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싫어요, 동요와 동화를 들려주세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대한민국 어린이들이라면 누구라도 집안 어른들 앞에서 재롱떨며 부르는 이 노래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은 가히 ‘국민동요’라 불릴 만하다. 나도 어릴 적에 곧잘 이 노래를 어른들 앞에서 불렀고, 어른들은 “너도 크면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냐?”고 묻곤 하셨다. 그렇게 TV에 나오기를 이 동요를 부르며 꿈으로 키워온 나는 정말 어른이 돼서 한 때 TV 뉴스 앵커가 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최근 신문에 뜻밖의 부고가 떴다. 국민 동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을 작사, 작곡한 동요 작곡가이자 아동문학가인 정근 선생이 돌아가신 것이다. 정근 선생은 동요 작사가와 작곡가로 활동한 것은 물론, 방송작가로 KBS 간판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던 <영이의 일기>와 <모이자 노래하자>를 만들었다. 그는 어린이를 위한 뮤지컬 극본과 동화 여러 편을 쓰고 번역해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정근 선생의 작고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최근 동요의 현실을 알게 되는 계기를 접하게 됐다. 근래에 나는 한 구청 도서관에서 기획한 초등학생 대상 ‘어린이 스피치 특강’을 한 달에 걸쳐 진행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아이들에게 좋아하는 동요를 불러보라고 했더니, 그들은 아는 동요가 없어서 부를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대신 아이들은 아이돌 가수들 노래를 직접 동작과 함께 신나게 불렀다. 더 이상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동요는 존재하지 않았다.
동요는 어린이의 정서를 담은 노래다. 동요는 서정적인 노랫말과 쉬운 리듬이 어우러진 노래로, 어린이들은 동요를 부르며 동심을 키운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팔 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로 흐르는 <섬집아기>를 들으면, 나는 왠지 나이가 들었어도 엄마 품이 그리워진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로 이어지는 동요 <과꽃>을 흥얼거리면, 스물이 되기 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난 누나가 생각난다는 지인도 있다. 동요는 동심 그 자체다.
동화도 마찬가지다. 동화는 어린이의 꿈이 담긴 스토리다. 대개 동화는 눈으로 보는 책이기도 하지만, 엄마나 할머니가 무릎 맡에서 읽어주는 동화는 특별한 감성적 경험을 어린이들에게 제공한다. 엄마나 할머니의 목소리를 타고 들려오는 동화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 따뜻함의 원천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는 보는 동화와 함께 ‘읽어 주는 동화’가 중시되고 있다.
최근 어린이 집과 유치원의 아동 폭력으로 전국이 난리다. 일부 어린이 육아 시설들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돌보고 정서를 기르는 교육은 뒷전이고, 영어 단어 하나를 더 가르치고 돈 한 푼 더 벌려고 혈안이 돼 있다. 그 사이에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이 동요와 동화의 추억이다. 동요와 동화를 가르치면, 아이들의 정서는 물론 선생님들의 인품도 치유가 된다. 보육교사들의 자질이 문제라는 지적이 언론에 많이 등장하고 있다. 대학에서 교과목으로 보육교사들의 인성을 바로잡거나 바꾸는 일은 참 어렵다. 단지 육아 교육 관련 학과들의 교육과정에서 동요와 동화의 중요성이 반영된다면, 보육교사 자질 향상의 한 방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TV 성인 가요에 찌든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동요와 동화를 더 많이 가르치고 들려주었으면 한다. 이왕이면, 애니메이션 영화 비디오를 틀어 주기보다는 '이야기 할머니'(<시빅뉴스> 2013년 7월 29일 자 ‘TV보다 할머니 목소리가 좋아요’ 기사 참조)를 청해서 아이들이 동화를 듣게 하는 게 더 좋을 듯하다.
미래학자 롤프 옌센은 그의 책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에서 정보사회의 태양은 지고 ‘이야기’가 중심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가 곧 온다고 했다. 미래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미디어라는 기계보다는 전달되는 메시지인 이야기, 즉 ‘콘텐츠’가 핵심이란 말이다. 사람들은 이제는 인터넷, SNS와 같은 신기한 기계보다는 기계가 전달하는 이야기에 더 꿈을 느끼고 성취감을 맛본다는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이야기는 모두를 사로잡는다. 많은 지식과 논리적 설득으로 무장된 글은 머리로 흡수되지만 마음을 울리지는 못한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감성적인 이야기 콘텐츠가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동요와 동화다.
이어령 교수는 자신의 저서 <디지로그>에서 효율적인 테크놀로지의 ‘디지털’과 따뜻한 감성의 ‘아날로그’가 합성된 ‘디지로그’가 기계 중심의 미래에 인간적인 감성의 균형을 잡아줄 것이라고 토로했다. 디지로그를 어린이 보육 현장에 완벽하게 적용하는 것이 바로 동화와 동요 교육이다.
동요와 동화는 일반 사회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최근 혼성 보컬 그룹 ‘요술당나귀’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자는 메시지를 동요 같은 노래에 담아 우리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일명 '환경에코 가수'로 불리기도 하는 이 독특한 그룹은 환경, 생명, 모성애, 자연의 소중함을 동요 풍의 노래로 부른다. 참신하고 신선하다.
동요와 동화가 가진 힘은 우리에게 동심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동심은 곧 순수함이고, 영혼이 순수해야, 누구든지 잘못을 깨닫고 행동을 바꾸게 된다.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순수한 동심이 공감할 수 있는 동요와 동화가 우리 사회에 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이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겨, 결국 우리 사회가 변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요와 동화가 없는 사회는 어린이를 울게 하고, 어린이가 우는 사회는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