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쿤족, 힐링인가 도피인가? / 조푸름
“청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이것은 김기림 시인의 <바다와 나비>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이 시에 나오는 나비는 번데기 바깥의 세상으로 처음 나와서 바다를 청무밭이라고 착각해 앉았다가 바닷물에 날개가 절어 그만 지쳐버리고 말았다. 처음으로 나뭇잎 외의 세상을 만난 나비에게는 모든 일들이 낯설고 힘들어서 아마도 안전하고 안락했던 고치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지도 모른다.
나 또한 처음 대학에 왔을 때 내가 마치 번데기에서 갓 나온 나비가 된 것 같았다. 처음 온 동네, 처음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처음 배우는 공부까지 대학의 모든 것은 처음이라는 설렘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 설렘과 기대도 잠시 뿐이었다. 과제, 인간관계, 그리고 생활비 등으로 나는 그만 바닷물에 절은 나비처럼 지쳐버리고 말았다. 나에게도 나비처럼 번데기가 있었다면 들어가 쉬고 싶을 지경이었다.
최근에는 이처럼 사회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할 자신만의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공간을 안락하고 개인적일 수밖에 없는 번데기에 빗대서 ‘코쿤(cocoon)’, 그리고 그 공간에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사람들을 ‘코쿤족’이라고 부른다. 코쿤족의 종류는 코쿤족이 머무는 장소에 따라 꽤 다양하다. 집에 머무는 집 코쿤족, 자신의 자동차를 고급 오디오 등으로 채우는 자동차 코쿤족, 일터를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꾸미는 일터 코쿤족, 심지어는 가상 현실에서 힐링을 하는 사이버 코쿤족까지 있다. 그렇게 사람들은 다양한 곳을 자신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번데기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에 발맞춰 최근에는 1인 가구를 타깃으로 한 서비스나 상품들이 많이 출시됐다. 1인 가구를 위한, 너무 크지 않고 적절한 가격의 좋은 제품은 물론, 슈퍼마켓의 배달 서비스, 그리고 관광사의 1인 여행 패키지도 있다고 한다. 이런 모습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개인 공간에서 다시 힘차게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할 수 있고, 또 1인 가구의 증가를 통해 새로운 산업이 발전하는 등의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 코쿤족의 이미지는 본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나라에서 코쿤족은 사회에서 지친 마음을 자신만의 공간에서 충전하는 ‘힐링’의 이미지가 강하다. 반면에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인 페이스 팝콘이 정의한 원래의 코쿤족은 스스로 외부 세계를 차단하고 사회화를 기피하는 ‘도피’의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런 도피의 성향은 힐링처럼 마냥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전통적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과 마찰을 빚을 수도 있고, 너무 갇혀 지내다 보면 주위에 사람이 남지 않게 될 수도 있다. 적절한 개인 공간은 신체적인 면에도 정신적인 면에서도 좋다. 하지만 언제나 과도한 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