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ㅂㅂㅂㄱ', 'ㄴㅈ', 'ㅇㅂ'이 뭔지 아시나요?

SNS '초성 은어' 대유행...젊은이들 일상 생활까지 파고들어

2014-11-04     취재기자 손병준
인터넷 보급과 더불어 인터넷 은어가 만연한 지 꽤 오래됐다. 최근 인터넷 은어는 진화를 계속해서 새로운 형태의 은어가 거의 날마다 출현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얼짱, 냉무(메일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다는 뜻) 등의 줄임말 형태의 은어가 주로 쓰였다. 최근 대학생 김모(22) 씨는 한 인터넷 게시물에 달린 댓글 중에서 ‘ㅇㄱㄹㅇ’이란 은어가 계속 쓰이는 것을 발견했다. ㅇㄱㄹㅇ의 의미를 몰라 검색해보니, ‘이게 리얼’의 줄임말이었다. 이는 ‘이게 사실이다, 이게 맞다’는 뜻이었다. ㅇㄱㄹㅇ와 비슷한 의미로 ‘사실이다’를 줄여 ‘ㄹㅇ’이라고 쓰기도 한다. ㄹㅇ은 그 원어를 알기가 참 어렵다. 그 외에도 ‘인정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ㅇㅈ’도 있다. 이들은 모두 한글의 초성을 이용한 인터넷 은어들이란 특징이 있다.

과거에 초성을 이용한 은어로는 ㄱㅅ(감사), ㅎㅇ(하이) 등으로 단순한 단어나 첫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현재 만들어지고 있는 초성 은어들은 복잡하고 구체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데까지 확장됐다는 특징이 있다. 그 예로는 ㅅㅌㅊ(상타치: 평균 이상이란 의미), ㅎㅌㅊ(하타치: 평균 이하라는 의미), ㅂㅂㅂㄱ(반박불가)와 같은 것들이 있고,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ㅈㄱㄴ(제목이 곧 내용), ㄴㅈ(노잼: 재미가 없다는 의미), ㅇㅂ(일베: 보수 인터넷 사이트 일간 베스트의 약자), ㄹㅇㅍㅌ(리얼팩트), ㄱㄴㅇ(가나요: 어디 가느냐는 의미), ㅅㅈㅅㄹ(성지순례: 과거에 한 말이 미래에 적중되었을 때 적는 일종의 감탄사) 등을 들 수 있다.

초성 은어들은 위와 같은 의미만 알면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처음 이런 초성 은어를 본 사람들은 그 의미를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인터넷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런 종류의 인터넷 은어를 해석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리고 인터넷 초성 은어들은 날마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커뮤니티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으면 그 유행을 놓쳐 따라가기 어렵다. 서울에 사는 대학생 임모(26) 씨는 취직 때문에 한동안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인터넷에 처음 보는 초성 은어들이 많이 등장해서 이해가 불가능했다. 생각다 못해 임 씨는 이를 정리해서 블로그에 올렸다. 임 씨는 “인터넷 은어를 모르니 내가 인터넷 세대가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점차 대학을 벗어나는 내 주변 사람들도 인터넷 은어들을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최신 은어를 블로그에 올렸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유행하던 줄임말 형태의 은어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 ‘볼매’는 ‘볼수록 매력’이란 뜻이고, ‘게이’는 남성동성애자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고 ‘게시판 이용자’들을 줄여 지칭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관종(관심종자: 부정적인 행동을 해서 남의 관심을 끌려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 여병추(‘여기 병신 하나 추가요’라는 욕의 줄임말), 근자감(근거없는 자신감) 등이 있다. 또한, 오타 나는 경우를 일부러 은어화해서 사용해온 오나전(완전)과 같은 유형의 은어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윾재??rsquo;은 개그맨 ‘유재석’을 가리키는데, 이는 유재석을 치다가 오타 나는 경우를 이용한 은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인터넷에 친숙한 젊은 세대라도 인터넷에 나도는 모든 은어를 다 알지 못한다. 부산 기장군에 사는 고등학생 박모(18) 양은 “과거에는 인터넷에서 처음 보는 은어들이라 하더라도 맥락에 맞춰 이해했는데, 요즘 은어들은 암호 해독해야 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일부 10대와 20대들이 이러한 인터넷 은어를 인터넷이 아닌 현실 대화에서 사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부산 해운대에서 6학년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 강모(52) 씨는 최근 초등학생들끼리 일부러 초성만으로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 씨에 따르면, 한 아이가 “감사”라고 말하지 않고 “기역시옷(ㄱㅅ)” 이라고 말하자, 다른 아이가 “알았어”라고 하지 않고, “이응(ㅇ)”이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강의하는 박모(43) 씨는 인터넷 은어에 대해서 “간편하고 빠르게 쓰이는 장점이 있지만, 편리성에 너무 치중하다보니 아는 사람들끼리만 의미가 통한다는 단점이 생긴 것 같다”며 “인터넷 특성상 한 커뮤니티에서 쓰이는 속어가 다른 곳으로 빠르게 확산된다는 점에서 인터넷 속어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이며, 이러한 흐름에 가담하지 않는다면 속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