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 넘치는 필리피노... 밤 되면 도심 광장마다 ‘춤판’
대형 쇼핑몰서 집단 에어로빅 댄스 강습도
필리핀 사람 치고 노래 못하는 사람 없다는 말이 한국 내에 널리 퍼져 있다. 호텔의 바 등 라이브 음악을 서비스하는 곳에는 인건비가 싼 필리핀 가수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 솜씨는 수준급이다. 한국 노래도 연습해서 곧잘 부르는데, 웬만한 한국 가수들보다 그들이 노래를 더 잘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비록 그들이 무명 가수라도 말이다.
웬만한 필리핀 음식점에는 모두 노래방 기기가 설치돼 있을 정도로 필리핀 사람들은 흥만 나면 노래를 부른다. 필리핀에서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른 명곡 <마이 웨이(My Way>를 잘못 부르면 화가 난 필리핀 사람들로부터 총 맞는다는 농담도 있다.
교환학생으로 세부의과대학에 체류하고 있는 기자는 대학 캠퍼스 곳곳에서, 도심의 광장마다, 그리고 거리의 공터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필리피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부의학대학생들 중에는 춤을 배우는 교양과목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캠퍼스 공터에서 수십 명의 댄스 과목 수강생들이 댄스 강사의 지도를 따라 척척 군무를 한다. 더운 날씨가 그들에게는 익숙한지, 힘든 기색도 없다. 댄스 과목 수강생들은 방과 후에도, 주말에도 삼삼오오 모여 댄스 연습에 집중한다. 전원 A가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니 말이다.
필리핀 사람들의 진짜 끼는 동네 큰 쇼핑몰에서 펼쳐진다. 세부 만다우에시티의 ‘Park Mall’에서는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줌바 댄스’ 무료 강습이 열린다. 줌바 댄스는 격렬한 에어로빅 댄스의 일종으로 최근 한국에서도 다이어트에 좋다고 인기를 끌고 있다.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끼 있는 필리피노 사이에서 이 줌바 댄스는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원래 헬스장이 줌바 댄스의 진원지지만, 헬스장을 다닐 만큼 주머니 사정이 여유롭지 않은 필리핀 젊은이들은 약속된 요일 저녁 6시 경이면 어김없이 쇼핑몰 앞에 모여 있다. 헬스장 강사들이 헬스장 홍보 겸 헬스복 등을 판매할 목적으로 줌바 댄스 무료 강습회를 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은 좋은 자리 잡기에 여념이 없다. 그리고 강습이 시작되면 족히 200~300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광적으로 줌바 댄스를 따라한다.
매주 친구들과 함께 쇼핑몰에서 줌바 댄스를 즐긴다는 칼리(Calie, 34) 씨는 “절대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춤을 춘다. 다들 잘 추지 못해도 열심히 따라한다. 정말 좋은 운동”이라고 말했다.
리피노의 밤 문화에도 노래와 춤이 동행한다. 필리핀의 일명 ‘동네 술집’은 노래방이 아니라도 노래방 기계가 꼭 설치돼 있다. 5페소(한화 약 140원)이면 두 곡을 부를 수 있다. 가게 주인이 주는 종이와 펜으로 노래번호와 5페소를 내면 주인이 직접 예약해주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모든 술집에는 문이 없다. 골목 가까이에만 와도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곳에는 한국 노래 책도 있어 전세계적으로 K-Pop이라 알려진 한국 노래를 부르는 것도 가능하다. 필리피노들이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을 부르는 것을 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구들과 함께 자주 동네 술집을 찾는다는 세부의학대학생 카츠마(Katsuma, 26) 씨는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시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나는 세계 모든 사람들이 우리 필리핀 사람들처럼 노래 부르고 춤추는 문화가 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필리핀 한국 유학생인 김용민(25) 씨는 “문이 없는 술집에서 마이크를 놓지 않고 크게 노래를 부르는 필리피노가 처음엔 신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함께 즐긴다”고 말하며 웃었다.
한국 사람들도 노래 부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노래방이 아니면 그 어떤 한국 사람이 길거리에서 춤추고 노래를 부를까? 그러나 필리핀 스타벅스 아르바이트생은 커피를 만들며 크게 노래를 부른다. 손님하고 눈이 마주쳐도 한 번 미소 짓고 이내 노래를 이어 부른다. 빡빡한 세상살이에 지쳐있는 한국인들이 이런 필리피노들의 낙천적 기질을 배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