 새로운 문제점들에 대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편, 민주화 운동권 세력은 지속적인 사회개조 사회 철학을 꾸준히 추구해서 노무현 정부에 이어 다시 문제인 정부까지 출범시켰지만, 경제적 발전 성과 자체를 폄하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거부하며, 과거 지우기에만 몰두하는 듯하니 이것도 걱정이다. 

미국대사관 앞을 지나다가, 나는 미국 대통령이 북한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섬뜩한 트럼프 풍자 플랜카드를 들고서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게 됐다. 세월호 사고가 지난 지 수년이 지나났는데도 광화문 네거리에 천막을 치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광화문 미 대사관 옆 한국통신 앞이나 광화문 근처에는 노동 조합이 촛불시위의 댓가를 요구하는 모습도 보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자기 주장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과거 정권의 공과를 이성적으로 비판하면 그 무슨 문제가 될까. 그러나 광화문, 시청 주변의 세력들은 그 주장과 방법이 민주적이거나 이성적인 것 같지 않다. 주장의 합리성은 과격한 겉모습에 뭍여 버렸다.  

진정한 애국심이 무엇인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물어 보고 싶다. 공무원 지원자들에게 애국심이 무어냐고 물으니 단 한 사람도 신념에 찬 대답을 못하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요즘 한국의 개인이나 이익집단은 자신들의 이익보다는 나라를 위하여 노력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이런 젊은이들의 풍조는 한국뿐만이 아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자국에 대한 애국심이란 큰 뜻이 없다. 정치적 주장도 나라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것이다. 6.25를 중학교 때 겪고 4.19와 5.16 등 현대사의 중요 사건을 대학생 때 경험한 우리 세대는 나라의 소중함을 안다. 덕수궁 앞에는 애국심으로 북침으로부터 조국을 지키자는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거기에는 6.25 전쟁을 겪은 노인네들이 모여있었고, 젊은이들은 남 일처럼 피하며 지나 간다. 그곳의 노인들과 젊은이들은 우리나라 현주소를 대조적으로 상징하고 있다. 

우리나라 아름다운 산과 들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나무가 많다. 이들 소나무들을 자세히 보면, 옛날 토종 소나무는 별로 없고 병충에 강한 해송계통의 개량종이 대부분이다. 소나무마저도 그렇듯이 강산이 변했다. 산천도 변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욱 많이 변했다.

내가 머물고 있는 서울 방배동에는 골목마다 독일차가 꽉 들어차 있다. 서울 거리에는 독일차를 생산하는 독일보다도 독일차가 더 많이 굴러 다닌다. 시골 어느 지역을 가도 참혹하게 가난했던 옛날의 표정은 없다. 도시의 구석구석에 자리 잡은 식당에는 항상 사람들도 꽉 차 있다. 대한민국은 참 풍요로운 나라가 됐다.

6 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땅에서 이런 기적을 본다는 것은 내 나이 또래 세대에게는 참 감격적이다. 나는 일본이 만주를 침략하던 해에 태어나서 일본이 패망한 세계 2차대전을 겪었고 김일성의 무모한 남침을 목격했다. 내가 우리나라의 미래를 지금 걱정한다면 지나친 노파심일까? 서울 시청 구 청사위에 걸린 포스터를 보면서 내 생애가 저물어 가는게 아니라 여물어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편집자주: 이번 주 연재를 끝으로 '장원호의 50달러 미국 유학' 연재를 마칩니다. 저자는 어려운 미국 유학 시절을 거쳐 저널리즘 분야의 학계와 업계에 후학을 양성하여 전 세계로 배출했고, 지금도 여전히 미국에 체류하고 계십니다. 한국 나이 81세인 장원호 박사는 그 동안 '장원호의 50달러 미국 유학' 연재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을 전해 오셨습니다. 시빅뉴스는 장원호 박사님의 만수무강을 빌며,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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