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신고 유도” 검찰, 성범죄 수사 종결 때까지 피해자 겨냥 ‘무고’ 수사 중단

성희롱·성범죄 대책위 "가해자들 법 악용, 무고나 사실적시 명예훼손 고소 예사" / 신예진 기자

2018-05-28     취재기자 신예진

검찰이 성범죄 피해 조사 때 우선순위를 두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성범죄 피해자들이 명예 훼손이나 무고 등으로 고소당하더라도 성범죄 사건에 대한 수사가 종결돼야 무고 혐의에 대한 수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법무부와 대검찰청은 ‘성폭력 수사 매뉴얼’을 새롭게 개정했다고 28일 밝혔다. 개정된 매뉴얼은 전국 59개 검찰청 여성아동범죄 조사부 등에 배포했다. 이는 성폭력 범죄 피해자들이 보다 안전하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신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에 따라, 성폭력 수사에서 크게 두 가지가 바뀐다. 먼저, 대검 형사부는 앞으로 성폭력 고소사건과 관련한 무고혐의 수사 때 성폭력 여부를 명확히 판단할 수 있을 때까지 수사를 중단하기로 했다. 피해자들의 역고소에 대한 피해자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함이다.

대검은 또, 성폭력 피해사실 공개로 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사건에 대해 ‘위법성 조각사유’(형법 310조) 적용을 검토하기로 했다.

형법 제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형법 제310조는 "제307조 1항의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현재 ‘미투’와 같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대중에게 폭로하면 위법으로 평가될 소지가 있다. 대검은 성폭력 피해사실 공개는 공익의 일부분으로 보고, 피해자들이 가해자들로부터 소송을 당하는 현실을 막겠다는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한다. 경찰 대상 교육훈련 자료와 가이드라인 등을 개발하는 기관인 국제경찰장협회(IACP,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Chief Police)가 제시하는 무고 기소 여건에도 나타나 있다.

협회는 ▲경찰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하고도 완벽한 수사 완료, ▲수사 결과 성폭력이 애초부터 발생하지 않았고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는 물리적 증가 제시, ▲피해자 수사 과정에서 피해자의 행동, 반응에 의존해 무고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무고 기소 여건으로 정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 11일 성희롱·성범죄 대책위원회의 '성폭력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 피해 방지' 관련 권고에 따랐다. 대책위원회는 “전국적인 미투 운동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을 용기있게 말하기 시작했다”면서도 “가해자들이 법을 악용해 자신을 무고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경우 그 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고 신고를 주저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EDAW) 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성폭력에 대한 안이한 대응으로 질타를 받았다. 당시 루스 핼퍼린 카다리 부의장은 “한국에서 성폭력 피해자들을 무고죄로 고소하거나 이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거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는 모든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대검의 새로운 매뉴얼에 여론은 극과 극을 달린다. 성폭력 폭로 후 따라오는 악의적 평판과 역고소의 우려를 막을 수 있다는 찬성론과 무고죄의 의심을 놓을 수 없다는 반대론이 엇갈린다.

직장인 박모(32) 씨는 “미투 논란이 확산되면서 일명 ‘꽃뱀’을 운운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며 “무고죄, 꽃뱀을 들먹이다 보면 누군가는 미투를 하고 싶어도 구석에 숨어 용기가 없어 속앓이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외국에서는 이미 채택한 규정을 우리나라는 이제야 적용하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앞으로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어 긍정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반면, 네티즌 A 씨는 “남자는 고소만 당해도 신상이 다 까발려지고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회적으로 매장을 당한다”며 “옷깃만 스쳐도 성추행범, 합의 하에 관계하고 나중에 협박해서 돈 뜯어내려고 하는 모함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무고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는 글이 올라와 있다. 청원자는 “무고죄가 가볍다는 것을 알고 미투 운동을 악용하는 일부 사람들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 주시길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 청원에는 25일부터 3일 동안 약 11만 명이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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