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친구 윤창호를 살려내라!"...윤창호법 통과 뒤엔 친구들의 '눈물 젖은 캠페인'

예지희 박주연 씨, 음주운전 경종 울리는 길거리 서명운동, 사이트 운영 계속...국회는 29일 윤창호법 일부 수용 개정 / 김수현 기자

2018-11-30     취재기자 김수현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친구 인생이 박살났습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2018년 10월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와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에 따르면, 9월 25일 새벽 2시 25분 경, 부산 해운대구 미포 오거리에서 음주운전자 박모(26) 씨가 동승자와 타고 있던 차량으로 두 청년 故 윤창호 씨와 배모(22) 씨를 덮쳐 중상을 입혔다. 음주운전자 박 씨는 면허 취소 수준의 혈중 알코올 농도 1.181%의 만취 상태였고 동승자는 걸어서 나올 수 있을 정도로 멀쩡했다.

피해자 중 군대에서 나와 휴가를 보내고 있었던 故 윤창호 씨는 사경을 헤매다 지난 11월 9일 세상을 떠났다. 허무하고 안타까운 죽음이었지만 청원을 올린 피해자의 친구들은 음주운전의 처벌 양형 기준을 높이는 ‘윤창호법’을 만들어 그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친구들은 앞으로 음주운전으로 인한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사회 전체가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수 있도록 새로운 법 제정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윤창호 씨의 친구들은 대학 동기와 고등학교 동창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10명의 학생이 윤창호법의 발의 및 촉구에 따른 여러 활동에 참여했다.

故 윤창호 씨의 친구들은 신해운대역 옆 53사단 국군부산병원 장례식장에서 10일 장례를 치르고 윤창호법 법안 통과에 힘을 쏟았다. 친구들이 올린 청와대국민 청원 게시판의 글은 국민들의 힘으로 20만 명의 동의를 얻어 청원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답변을 기다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국회의원들의 이메일 주소로 자신들의 뜻이 담긴 윤창호법을 정리하여 장문의 글을 보냈다. 이후 하태경 의원의 도움으로 국회에 법률 제·개정안을 보낸 친구들은 10월 12일 법안 발의를 위한 국회 기자회견을 가졌다. 또한 “역경을 헤치고 ‘창호’를 향하여”라는 이름의 블로그와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여 활동 내용을 알리고 있다. 이 밖에도 이용주 의원 ‘음주운전 적발 관련 성명서’를 작성했고 ‘음주운전 근절 브로치’를 제작·판매했다.

윤창호 씨 친구들은 국민 1만 명의 동의를 얻기 위해 서울과 부산에서 거리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의 국회 보이콧 선언으로 인해 정기 국회가 연기되고 법안 통과 절차가 미뤄졌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더욱 국민의 힘을 얻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서명 운동을 지속했다. 지난 18일 토요일 부산시 장산 역 근방에 위치한 NC백화점 앞에서 지희(22, 부산시 해운대구) 씨와 박주연(22, 부산시 해운대구) 씨는 슬픔을 잊고 서명운동에 전력을 기울였다.

윤창호법은 하태경 의원의 도움을 받아 드디어 국회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법안이 국회의 행안위(행정안전위원회)와 법사위(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해야 하는데 빠른 통과를 촉구하기 위해 윤창호 친구들은 국민 1만 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하려는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이 서명운동은 윤창호법이 제정되기 위해서 국민들이 이렇게 많이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보조 자료인 셈이었다. 서울과 부산으로 친구들이 나뉘어서 온라인뿐만 아니라 직접 오프라인으로 길거리에서 서명운동을 전개했다.

윤창호법의 발의 계기는 앞으로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자는 것이었다. 예지희 씨는 “처음 창호의 사고 소식을 듣고 허탈함과 무력감을 느끼다가 ‘창호였으면 어떻게 했을까’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무언가라도 해보자’라고 생각하여 병원에서 청원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렇게 청와대 청원 글을 올린 지 4일 만에 청원 동의 20만 명이 넘어갔다. 예지희 씨는 “창호는 원래 검사를 꿈꾸던 친구였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친구들과 함께 윤창호법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법안을 만들고 국회의원들에게 연락하다가 하태경 의원의 도움을 받아 국회를 찾아가 법안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윤창호법의 핵심은 음주운전 치사사고 발생시 ‘살인죄’의 죄목을 적용하는 것이다. 故윤창호 씨의 친구들이 주장하는 메시지는 “음주운전 치사는 실수가 아닌 살인이다”라는 문구다. 음주운전 치사라는,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위법이 음주사고라 하여 가볍게 처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 이들은 국회의원에게 윤창호법을 알리려 전화 연락을 돌렸을 때 형량이 무겁게 내려진 해외의 음주운전 치사사고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이 밖에도 친구들은 음주운전 처벌 기준의 강화, 음주운전 초범 기준을 2회에서 1회로 변경하는 것을 주장했다.

국회의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을 때 가장 적극적으로 먼저 도움을 준 사람은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었다. 예지희 씨는 “하태경 의원님과 실제로 만나서 미팅을 했다. 법안을 그대로 발의해주겠다고 말해서 함께 모여 논의하거나 온라인 화상 회의도 했다. 지금까지도 하태경 의원님의 보좌관들과 계속 소통하고 있다”고 알렸다.

