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과 담장이 포근한 '가정집 북 카페' 우후죽순

커피 마시며 책 읽고 사색하고 담소 나누고..."새로운 문화공간" 각광

2016-02-08     취재기자 장미화
평범한 가정집인 듯한 주택 안으로 하나 둘씩 사람들이 들어간다. 책장에서 책을 꺼내어 독서하는 사람, 담소를 나누는 사람, 창밖을 보며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는 이곳은 가정집이 아니라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북 카페(book cafe)다. 원래 가정집이었던 이곳은 가정집의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책도 읽고 차와 음료를 즐길 수 있는 북 카페 공간으로 진화했다. 이처럼 가정집 내부 공간을 거의 그대로 살리면서 영업장소로 활용되는 곳이 도시 곳곳에서 늘어나고 있다. 도시가 커지자 과거 도심 속 주택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외곽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남겨진 주택이 그대로 가정집형 영업장소로 개조된 것이다. 부산시 남구 대연6동 못골역 근처에 위치한 북 카페 ‘담’은 주택가 밀집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낮은 담장과 정원이 딸린 2층짜리 가정집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1층은 북 카페 담으로, 2층은 ‘담앤북스’ 출판사로 운영된다. 북 카페 담의 대표 송미숙 씨는 “문화적 불모지인 부산을 책을 읽는 공간, 문화공간으로 만들려고 북 카페를 열었다”며 “손님들이 이곳에 편하게 들어와 책도 읽고 여러 사람과 이야기 하는 곳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주택을 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송 씨는 가정집의 편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기존 주택의 마당과 담장을 그대로 두었다. 북 카페에 구비된 책은 담앤북스가 출한판 책과 송 씨가 집에서 가져온 책들이다. 대학생 이윤지(24, 부산시 남구 대연동) 씨는 도서관 대신 북 카페에 자주 들러 책도 읽고 공부도 한다. 이 씨는 “마당을 바라보며 앉아 책을 읽으니 내 방에 앉아 책을 읽는 것처럼 편안하다”고 했다.
가정집을 개조해 운영하는 브런치 카페(brunch cafe)도 생겼다. 부산시 수영구 남천동에 위치한 브런치 카페 ‘이안’은 번화가에서 벗어나 주택가들이 모여 있는 골목에 위치해 있다. 브런치 카페 ‘이안’의 대표 하이안(34) 씨는 번화가의 높은 임대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곳을 알아보다 부동산에 전월세로 나온 지금의 주택을 발견했다. 즉각 이곳을 카페로 변신시키기고 결정한 하 씨는 그 집 대문과 주택 외관은 손대지 않고 마당에 테라스를 설치하여 주택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다. 외관이 여느 가정집 같아서 손님들이 카페를 눈앞에 두고도 찾지 못해 지나치는 일도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예정에 없던 간판을 가게 외부에 설치했다. 하 씨는 “이곳이 손님들에게 나만의 아지트, 나만 알고 싶은 집과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 씨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가게처럼 리모델링했다. 다만 인테리어는 업소를 닮았지만 가정집의 방을 그대로 살려 방마다 테이블을 놓고 화장실도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원래 있던 그대로 남녀공용인 가정집 화장실을 그대로 살렸다. 브런치 카페인데도 불구하고 업소 바닥에 따뜻한 보일러가 들어오는 것은 가정집을 개조한 가게만의 특징이 됐다. 회사원 이혜연(27, 부산시 수영구 광안동) 씨는 “대문을 들어설 때 옆집에 밥 먹으러 들어오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가정집을 개조해 음식점을 운영하는 곳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도시에서 많이 생겼다. 그 중에는 기와집을 개조해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는 곳이 있다.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 위치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303 화덕’은 기와지붕을 그대로 살리고 마당에 연못과 정원을 조성했다. 레스토랑 대표 김동환(39) 씨는 직접 인테리어에 참여했다. 지붕은 한국식이지만 내부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의 느낌이 난다. 김 씨는 “겉으로는 가정집 느낌이 나는데 내부는 이태리 느낌이 들어서 손님들은 일종의 상반되는 느낌을 가질 것”이라고 했다. 주택이 업소가 되었을 때의 이점은 마당을 가게만의 주차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김 씨는 상가였다면 가질 수 없는 마당을 통해 도심 속의 정원을 만들고 싶었다. 그는 “가정집을 개조해 가게를 운영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된 이유는 주차 공간 확보, 개인 공간 확보가 가장 큰 이유 일 것”이라며 “주변에 큰 건물이나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건물이 없어서 우리 업소가 이 동네만의 랜드 마크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부산시 진구 양정동에 위치한 로프트 카페는 30년이 넘은 2층짜리 빨간 벽돌집인 단독주택을 개조한 곳이다. 1층은 카페 2층은 여전히 가정집이다. 오래된 주택을 개조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어, 최대한 손을 덜 대고 주택에서만 볼 수 있는 가정집 내부의 원목나무도 그대로 살리려고 했단다. 로프트 카페 관리자 배서영 씨는 “옛 것을 살려 최대한 들어내고 가정집만의 따뜻한 분위기를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주택에서만 볼 수 있는 두 개의 다락방은 그대로 카페의 공간 일부가 됐다. 현재는 생산이 중단된 독특한 유리 무늬 창문과 나무로 된 미닫이문도 하나의 포인트가 됐다. 로프트 카페의 바리스타 김주영 씨는 “40, 50대 분들이 많이 오신다. 연세가 있는 분들은 이 집을 보고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며 편안해 하신다”며 “아파트에만 살아본 젊은 친구들은 오래된 주택을 생소해 하면서도 빈티지함에 매력을 느낀다”고 했다. 관리자 배 씨는 “손님들이 친구 집에 놀러온 것처럼 편하게 오래 있다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시 남구 경성대-부경대 대학가에는 한 개인 건축업자가 주택 5채의 담장을 허물고 주택 구조를 최대한 살려 골목길이 있는 업소들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이곳들에 갤러리, 소극장, 커피숍, 와인바, 라이브 카페 등을 열었다. 이들 업소들은 큰 집에 여러 집들이 세 들어 사는 듯한 독특한 구조 속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문화골목’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문화골목을 조성한 이는 건축가 최윤식 씨로, 그가 만든 문화골목은 2008년 부산시로부터 '부산다운 건축상' 대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탔다. 네이버에서 문화골목을 치면 부산에서 꼭 가볼 곳 중 하나로 소개돼 있기도 하다. 대학생 박소연(24, 부산시 사하구 감천동) 씨는 “이 골목에 들어오면 80. 90년대에 와있는 것 같다. 오래된 주택을 허물지 않고 그곳에 오래된 물건들도 함께 놓인 것이 더욱 정겹다”고 말했다.

경성대 도시공학과 이석환 교수는 도시 안에서 주택형 업소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대해 “도심이 활성화되고 젊은이들이 그런 곳으로 몰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부작용으로 그런 주택이 개조된 상가들의 임대료가 올라 젊은이들이 즐기기에 비용이 올라가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