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길 안전 위협하는 만취승객의 기내 난동...솜방망이 대응이 행패 부추겨
처벌 규정 강화됐다지만 외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기내 음주를 불법으로 규정해야" 목소리도 / 정인혜 기자
2018-05-29 취재기자 정인혜
#1. 지난해 8월 21일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베트남 하노이국제공항으로 향하던 이스타항공 기내. 승객 A 씨는 기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웠다. 이를 발견한 승무원 B 씨가 제지했으나, A 씨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승무원 B 씨는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내들었고, 화가 난 A 씨는 급기야 B 씨의 배를 발로 걷어찼다. A 씨는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다른 승객들의 눈총과 승무원의 계속되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A 씨는 왜 담배를 놓지 못했을까. 정확한 이유는 A 씨만 알고 있겠지만, 사건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들은 그가 당시 ‘만취’ 상태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술 때문에 이성을 잃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2. 지난 2016년 4월 부산 김해공항에서 괌으로 향하는 대한항공 여객기 안에서 승객 C 씨가 담배를 피웠다. 그는 A 씨와 마찬가지로 제지하는 승무원에게 폭언을 퍼붓고 사무장의 멱살을 잡는 등 난동을 부린 혐의로 미 사법당국에 기소됐다. 당시 그도 역시 만취 상태였다.
여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게 항공편이지만 기내 만취 승객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기내 난동 등 불법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이 강화됐지만 만취 승객들의 민폐는 현재진행형이다.
국토교통부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기내에서 발생한 난동 폭력 중 ‘음주 후 위해 행위’가 총 41건으로 집계됐다. 큰 사고로 이어지기 전에 제압되는 소란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사건은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기내 음주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다른 승객에게 위해가 될 가능성을 전면 차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해외 출장이 잦은 직장인 김모(55, 충남 천안시) 씨는 “만취 상태로 비행기 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무슨 사고가 생기는 게 아닌가’ 싶어 괜히 무섭다. 유독 한국 사람들이 기내 음주에 무덤덤한 것 같다”며 “아무리 승무원들이 제지한다고 하지만, 술 먹은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떻게 아나. 아예 불법으로 규정하고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내 음주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국내 항공사에서는 주류 판매 횟수에 제한을 두고 있을 뿐, 이를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항공사별 규정은 천차만별이다.
주류 서비스가 무료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은 기내 주류 서비스 횟수를 승객 1인당 맥주 3캔으로 제한한다. 제주항공은 1인당 맥주 3캔, 소주 1팩까지만 판매하고 있다. 진에어는 맥주 3캔, 와인 3잔까지, 이스타항공은 승객 1인당 맥주 3캔 이하로 판매를 제한한다. 에어부산과 티웨이항공, 에어서울은 별도의 주류서비스 제한 규정이 없지만, 승객 상태에 따라 주류 판매를 금지한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정은 모두 ‘승무원의 재량’에 달렸다. 항공사별 규정이 '유명무실'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 승무원들은 승객들의 음주를 강력하게 제지하는 것이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입사 4년차 스튜어디스 김모(30) 씨는 “승객 상태에 따라서 주류를 제공하는데, 계속해서 요구하거나 취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며 “항공 안전을 해치는 불법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장에서는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다. 기내 난동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아 난동 승객에게 경각심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항공보안법에 따르면, 운항 중 소란행위 또는 음주 후 위해행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다. 승객이나 승무원을 폭행하는 경우에는 최대 징역 5년형에 처해진다.
반면 미국에서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리거나 승무원 업무를 방해한 승객에게 최대 징역 20년과 벌금 25만 달러(한화 2억 7000만 원)를 부과한다. 중국에서는 기내에서 난동을 부린 승객의 경우 다음번 출국에 불이익을 주거나, 은행대출을 금지하는 법안도 마련돼 있다.
대형 항공사 관계자는 “처벌규정이 강화됐지만, 아직도 다른 나라에 비해 국내 처벌 강도가 많이 약한 게 사실”이라며 “적발된 경우 형을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기내 음주 행패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