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중동과 서독 탄광에 간 세 친구
/ 김민남
2019-12-06 김민남
오늘 우연히 SNS에 올라온 현대건설 고(故) 정주영 회장에 얽힌 중동건설 일화를 보면서 문득 친구 생각에 젖었다.
내게는 70년대 열대의 사막 중동과 지하 수백 미터의 서독 탄광에 '외화산업역군'으로 고난의 시절을 보낸 세 친구가 있다. 지금은 모두 70 고희(古稀)를 넘기거나 산수(傘壽) 팔순을 맞았다. 한때 6.3시위 제적과 도망다니는 아픔도 나누었었다. 나는 그때 해직 기자가 되어 하릴없이 거리를 떠돌면서도 늘 그 세 친구에게 존경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 마음은 40년 세월이 덧없이 흘러간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러저런 때가 되면 전화나 문자를 보내고 안부를 묻고 가끔은 만나 짜장면을 먹고 소주 한 잔 기울이기도 한다. 한 친구는 서울에서 시인으로 활발하게 저술 활동을 하고 있고, 부산에 있는 두 친구 중 한 친구는 여전 열심히 회사 일을 하고 있다. 한 친구는 최근 건강 사정으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그의 뒷바리지로 아들이 미국 명문 아이비리그 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니, 모두 다 그 험한 시대를 잘 살아왔고, 또 잘 살고 있는 셈이다. 나름의 성공한 삶이라고도 하겠다.
내가 그들을 친구로서 늘 존경하고 마음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이 번영과 풍요를 우리가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어서다. 물론 우리가 60년대 초 소득 70달러의 헐벗고 가난한 빈국의 허물을 벗어던질 수 있기까지는 그 시절을 살며 피땀 흘린 수많은 이땅의 '민초'들이 겪은 엄청난 고난 극복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다. 지금 풍요를 누리며 밥을 굶어보지 않은 세대는 그 시대를 알기는 하겠지만 '절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는 또 정주영 이병철 같은 탁월한 경제지도자와 순간순간 힘든 결단을 한 여러 분야와 다양한 계층의 수많은 인재와 국민들의 끈질긴 노력과 희생이 한 박자가 된 '헌신'(獻身)이 당연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차가운 북풍이 몰아치고 한설(寒雪)이 내리기 시작하는 모진 겨울로 접어드는 계절이다. 나이든 이들 친구들이 얼어붙는 이 겨울을 지나 다시 새봄에 따뜻한 손을 맞잡고 부산역 앞 초량 뒷골목 그 허름한 '중국집'으로 다시 한 번 갔으면 하고 기대한다. 그래서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가 놀라는 이 성취 앞에 내 친구들은 그때 그 '짜장면'만큼 행복해 하고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