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기에 빠져보니...

2016-06-01     편집위원 박시현
<칼의 노래>로 유명한 소설가 김훈 선생은 평생 운전을 한 적이 없다는데 50줄에 들어서 자전거 타기에 푹 빠지게 됐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그는 “바람 속으로 달려가고 길에 스며들 때”마다 평생 처음 속도감을 맛봤다고 한다. 내친김에 김훈 선생은 자전거로 전국을 떠돌며 글을 쓰기로 작정하고, 1999년 자전거를 구입해서 '풍륜(風輪)'이라 이름 짓고, 이 풍륜으로 1년 동안 꼬박 대한민국 산천을 돌며 <자전거 여행>이라는 책을 썼다. 김훈 선생의 이 책을 읽은 후 자전거에 ‘필’이 꽃인 필자는 5월 첫 주부터 자전거에 입문하게 됐다. “바람 속으로 달려가고 길에 스며들” 생각에 겁을 상실한 필자는 자전거로 낙동강 1,300리길을 종주하고 싶은 생각, 4대강 답사를 가고 싶은 생각, 제주도를 횡단하고 싶은 생각을 구체화하고 있다. 더 나아가, 필자는 언젠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전거로 달려 갈 꿈도 꾸고 있다. 자전거를 탄 지 겨우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햇병아리 자전거 라이더가 말이다. 최근 수년 동안 대한민국은 스멀스멀 자전거 동호인 인구가 늘어 현재는 1,000만에 육박한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자출족'도 등장했다. 사실 국내 자전거 열풍은 세계적으로 늦은 감이 있다. 이란 핵협상 차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한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자전거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가 있을 정도로, 구미 각국에서 자전거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보편적인 레포츠로 이미 자리 잡고 있다. 자전거 마니아 대열에 끼어서 많은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필자는 국내 자전거 전용도로 실태라든지 자전거 관련 법규 등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부산 지역의 자전거 전용도로는 모두 20개 구간이며 길이는 84.15km에 이른다. 그리고 필자처럼 자전거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자전거 대여소는 온천천 시민공원, 낙동강 생태공원 등 부산 내 12개소에서 운영되고 있다. 전국의 지자체들은 자동차 배기가스로부터 대기 환경을 보호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자전거 체육활동을 돕는 사업들을 제법 많이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필자는 자전거를 타면서 가슴을 쓸어내린 경우가 두어 번 있었다. 공휴일을 이용해 체육공원 자전거 대여소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있는데, 보행자들이 자전거 전용도로로 순식간에 뛰어 드는 바람에 충돌할 뻔한 일을 겪었다. 또 한 번은 애완견이 자전거 전용도로로 달려들어, 이를 피하려다 초보 자전거 라이더인 필자는 넘어져 크게 다칠 뻔했다. 필자는 견주와 서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인사하고 지나갔지만 하마터면 큰 사고를 당할 뻔했다. 주위 자전거 타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런 일은 다반사라고 했다. 과거 자전거는 일상적인 운송과 이동수단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자전거는 국민 레포츠 수단이며, 자전거 인구가 흔하게 됐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자전거 타는 일은 안전하지 않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많지도 않고 잘 지켜지지도 않는다. 걷는 사람들은 자전거가 흉기로 인식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걷는 사람이 방해물로 인식되고 있다. 자칫 보행자와 자전거 라이더 간의 국민적 갈등마저 일 태세다. 부산 광안리 해변도로에는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산책하는 시민들이 길을 채우지만, 그곳에는 자전거 도로가 없어서 쌩쌩 달리는 자전거가 보행자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고 있다. 자전거 라이더들은 동시에 보행자들의 눈엣가시가 된 지 오래다.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10여 년 전 덴마크 코미디언 출신 정치인 한 사람이 ‘자전거 타기 좋은 나라’를 선거 슬로건으로 내걸고, 본인이 당선되면 “바람이 늘 여러분 등 뒤에서 불게 하겠다”며 선거운동을 했다고 한다. 자전거 타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은 그는 덴마크 의회에 입성하게 됐고, 그의 노력에 힘입어, 덴마크 도로의 75%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됐고, 덴마크 사람들은 밤에도 낮처럼 불이 환한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안심하고 자전거를 탄다고 한다. 현재 덴마크에는 지하철역마다 자전거 보관소가 있고, 자전거 출퇴근자를 위한 샤워장과 탈의실이 지하철 주요 역에 들어서 있다니, 대한민국 자출족에게는 꿈처럼 들린다. 게다가, 기업은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에게 에너지 절약 운동의 일환으로 장려수당을 준다고 하니, 덴마크는 가히 자전거 천국이 되고 있다. 덴마크 뿐 아니라 네덜란드에도 자전거만이 누리는 특권이 많다고 한다. 자전거는 일방통행로에서 역주행이 허용되고,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뀌면,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통행의 우선권을 가진다고 한다. 또한 1970년대부터 자전거 전용 다리와 전용 지하도가 건설되어, 네덜란드는 국민 1.3명당 자전거 보급률이 한 대 꼴이며 자전거가 전체 교통수단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자전거 왕국이 됐다고 한다. 프랑스 파리는 지난 2007년부터 ‘벨로(자전거)’와 ‘리베르테(자유)’를 합친 ‘벨리브’ 서비스를 시작했다는 글이 인터넷 블로그에 소개됐다. 이 블로그에 따르면, 파리는 무인 자전거 대여소 700여 군데에 공공 자전거 1만여 대를 구비해 놓고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자전거를 빌려준다는 것이다. 타이완의 수도인 타이페이 또한 아시아 지역 중에서는 높은 수준의 자전거 인프라가 조성돼 있다는 블로그 글도 있었다. 타이완의 교통 신호등에는 보행자 뿐 아니라 자전거를 위한 표시도 함께 표시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보행자가 되기도 하고 운전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보행자가 되면 운전자를 욕하고, 운전자가 되면 보행자를 책망한다. 이런 일이 보행자와 자전거 라이더 사이에도 벌어지고 있다. 결국 정부와 지자체가 관련 법규를 정비하고, 자전거 전용도로를 늘려야 한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기를 맑게 하며, 건강을 위해 자전거를 타는 국민들을 우리는 칭찬해주고 도와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