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를 기리며
미투운동에서 시작된 여성인권에 대한 발언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다. 홍대 몰카사건은 그동안 차별을 느꼈던 여성들을 거리로 뛰쳐나오게 만들었다. 실로 이 땅에서 여성들은 그동안 피해자였다. 90년대에 이미 여성들은 그것을 깨닫고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의식은 그때까지 여성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성애에 대해서도 부정했다. 모성애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당연한 감정이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강요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는 어머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여성으로, 개인으로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 견해에 동의한다. 그러나 모성애가 과연 여성의 내부에 있는 감정이 자연스레 촉발된 것이 아니라 오직 사회문화적으로 강요되어 만들어진 것인가에 대해선 의구심이 든다.
몇 년 전부터 주말마다 가는 시골집에서 새와 고양이들의 행태를 보면서 그러한 의구심은 더욱 깊어졌다.
지난봄 이른 아침, 비명 같은 새의 울음소리에 잠을 깼다. 분명 지저귀는 게 아니고 비명을 질러댔다. 내다보니 이따금 우리 집 마당을 어슬렁거리는 얼룩무늬 고양이가 새집을 털어먹으려고 살금살금 나무를 기어오르고 있었다. 키가 큰 감나무 우듬지에는 갓 부화한 물까치의 새끼들이 있었다. 얼룩무늬는 그 새 어디엔가 새끼를 낳았는지 몰골이 많이 부스스했다.
녀석의 접근에 어미 새가 악 받힌 소리를 내며 날뛰었다. 힘차게 날아올랐다가 쏜살같이 하강하면서 고양이의 정수리를 사납게 쪼고는 다시 날아올랐다. 얼룩무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저 목표를 향해 슬금슬금 발을 떼놓을 뿐이었다. 물까치도 거의 사생결단이었다. 연신 높은 소리로 원군을 부르면서 고양이의 정수리를 쪼고 또 쪼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놔두면 아무래도 물까치의 새끼들이 고스란히 얼룩무늬의 먹이가 될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그때였다. 바로 집 앞에 있는 소나무 숲 너머에서 물까치 열대여섯 마리가 나타났다. 죽자고 구조를 요청하는 동료의 소리에 멀리서 날아온 기색이었다. 한꺼번에 날아오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새들은 나무 주위를 에워싸더니 번갈아 고양이의 정수리를 쪼아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강한 녀석이라도 견딜 수 없는 공격이었다.
결국 얼룩무늬는 담장 너머로 달아났다. 어미물까치는 얼룩무늬가 사라진 후에도 한동안 둥지 근처를 선회하면서 시끄럽게 짖어댔다. 적의 퇴치를 도와준 동료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는 듯 아까와는 다른 소리였다.
그날 오후, 물까치 집 털이에 실패한 고양이가 뒤꼍에 나타났다. 정수리에 상처가 또렷했다. 녀석은 음식쓰레기 더미를 헤집고 있었다. 자칫 큰일 날 뻔했던 물까치 가족을 생각하면 얄미웠지만 수척한 몰골로 그러고 있는 게 안쓰러워 먹다 남은 생선을 들고 나갔다. 다른 때 같으면 저만치 달아났을 녀석이 웬일인지 경계태세만 취한 채 내가 바닥에 내려놓은 먹이를 흘깃거렸다. 뭘 주나 단단히 살피는 듯한 행동이었다. 나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먹이에는 입도 대지 않고 서둘러 아랫집 창고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나타난 녀석의 뒤로 새끼 네 마리가 따라왔다. 역시나 녀석이 새끼를 낳은 것이다.
녀석은 새끼들을 먹이 앞으로 몰아다놓고 한 옆으로 비켜 앉았다. 새끼들은 냄새를 맡아볼 새도 없이 먹이를 향해 마구 주둥이를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한순간 싹 먹어치우고는 어미는 안중에도 없이 저희끼리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제야 멀찌감치 앉아있던 어미가 먹이 놓였던 자리로 다가가더니 빈자리를 하염없이 핥기 시작했다. 허전하기 짝이 없는 입놀림이었다.
순간, 늘 우리보다 늦게 밥술을 뜨던 어머니가 생각나면서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그때는 다들 살기가 어려울 때여서 먹을 게 요즘 같지 않았다. 나와 동생들은 고양이 새끼들과 다름없이 어머니는 안중에도 없이 음식에 탐했다. 그 곁에서 어머니는 항상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늘 자식이 우선이었다.
그 시절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랬다. 물까치처럼 필사적으로 자식을 지켰고, 얼룩무늬 고양이처럼 굶으면서도 자식은 먹이려 안간힘을 썼다. 얼마 전 TV에선 폭염으로부터 새끼를 지키기 위해 하루 종일 방향을 바꿔가며 날개로 그늘을 만들고 있는 백로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는 그것을 모성애라 불렀다.
내게는 그런 감정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나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모든 첫 경험이 그렇겠지만, 아이를 낳는 일은 특히 한 생명을 열 달 동안 품었다가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일이라 신기하고 두려웠다. 그래선지 첫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어이없게도 울음보가 터졌다. 안도감과 함께 내가 엄청난 일을 해냈다는 감격도 있었지만, 영원히 날개옷(?)을 잃어버린 듯한 상실감이 밀려왔던 것이다.
그 후, 며칠간은 아기를 들여다볼 때마다 신기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 아이를 위해 뭐든지 다할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을 빨아대는 무구한 얼굴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두려우면서도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애정과 설렘이 내 마음에 그득 차올랐다.
그 낯선 감정은 계속 나를 지배했다. 보호본능인지, 사랑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지만 아이를 향해서만 지속되는 변함없는 애정과 관심이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누구에게도 가져본 적 없는 절대적이고 확실한 감정이었다. 내 속에서 태어난 한 생명을 향한 원초적인 사랑. 그것은 물까치와 얼룩무늬 고양이와 백로가 자신의 새끼들을 무조건적으로 돌보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여성에게 모성애는 반드시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그것은 학습이나 강요를 통해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타고나는 감정이란 것을.
어떤 진실도 아니라고 자꾸 부정하면 아닌 것이 되고 만다. 사랑이 부족한 이 시대에 모성애마저 부정된다면 사랑은 대체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참 막막한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