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른 감천문화마을...닥밭골 벽화마을 아시나요?
부산 동대신동 산복도로에 위치...벽화골목 6곳에 다채로운 벽화 즐비, 닥공예전시장도 / 이선주 기자
2019-06-22 취재기자 이선주
여중생들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가득한 부산 서구 동대신2가의 산복도로. 그 곳을 오르다 보면 형형색색의 마을이 하나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오르막길에서 중턱을 넘어가다 보면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알려주는 듯 벽을 가득 메운 벽화와 닥밭골 행복마을이라고 적힌 가로등을 볼 수 있다.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인 망양로 아래에 위치한 마을, 바로 숨겨진 벽화마을 닥밭골이다.
그렇다면 닥밭골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 곳의 원래 지명은 고분도리였다. 신라말기에 왕실 호위무사를 지냈던 신라인 춘보(春甫)는 오래 전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라조정에 관직을 내려놓고 은둔하기 위해 해운대에서 지리산 쌍계사로 가던 도중, 마을 뒷산에 숲을 이루고 있는 닥나무에 반해 이곳에서 며칠간 머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닥나무들이 닥종이 원료로 매우 적합하다는 선생의 말도 들은 적 있는 춘보는, 제2의 고향으로 삼기로 한 이 마을의 융성을 위해 닥종이를 생산해야 한다고 마을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 후 이곳에서 만들어진 닥종이는 한때 유배지였던 마을을 외지인들이 부러워하는 부자마을로 탈바꿈시켰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고분도리를 닥밭골이라 불렀다.
그래서 이곳에선 닥나무를 그린 벽화도 만날 수 있으며 닥공예 전시장이 자리해 닥나무로 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알 수 있다. 이외에 닥밭골 북카페, 마을정원, 문화나눔터 등으로 문화마을의 역할도 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 다가가면서 볼 수 있는 벽화는 맥주병, 소주병 등을 활용한 유리공예 벽화다. 소주병을 납작하게 만들어 동그랗게 붙인 모습은 한 그루의 나무를 연상케한다. 사랑해, 괜찮아 등 긍정적인 말을 적어두어 입구에서부터 행복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맞은편에 자리 잡은 거울벽화도 나무처럼 보인다.
조금 더 걸어가면 입구를 찾을 수 있다. 마을은 총 6개의 벽화골목으로 이루어져있다. 좁은 골목들로 이루어져있고 산복도로라 오르막길이 대부분이다. 벽화골목1은 작은 액자들이 가득한 골목이다. 벽화골목2는 옛마을의 정서를 엿볼 수 있다. 옛날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그린 벽화와 커다란 하트들이 그려진 벽화 등 좁은 벽을 채운 골목이다. 벽화골목3은 넓은 벽을 가득 채울만큼 큰 벽화가 가득하다. 바닥에 돌멩이를 깔아 만든 작은 쉼터도 있다. 벽화골목4는 낮은 벽이 많아 벽화와 함께 경치를 즐길 수 있다. 벽화골목5는 벽 하나를 가득 메운 할머니들의 초상화가 눈에 뛴다. 마지막으로 벽화골목6은 새파란 계단이 쭉 이어진다. 이 계단을 다 오르면 닥밭골에서 가장 유명한 소망계단이 자리 잡고 있다.
소망계단은 192개의 계단으로 이루어져있다. 계단 수가 많아 오르내릴 때마다 몇 개인지 잊어버린다 해서 아코디언 계단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오르내리며 소원을 빌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해서 소망계단이라고도 불린다. 원래는 소원을 비는 동자바위가 있었는데, 54년 전 산복도로가 생긴 뒤 산을 허무는 공사를 하다가 동자바위가 흙더미에 묻혀 버렸다고 한다. 그 때부터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기도하게 되었다고 한다. 계단에 그려진 여러 가지 꽃들의 꽃말을 적어둔 팻말을 읽으며 계단을 한 칸씩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마을 입구를 둘러싸고 있는 짱구 벽화골목과 우물을 볼 수 있는 그린테마공원 등 볼거리가 많다. 작은 마을이지만 상당한 수준의 벽화와 조형물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과 다양한 벽화들로 인해 <런닝맨>, <한끼줍쇼> 등 유명 방송 프로그램에도 등장한 적이 있다.
닥밭골 행복마을이 탄생하게 된 배경은 낙후된 9통지역을 정감어린 동화 속의 아름다운 마을로 조성하고자 하는 주민들의 마음에서 시작됐다. 2009년부터 국비(희망근로사업)를 지원받으면서 본격적인 도시미관 개선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2010년 미술작가 구본호 씨의 주도로 주민들과 희망근로자, 자원봉사자가 참여해 벽화를 그렸다. 구본호 작가와 부산시민들의 노력으로 마을 전체가 아름다운 벽화마을이 됐다.
매년 10~11월 닥밭골 행복마을 골목축제가 개최되고 있다. 이 축제는 1953년 마을 대화재 이후, 화마가 일어나지 않길 기원하던 마을 당산제를 지역축제로 만든 것이다. 그외에 2016년에는 동대신동 일원에서 루미나리에 및 LED 조형물을 설치한 닥밭골 빛축제가 개최됐다.
닥밭골에 살고 있는 석현정(22) 씨는 “나처럼 젊은 친구들이 많이 찾았으면 한다. 다른 지역에서 놀러온 친구들에게 보여주면 사진도 많이 찍고 만족스러워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찾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 아쉽다”고 말했다. 주말을 맞이해 벽화마을을 찾은 손승희(22, 부산 서구 암남동) 씨는 “내가 사는 서구에 있는 벽화마을인데도 있는지 몰랐다. 처음 왔는데 생각보다 아기자기하고 작은 마을이지만 잘 꾸며져 있는 것 같다. 날씨 좋은 주말인데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별로 없어 사진을 찍기 좋았다. 하지만 이런 벽화마을을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닥밭골벽화마을은 감천문화마을보다 먼저 조성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정보를 알아보고 온 사람들만 구경하는 마을이 되었다. 한 시간이면 충분히 구경할 수 있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벽화마을이다. 따뜻한 글귀, 소박한 그림들이 가득해 친구, 연인끼리 오기 좋은 여행 장소다. 숨겨진 작은 벽화마을 닥밭골을 많은 사람들이 찾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