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쩡한’ 평양냉면 육수, ‘쩡한’ 백김치 국물
얼마 전 추석 명절이 지났다. 한 방송국의 추석 특집 프로그램은 추석 명절의 남북한 상차림을 보여줬다. 북한의 추석 상차림에는 명태 찜, 만두, 설기 떡과 씌움 떡(우리의 백설기와 술떡), 순대, 닭찜 등이 소개됐다. 다소 다른 상차림 속에서 남북 식탁에 빠지지 않는 공통 음식은 역시 ‘김치’였다.
북한의 김치를 접한 출연자들은 하나 같이 엄지를 치켜 올렸다. 지난 봄 방북 예술단의 일원들이나 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동행한 일원들 모두 북한의 백김치를 최고로 꼽았다. 북한 사람들은 잘 익은 백김치 국물로 국수나 밥을 말아 먹는다. 이때 시원한 국물의 감칠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백김치는 말할 것도 없고 북한의 대표 음식인 평양냉면의 맛을 표현할 때, 북한 사람들은 “시원하고 ‘쩡한’ 육수가 평양냉면의 특징입니다”라고 하든지 “김치가 ‘쩡한’ 게 맛있습니다”라고 한다. ‘쩡하다’는 표현이 매우 낯설다.
‘쩡하다’는 국립국어원 자료에서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자극이 심하다는 우리말”이라고 적혀 있다. 우리말인 ‘쩡하다’는 표현을 남녘에서는 잘 쓰지 않는데 북녘은 줄곧 써온 모양이다. 그런데 김치의 '쩡한' 맛이란 북한의 표현은 자극적으로 맵다는 의미보다는 아마도 ‘톡 쏘는 시원한 맛’ 정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런데 왜 남녘에서는 ‘쩡하다’는 순수 우리말을 김치 맛을 표현할 때 사용하지 않게 된 것일까? 음식 평론가 황교익 씨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김치에 들어가는 양념을 그 이유로 꼽았다. 그는 남녘의 김치 양념은 1980년대 컬러TV 출시를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로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다. 1980년대 컬러 TV가 등장하자 TV화면에 벌겋게 보이는 김치가 선호됐는데, 그후 매운 맛 일변도의 김치가 남한에 유행하면서 톡 쏘는 시원한 김치 맛이 뒤로 밀린 것인지도 모른다.
올 초 AFP 통신은 분단 70여 년 만에 남북한의 김치 맛도 달라졌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러나 맵고 짠 맛으로 치닫던 남녘의 김치 맛도 최근에는 김치 냉장고의 등장으로 아삭하고 시원한 김치 맛으로, 다시 말하면 '쩡한' 김치맛으로 회귀한 느낌이 든다. 이제는 남녘에서도 “와, 이 김치 쩡하네!”라는 표현을 부활시켜도 좋을 듯하다. 훗날 대동강 옥류관에서 평양냉면과 북한식 백김치를 먹을 때도 “와, 이 김치 쩡하네!”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