하지만 이러한 그들의 열정에도 법안 발의 운동을 진행하면서 막막하고 힘든 점이 있었다. 예지희 씨는 “개인적으로 저희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 게 언론을 많이 타서 국회의원 분들이 흔쾌히 도와주실 줄 알았다. 하지만 법사위 의원 분들을 포함해서 여러 국회의원들이 윤창호 법에 대해서 조정이 필요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여론이 들끓고 있는데도 윤창호법이 많이 뒤로 밀렸다”고 했다.

한편 가해자 박모 씨가 구속 영장이 발부되어 지난 11일 체포됐다. 하지만 윤창호법 이전의 현행 법에 따라 박모 씨가 ‘살인죄’를 받을 확률은 거의 없다. 일각에서는 박모 씨가 집행유예로 끝날 수도 있다고 했다. 박주연 씨는 “저희가 이럴 것을 예상해서 법을 강화하자고 시작한 일이다. 만약에 가해자의 형량이 집행유예로 끝이 난다면 이것이 진짜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열심히 윤창호법 제정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법안이 최종 확정된다고 해도 확실히 음주운전 발생이 줄어들지 여부는 의문으로 남는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시민의 신고로 음주운전자가 붙잡힌 사례가 있고 음주운전 신고 양이 늘었긴 했지만 음주운전의 빈도는 여전하다. 박주연 씨는 “저희가 윤창호법을 제정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보를 알아봤다”며 “일본 같은 경우도 그랬고 법을 강력하게 집행하면 음주운전 사고는 분명히 수치적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실제 일본의 음주운전 관련 법률에 따르면, 혈중알코올농도가 0.03%면 3년 이하의 면허 정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300만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일본뿐만이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일명 ‘앰브리즈법’은 마약이나 술에 취해 운전하다 사망사고를 낼 경우 2급 살인죄로 처벌한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2급 살인죄의 형량은 최소 징역 15년이고 가석방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은 국회의원에게 보낸 윤창호법 법안 관련 이메일에도 담겨 있고 각 친구들의 페이스북 게시 글에도 올라와 있다. 이 사건과 청원의 내용을 알리는 데는 이러한 SNS와 여론의 힘이 컸다. 그 중에서도 위로나 응원을 해주는 국민들이 많았다. 박주연 씨는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저희의 일을 처음부터 관심 있게 지켜봐주시고 굉장히 많이 응원해주시고 위로해주셨다. 저희가 이것을 통해서 느낀 게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우리는 ‘이때까지 남의 일에 관심을 가져주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줬나’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어느 한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학부모와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윤창호법에 대해서 교육하셨다는 댓글을 보고 감명깊었다”고 말했다.

예지희 씨는 블로그에 매일 댓글을 달아주는 분들도 있고 음주운전 근절 브로치를 팔기 위해 남긴 계좌번호로 대가 없는 후원금을 보내주시는 분들도 많았다고 했다. 서명운동을 하는데 따듯한 음료를 사주는 분들도 있다고 했다. 또한 “같은 음주운전 사고로 가족을 잃으신 분들께서 댓글을 남겨주시기도 하고 조문도 실제로 와주셨다. 그런 분들이 가장 본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시고 오셔서 진심어린 위로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고 했다.

박주연 씨는 “저는 이 법안을 개정하는 일이 저희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하는 일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데 ‘진작 우리가 창호와 함께 먼저 발 벗고 나섰으면 어땠을까’ 이런 아쉬운 생각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예지희 씨는 “저희는 이 법안의 발의를 준비했던 게 저희만 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청원해주신 분들, 응원해주신 분들 모두 함께 했다고 생각해 감사드린다. 현재 추가로 서명운동하고 있는 것과 브로치를 판매하는 것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박주연 씨도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저희가 처음부터 이 법안을 발의하기 위해서 청원을 올리고, 국회를 찾아가고, 기사를 올리고, 기자님들과 많은 인터뷰를 하는 등 굉장히 어렵고 복잡한 과정을 겪었다. 법이 제정되는 것을 떠나서 본인들이 스스로 음주운전은 근절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법사위 심의가 지체되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 개정안 일명 '윤창호법'이 법사위 심의를 마치고 11월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찬성 248표, 반대 0표, 기권 2표였다. 언론들은 이번에 통과된 윤창호법은 음주치사를 살인죄 형량이 아닌 상해치사에 준하는 3년 이상으로 규정된 아쉬움이 있다고 보도했다. 윤창호 친구들의 바람대로 음주치사가 살인죄로 형량이 높아진 것은 아니었다. 

하태경 의원은 법안 통과 후 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음주운전 재범방지 위한 윤창호법2를 준비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하 의원은 또한 예지희 박주연 씨를 비롯해서 이번 일에  참여한 고 윤창호 친구들에게 윤창호 법 통과의 공을 이렇게 돌렸다. "지금 이 본회의장 방청석에는 그 기적을 만든 윤창호 군의 두 친구가 자리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윤창호 군의 대학교 친구인 김민진 씨, 고등학교 친구인 이영광 씨, 그리고 두 달 반 동안 함께 애써준 김주환 이소연 윤지환 진태경 박주연 손희원 예지희 손현수 친구에게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십 수 년 동안 국회가 못한 일을 불과 석 달도 안 돼 우리 친구들이 해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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