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고 볼 수만은 없는 킹스맨 속에 녹아있는 의식
영화 <킹스맨>을 보고
2015-06-11 부산광역시 남구 임동균
기존의 스파이 영화는 화려한 액션이 펼쳐지고 첨단 무기로 적을 제압하는 장면들이 많아 관객들에게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영화 <킹스맨>은 화려한 액션보다, 신비한 첨단 무기보다 다른 요소로 흥행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은 바로 ‘영국 신사’의 등장이다. <킹스맨>의 멤버는 모두 영국 출신 배우로서 깔끔한 신사복에 영국식 영어 발음을 구사했다. 영국신사의 모습은 우리들에게 신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영국 신사’는 우리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강력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약 2시간의 러닝타임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사람들이 영국식 발음을 흉내 낼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단순히 영국 신사가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 아니라고 본다. 영화 <킹스맨>은 스파이 장르의 필수 요소인 선악 구도를 인종으로 나누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 차려입은 신사적인 모습에 분위기 있어 보이는 영국식 발음, 와인으로 마무리하는 식사, 그리고 중후한 매력이 느껴지는 백인 배우들까지 이 모든 요소를 갖춘 킹스맨은 인류를 구하는 정의로운 구세주로 묘사된다. 반면 악당으로 나오는 발렌타인은 옷이며 행동, 언변까지 흑인을 대표한다. 살짝 틀어서 쓴 스냅백, 주렁주렁 달린 큰 목걸이, 힙합처럼 들리는 영어 발음, 심지어 초콜렛을 연상시키는 이름까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흑인이다. 흑인을 대표하는 그는 정의로운 킹스맨과 적대적인 관계를 이루며 인류를 멸종시키는 음모를 꾸미는 잔인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영화의 캐릭터 설정은 찐한 인종차별 냄새를 물씬 풍긴다. 인류를 지키는 킹스맨은 백인으로 규정해 놓는다. 인류를 지키는 일은 흑인이 할 수 없는 일일까? 아니면 흑인은 신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정의로운 킹스맨 집단에서는 오로지 백인만 존재할 뿐이다. 그 때문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나의 머릿속은 ‘백인 = 정의로움’ ‘흑인 = 악랄함’이라는 이미지가 생겨날 정도였다.
이러한 흑백에 대한 이미지는 실제로 사람들 마음에 선입견을 만들어낸다. 최근 미국에서는 백인 경찰이 무고한 흑인을 범죄자로 판단하여 총을 쏘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은 단지 피부가 까맣다는 이유로 흑인을 범죄자로 인식한 것이다. 만약 피해자가 백인이었다면, 경찰관은 분명 총을 쏘기 전에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결국, 이 사태는 볼티모어에 사는 흑인들이 들고일어나서야 논란이 종식될 수 있었지만, 흑인들에 대한 이미지는 변화시킬 수 없었다.
씁쓸한 것은 흑인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우리의 인식도 미국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그 예로 백인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와 흑인 관광객을 대하는 태도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는 백인 관광객에게는 배려와 친절을 베풀지만, 흑인들에겐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그들을 피하려고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볼티모어 사태와 우리나라의 사례와 같이 인종차별이 아직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흑과 백을 통한 대립구도를 만들어내는 영화가 계속해서 남아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킹스맨>의 영국 신사에만 빠져있지 말고, 영화가 만들어낸 인종에 대한 편견과 이미지를 한 번쯤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