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신년호 사은품, 배보다 배꼽이 크다
잡지 가격 10배짜리 사은품도 등장...과도한 상업성으로 언론 독립성 위협
한국광고주협회는 최근 전국 성인남녀 1만 명을 대상으로 한 달 간 수용자들의 매체 이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90년대까지만 해도 잡지 구독률은 신문, TV, 인터넷, 라디오 등 주요 매체 구독률의 30% 정도였다. 90년대의 패션 잡지는 연예인 등용문이라 불릴 만큼 잡지의 영향력이 컸는데, 2000년대부터는 잡지 구독률이 급격히 하락해 2010년에는 조사 대상자의 3.2%만이 잡지를 구독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잡지 구독자가 떨어져 나가자, 최근 일부 잡지사들은 판매율을 올리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잡지 부록이라 불리는 구매 사은품을 통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평균 잡지 가격은 대략 6,000원에서 9,000원인데 반해, 대부분의 잡지들은 잡지 가격의 10배도 넘는 사은품을 잡지와 별도로 끼워준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사은품을 얻기 위해 잡지를 사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잡지 사은품을 사면 잡지가 따라온다는 말이 있을 만큼 잡지 사은품의 질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패션잡지 <싱글즈>의 2013년 9월호는 잡지 가격이 8,500원인데 반해 부록은 10만원 상당의 클러치 백이 제공됐다. 같은 달 패션잡지 <인스타일>은 잡지 가격 8,900원에 12만원 상당의 화장품인 수분 에센스를 사은품으로 제공했다. 2015년 1월호의 사은품을 조사한 결과, 패션잡지 <나일론>은 7,500원 잡지 가격에 4만 7000원 상당의 유명 브랜드 화장품을 준다. 패션뷰티 잡지 <엘르>는 6,500원의 가격에 1만 3000원짜리 화장용 팩을 제공한다.
주부 교양 잡지 <레이디 경향>은 잡지 가격 9,900원에 3만 9,000원 짜리 향수를 제공하는 등 13개 주부 교양잡지 중 10개가 고가의 사은품을 제공하고 있었다. 유아잡지 <베스트 베이비>는 잡지 가격 6,800원에 2만 3,000워짜리 삼푸를 제공하고 <키즈맘>은 잡지 가격 6,900원에 지퍼백, 참치캔, 물티슈 등을 패키지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경제 시사 잡지, 과학 잡지, 컴퓨터 잡지 등의 사은품 제공은 거의 없었다.
대학생 김효정(23, 부산시 사상구) 씨는 다음 달 잡지 사은품은 어떤 것이 있나 살피고 잡지를 산다. 김 씨는 잡지 내용보다 잡지에 딸린 사은품에 더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그는 “운이 좋으면 잡지 사은품 덕분에 학생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화장품을 사거나,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을 1만 원도 안하는 값으로 살 수 있다. 이런 재미로 잡지를 구매한다”고 말했다.
인터넷 서점 yes24의 잡지 섹션을 조사한 결과, 2015년 1월호를 기준으로 남성 잡지와 여성잡지 판매량 1위부터 20위까지를 차지한 잡지는 고가 사은품이 포함된 남녀 패션잡지들이다. 그 중 절반의 잡지들이 출고 후 며칠이 안가서 품절 혹은 일시품절 상태다. 품절 상태인 패션 잡지는 보통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사은품들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빅뉴스가 실제로 부산대 주변 서점 5곳의 올 1월 잡지를 조사한 결과, 값이 비싸거나 젊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가방이나 화장품이 부록으로 주어진 패션잡지는 이미 매진되고 없었다. 특히 패션잡지 <쎄씨> 올 1월호는 한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클러치 백을 증정했고, 5곳 모든 곳의 서점에서 <쎄씨>가 이미 품절된 상태였다.
부산 교보문고에서 일하는 직원 이모(27,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씨는 잡지 출간일이 다가오면, 하루에 수 십 통 잡지 예약 전화를 받는다. 이 씨는 “잡지를 서점에 들여 놓은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가는 것들은 대부분 젊은 여성들이 선호하는 브랜드 화장품이나 가방들이 부록인 패션잡지들”이며 “그러한 사은품이 제공되면 해당 잡지는 없어서 팔지 못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잡지사가 이렇게 잡지 가격의 열 배에 달하는 값비싼 사은품을 제공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잡지사들은 비싼 사은품을 제공하는 업체들에게 비용을 지불하는 것 대신에 애드버토리얼(advertorial)이라 불리는 광고성 기사를 넣어 준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패션잡지의 편집장은 한 대학 시사웹진과의 인터뷰에서 “부록(사은품)을 제공해준 브랜드의 기사를 잡지 페이지에 넣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 책의 퀄리티를 알게 모르게 떨어뜨리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 편집장은 “부록이 붙은 잡지들은 그렇지 않은 잡지들보다 많은 판매율을 보인다. 그러나 부록으로 인해 독자들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기 때문에 부록 경쟁에 대해 비관적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현상에 대해, 동명대 신방과 유승관 교수는 "인쇄매체, 전파매체 할 것 없이 현대 미디어가 광고수입에 의해 많이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소유주나 광고주에 불리한 기사는 보도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언론의) 방향이 아니라고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