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투우...문화냐 동물학대냐, 그것이 문제로다
대형 원형경기장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성난 소 한 마리와 그 소를 바라보는 한 사람 사이에 극적인 긴장감이 흐른다. 그 남자의 손에는 긴 검과 ‘무레타’라고 불리는 빨간색 판초가 쥐어져 있다. 소는 자신의 등에서 흐르는 피와 똑같은 붉은 무레타를 보고 다시 흥분하여 달려든다. 남자는 소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다가, 소가 지치기 시작할 때, 번쩍이는 칼을 치켜든다. 경기장에는 침 넘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다. 그 순간, 남자의 긴 칼은 소의 등을 정확하게 관통한다. 수도꼭지를 틀은 것 마냥, 소의 입과 코에서 피가 쏟아지고, 사람들은 숨죽였던 침묵을 깨고 열광한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투우 경기 모습이다. 영어로 ‘bull figthing,’ 스페인어로는 ‘토로스(toros)’라 부르는 투우는 사람이 사나운 소를 상대로 싸우는 일종의 오락이며 스포츠다. 투우는 17세기 말까지 귀족들 사이에서만 성행했다가, 18세기에 이르러 현재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즐기게 됐다고 한다.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 투우는 매년 봄 부활절 일요일부터 콜럼버스의 날(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날을 기념한 날)인 10월 12일까지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세비야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는 마뉴엘(Manuel, 22) 씨는 1년에 두세 번씩은 꼭 투우를 챙겨본다. 그는 투우사는 스페인에서 가장 인기 있고 존경받는 직업 중 하나라는 사실을 힘주어 말해주었다.
하지만 투우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500-700kg에 육박하고 성질까지 포악한 투우에 쓰이는 소는 조그마한 반응에도 매우 흥분한다. 사람이 홀로 맞서기에는 무리가 있다. 투우 경기 중 마무리를 담당하는 투우사를 ‘마타도르’라 하는데, 투우가 대중들에게 알려진 1700년대 이후로 많은 마타도르들이 소에 의해 운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만큼 마타도르는 영광과 함께 생명의 위험을 무릅 쓴 직업인 셈이다.
코르도바에 거주하는 대학생 나초(Nacho, 23) 씨는 소를 잔인하게 죽이는 투우가 왜 스포츠나 예술로 불리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는 “스포츠는 인간 사이의 경쟁이 있어야 하는데, 투우는 소를 일방적으로 인간이 괴롭히는 것에 불과하고, 예술이라 표현하기에는 너무 잔인하다”고 말했다.
또한 나초 씨는 투우를 즐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투우는 결국 소가 죽어야 끝나는 경기다. 만약, 마타도르가 소의 급소를 찌르지 못해 경기가 단숨에 끝내지 못하고 소가 계속 저항하는 경우에는 사람들의 야유가 쏟아진다. 실제로 기자가 투우 경기를 관전했을 때도, 마타도르가 대 여섯 번의 시도 끝에서야 비로소 소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소가 쓰러졌는데도 불구하고, 야유가 경기장 안을 가득 매웠다. 이런 모습이 나초 씨 같은 사람들에게 투우가 인간 잔인함의 상징처럼 보일 수 있을 듯했다.
스페인 정부도 투우를 놓고 갑론을박 중이다. 스페인 정부는 2010년부터 투우를 특별한 문화유산으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서 2013년에 국내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에 맞서, 카탈루냐 주는 투우가 동물 학대라는 이유로 투우를 전면 금지시키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카탈루냐 주에 속하는 바르셀로나는 2004년부터 ‘안티 투우 도시’를 선언하는 등 현재까지도 스페인 전체를 향해 투우 금지 운동을 벌이고 있다. 얼마 전 스페인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앞에서 투우에 반대하는 150여 명의 동물 보호단체 회원들이 몸에 핏빛 물감을 바르고 누드로 땅바닥에 누워있는 행위 예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 모습은 국내 언론을 통해 사진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영향 때문에 근래에는 투우를 찾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마뉴엘 씨는 10년 전만 해도 투우가 하나의 문화로 인정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요즘은 투우를 좋아한다고 하면 카탈로냐 등 북부지방 사람들이나 동물애호가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고 요즘 스페인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남부지역은 여전히 투우를 전통적 문화로 여기며 보존하려 애쓰고 있다. 투우의 발생지로 알려진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주의 론다 시는 투우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 중 하나이다. 스페인 현지에서 만난 한국 여행객 김모(31) 씨는 스페인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투우와 플라멩고 춤인데, 시즌이 아니라 투우를 보지 못해 울상을 지었다. 그는 “투우가 전면 금지되기 전에는 꼭 한 번 경기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스페인 속담에 “투우에 대해 말하는 것과 투우용 소 앞에 서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라는 말이 있다. 투우가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진짜 투우용 소 앞에 서봐야 한다는 얘기다. 소 앞에 서서 소와 싸우는 투우사들을 칭송하는 이 속담처럼, 어쩌면 투우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통 문화를 고수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투우를 여전히 동물학대라 여기는 단체와 그것을 스페인 전통 문화라 여기는 스폐인 투우협회는 끝나지 않은 전쟁을 오늘도 치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