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마음 들 때마다 시에 매달렸어요" 장애 대학생 시인 최우석 씨

중3 때 교통사고, 두개골 복원수술 끝에 목숨 건져....벌써 시집 2권 발간, "앞으로 교육 복지 일할 터" / 신예진 기자

2018-10-22     취재기자 신예진

'포기하지 않으면 불가능은 없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어쩌면 백 번은 넘게 들었을 유명한 인생 격언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다”며 시련에 꺾이기도 한다. 좌절과 우울을 걷어내고 힘차게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온 대학생 시인인 최우석(24) 씨는 말한다. “한번에 무에서 유를 창조할 생각은 접어라”고. 그는 16세의 나이에 죽음의 문턱을 밟았다가 극적으로 되돌아왔다. 

최 씨는 올해 펴낸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포함해 2권의 시집을 발간한 어엿한 시인이다. 첫 시집 <어제보다 오늘은, 오늘보다 내일은>은 최 씨가 19세인 지난 2014년 세상에 나왔다. 2012년부터 준비했다고 한다. 고등학생 때부터 시인이었던 셈이다. 얼핏 최 씨는 ‘시 영재’ 같기도 하다. 그러나 최 씨는 살기 위해 글을 썼다.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계기다.

중학교 3학년 때 큰 사고를 겪었던 최 씨는 사고 재활 치료를 하며 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재활치료 선생님이 최 씨에게 시를 쓸 것을 권했던 것. 학원 차량 운전기사가 문을 닫지 않은 채 급커브를 도는 바람에 차에 타고 있던 그는 도로로 나가떨어졌다. 돌에 머리를 부딪쳐 22일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응급수술 2회에 두개골 복원술까지 동원됐다. 현재 그의 두개골 일부분은 티타늄으로 돼 있다.

최 씨는 “나는 당시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눈을 감았다 뜨니 왼손, 왼발을 쓸 수 없었고, 말도 제대로 못 했다. 세상이 무너진 듯한 절망감에 빠졌다. 매일 빠트려선 안 되는 재활 치료도 막막했다. 완치될 수도 없고 치료에 진전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재활 치료 선생님이 ‘시를 써보지 그러니’라고 제안하더라. 내 생각에도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울 것 같지 않아서 시작했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시를 쓰면서 최 씨는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그는 재활치료 때문에 다른 청소년들과 같은 생활이 불가능해졌다. 통원 치료를 위해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받고 조퇴해야 했던 것. 결국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선택했다. 말을 건넬 상대라곤 가족과 재활치료 선생님이 전부였다. 당시엔 우울증까지 겹쳐 정말 ‘미칠 것’ 같았단다. 그러나 시를 쓰기로 마음을 먹으니 메모장은 그의 든든한 말동무가 됐다.

최 씨는 “혼자 적어 내려간 내 생각들이 시가 됐다. 사실 사고 이후 ‘내 상태가 이래요’라며 답답해서 스스로 윽박지르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때로는 ‘언제, 어떻게 죽어야 할까’라며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그런 감정이 차오르면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들고 메모장에 적었다”고 말했다. 최 씨의 휴대폰에는 이렇게 모은 메모 수백 장이 있다.

최 씨의 두 번 째 시집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에는 다양한 소재의 시가 수록돼 있다. 사물을 보는 관점을 바꾼 그는 매 순간 시상을 얻는다. 음악을 듣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심지어 순대국밥을 먹으며 그는 가슴 깊은 속 꿈틀거림을 느낀다. 시 <어쩌면 양파: 그 맛이 뭐라고>가 그렇게 탄생했다. 순대국밥을 먹다 친구의 권유로 양파를 찍어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단다.

"짝사랑은 뭐랄까 / 어쩌면 양파일지도 몰라 / 처음 맛보면 살짝 달아 / 그 맛이 뭐라고, 반해버려 / 한 꺼풀씩, 한 꺼풀씩, 벗겨버려 / 그 맛이 뭐라고, 아껴먹고 싶거든(중략).../ 마지막 한 꺼풀은 먹지를 못해 / 너무 매워서 못 먹는다기보다는 / 잠깐이나마 손으로라도 닿고 싶거든 / 그 한 꺼풀로나마 촉촉해지고 싶거든 / 양파는...., 뭐랄까, / 어쩌면 예뻤던 눈물자국일지도" 

시집의 제목이자 대표작인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거의 4년을 다듬은 보석이다. 첫 번째 시집에 실린 <바다>와 연결된 시다. 원석을 다듬어 보석을 만들겠다는 다짐으로 오랜 시간 시를 만졌다고. 그 덕에 시 속에는 뻔하지 않는 사계절이 담겨 있다. 최 씨는 이 시에 대해 “겨울에 겪은 이별의 내음을 봄에도 맡고 있는 시”라며 “겨울로 끝나버리면 춥고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어 담담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너무나도 뜨거웠던 여름 / 그 때보다 뜨거웠던 나름 / 우리들의 뜨거웠던 열은 / 이제 떠나버리고 없다(중략).../ 눈물 나도록 추웠던 겨울 / 매몰차게 나를 버린 너를 / 그리워하고 미워할 겨를 / 이제 떠나버리고 없다 / 물망초 내음 가득한 봄만 / 남고, 사랑은 타버려 재만 / 남아, 가슴 아픈 추억 나만 / 고이, 간직하고 있다"

최 씨에게 시란 어떤 의미일까. 기자의 질문에 그는 ‘낚시’와 비슷하다고 답했다. 낚시는 물고기가 바늘을 문 느낌이 오면 일단 건져야 한다. 낚싯대를 들어올리지 않으면 수확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 시도 이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최 씨는 “시가 A 급이 됐든, B 급이 됐든 시상이 떠오르면 일단 펜을 들어야 한다”며 “내 생각이 글이 되지 않는다면 단지 잡념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내 마음을 대변할 수 있는 시를 얻는다”고 덧붙였다.

최 씨는 현재 행정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시를 쓴다고 하면 으레 국문과나 문예창작과를 떠올리기 쉽다. 최 씨는 단호하게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은 다르다”고 말했다. 우연한 계기로 시를 썼지만, 최 씨는 ‘교육 복지’에 힘쓰는 것이 목표다. 대학 입시를 직접 겪어보니 검정고시 전형을 하는 대학이 드물었다고. 추려 보니 고려대, 경북대, 부산대(논술) 등. 최 씨는 시집을 펴낸 경험을 살려 경북대 자율전공학부로 입학했다. 그는 교육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생들을 위해 일하려 한다.

최 씨는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장애 앞에서 절망하는 이들에게 조언했다. 노력에 쏟은 시간만큼 언젠가 빛날 수 있다고. 분명 힘들겠지만, 진부하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휠체어에 의지하며 1~2초 서 있는 삶을 살던 최 씨는 현재 어머니와 쇼핑도 다닌다. 최 씨에게 장애는 단지 불편함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최 씨는 “입원 당시 같은 병실을 사용하는 분들 대부분이 고령의 노인이라 내일 돌아가셔도 이상하지 않은 분들이었다. 그런데 좌절감에 빠진 나보다 그분들이 더 밝았다”며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당장은 힘들어도 언젠가 더 단단해져 ‘그땐 그랬지’라고 추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당신이 방금 내디딘 최소한의 움직임이 위대한 발전의 첫걸음이 될 것”이라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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