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불편해도 ‘열정’으로 남보다 큰 걸음 걷는다"

지체 장애 유학생 김민지 씨의 미국 생활 6년 명(明)과 암(暗)

2014-11-25     취재기자 안신해

그날 미국 펜실베니아 주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렀다.  피처버그 시 교외의 카네기멜론 대학교 교정. 수업을 마쳤는지 학생들이 고딕형 교사 건물에서 삼삼오오 무리지어 나온다. 대부분이 금발 머리와 파란 눈을 가진 백인 학생들. 그들 사이에 유난히 왜소한 체격에 검은 머리를 한 동양인 여학생이 보인다. 그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남들보다 더 바쁘게 걸음을 옮기지만 겨우 키 큰 친구들과 보조를 맞춘다. 그래도 얼굴에 그늘이 없다. 뭐가 즐거운듯 친구들과 깔깔거리고 있다. 6년째 미국 생활 중인 한국인 유학생 김민지(20) 씨의 근황이다. 김씨는 최근 모바일 메신저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담은 동영상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민지씨는 유복한 가정의 첫째 딸로 태어났다. 큼직한 눈망울이 똘망똘망해 주위로 부터 "참 예쁘네"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녀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생후 15개월쯤 됐을 즈음 걸음마를 떼거나 옹알이를 하는 것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뒤처졌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민지씨의 부모님은 아기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진단결과 선천적 뇌수종으로, 뇌에 물이 차 중추신경을 건드리고 있다는 것이다. 담당 의사는 즉각적인 수술을 권했다. 청천벽력이었다. 부모는 두살도 안된 어린 아기의 두개골에 어떻게 칼을 대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찌됐든 살려야만 했다. 결국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이 진행됐고 생명은 건졌다. 그런데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아간 바람에 한 쪽 다리 신경에 손상이 생겼다. 지금 한쪽 다리가 불편한 것은 그때 생긴 신경 손상 때문이다. 민지씨는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수술을 받았다. 뇌수종이란 병은 한번에 완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지싸는 “기억은 나질 않는데 어렸을 때 사진들을 보면 수술 때문에 짧은 머리밖에 없어요.”라고 말했다.

민지씨의 부모님은 그 후로 그녀를 더욱 강하게 키웠다. 웬만하면 스스로 일어서게 하고 쉽게 도움을 주지 않았다. 보통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조금은 뒤처지지만 그녀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부모님의 노력 덕분에 그녀는 다행히도 매우 밝고 긍정적으로 성장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민지 씨는 미국의 학교를 가기로 결심했다. 한국에선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그다지 곱지 않아서였다. 부모들도 적극 동의했다.  그들은 곧 사춘기를 맞이하는 딸이 지체 장애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들은 민지씨가 외국에 나가 더 큰 세상을 보며 다양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성장하길 원했다. 그녀는 “처음엔 막연히 영어도 배울 수 있고 한국보다 더 자유로운 환경이라는 것에 들떠서 무작정 갔던 것 같아요.”라고 말하며 유학을 떠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곁을 떠나 타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모두 한 학교를 다닌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학교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같이 생활을 해 와 이미 친해진 상태였다. 김 씨는 “처음엔 말도 안 통하는데다 저도, 그 친구들도 서로에게 다가가기 어려워해서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았어요.”라며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면서 극복해 나갔다. 고학년이 되어서는 동아리 리더와 기숙사 반장을 하는 등 많은 활동을 하며 맡은 바에 책임을 지는 법도 배웠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학교 성적도 매우 우수했다.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해 한인신문과 지역신문에 이름이 올랐을 때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녀는 “열심히 잘 하고 있다고 증명해주는 상이었어요. 이걸 계기로 모든 것에 더 열심히 임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학교는 대학 원서를 넣은 뒤 2주 동안 본인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는 ‘senior project’에 나선다. 미국 대학이 신입생들에게 요구하는 입학 전 특별 봉사활동이다. 그녀는 이 기회에 가나의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해외봉사를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김 씨가 방문한 가나는 생각보다 고립된 지역이었고 그녀는 그곳에 지내면서 아이들에게 단순한 수학, 과학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를 가르치러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내가 미국을 와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이나마 다른 사고방식으로 생각해보고, 새로운 의견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며 이게 정말 큰 밑거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나 아이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 씨는 봉사를 다녀온 후 새로운 목표가 하나 생겼다. “여행을 많이 다녀보면서 여러 나라의 새로운 문화와 생각들을 알아가고 싶다.”며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정말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모든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임하는 그녀의 걸음은 오늘도 남들보다 한 발짝 뒤처지지만,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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